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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24화 (24/573)

< 1장 23화 - 근자명국행(2) (0719 수정) >

정말로 이놈의 사행은 끝이 없었다. 입장부터 해서 거의 보름 만에 황제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기록상에 있는 어진보다 살이 빠지고 젊은 얼굴이지만. 턱수염이 참 알 같네요. 주변에 계시는 분들에게 없는 그 알.

“조선의 왕 도(祹 - 세종대왕의 휘)가 뛰어난 아들들을 두었다 하는데 그 차남이 이리도 기골이 장대하니 상국을 다스리는데 정말 믿음이 가는구나.”

“이 부족한 자에게 금칠을 하시다니 제가 부끄러울 다름입니다.”

“상국에서 배울 것을 찾아 학식이 빼어난 자와 같이 여덟 달을 보내고자 하니 문무 양쪽으로 재주가 있는 것이 참으로 보기 좋다.”

“드높으신 황은을 내려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말끝마다 미소를 지으면서 답해주는데 오히려 부담된다. 세종대왕님은 고생이 심할 것이라 염려했는데. 정작 까다롭게 나올 정통제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가 뭐냐고.

“조공으로 석감이라는 것을 보내왔는데 이 것이 사람의 때를 쉬이 벗겨내고 향을 입힌다 하였다. 시험해 볼 터이니 하인 중 손이 더러운 자를 들여와라.”

손에 검댕이 묻은 하인이 석감으로 손을 닦았다. 제조 방법에 경험이 쌓여 나온 물건이라 초기와는 다르게 제법 딱딱하고 쓰기 좋은 녀석을 모아 보냈지. 검댕이 묻은 손이었는데 나올 때는 희어지고. 옆에 있던 환관이 그 손에서 나는 향을 맡았다.

“손의 때가 사라지고 희어지니 정말 놀랍습니다. 또한 손에서 은은하게 인삼의 향이 납니다.”

“여정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마라. 짐이 머나먼 곳까지 찾아와 배움을 얻고자 하는 정성을 보아 충분한 편의를 내릴 것이다. 그런데 석감은 얼마의 값을 하는 것이냐.”

“인삼이 들어가는 석감은 한 근에 쌀 열두 섬의 값어치를 합니다. 향이 들어가는 석감은 한 근에 쌀 아홉 섬이니 조금 저렴합니다.”

“그리 귀한 물건은 아니구나. 상세한 것은 상서들과 논의 하여라.”

일단 가격 3배 뻥튀기는 잘 통했고 그 다음이다. 이제 호부상서와의 말싸움을 시작해야 할 때가 왔다.

“우선 아국의 황실에서만 쓴다 하여도 일만 근은 필요할 것이오.”

일만 근이나? 내수소에서 만들어 낸 석감이 일 년에 팔천 근 정도. 여기에 지방과 민간에서 허가제로 석감을 만들어 내는 것이 칠천 근이다.

“조선은 물산이 발달하지 못하여 일만 근의 석감은 조공으로 바치기 어렵습니다. 허나 상국에서 유지(油脂-기름 전반)를 내려 주신다면 일만 근은 가능합니다.”

“유지라? 돼지나 소. 혹여나 유마(油麻 - 참깨)나 백소(白蘇 - 들깨)의 기름으로도 가능 한 것이오?”

“그렇습니다. 석감이라 함은 저도 제법을 정확히는 모릅니다. 그저 조선에서 구하기 힘든 유지에 조선의 산아에서 나는 약초의 즙과 해초의 재를 섞고 정확하게 졸여 만드는 것이라 공임이 많이 들어갑니다. 백성에게 이를 시킬 수 있으되 유지만큼은 해결을 못합니다.”

사실 9할의 진실과 1할의 거짓이지. 명에서 제조법을 알아내기 이전에 최대한 뽕을 뽑아야 한다. 그래서 약초의 즙과 해초의 재라고 진실 섞인 거짓을 말했다.

“그렇다면 유지를 얼마나 보내야 하겠소?”

“석감 한 근을 만드는데 유지 한 근이 들어갑니다. 그러니 유지 일만 근이면 족하며 유지는 완전히 부패한 것만 아니고 어유(생선기름)만 아니면 충분합니다.”

석감에 대한 상세가 완전히 정리되었다. 일만 근의 기름을 공급하기로 했는데 이 기름을 죄다 육로로 보낼 수 없으니 해로로 공급하기로 했고. 그렇게나 향석감을 찾는데 왜 향석감이지? 인삼에 껌뻑 죽지 않나?

논의가 끝나고 상서가 더 있으라고 말하고는 사라진다. 갑자기 시키지도 않은 다과가 차려지고 쪼글쪼글한 환관 하나가 부하 환관들과 같이 들어오는데 이 인간이 왕진인가? 사실상 명의 수뇌이니 친하게 지내자. 인생 오래 살면서 늘어난 건 이런 재주다.

“명성이 자자한 사례감태감 어른 아니십니까.”

“어찌 이 몸을 아는 것이오?”

“학문이 깊어 이전부터 명성이 자자하신 분 아니십니까. 이렇게 솔선수범 하는 모습을 뵈니 대명의 앞날이 밝아짐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의 둘째 왕자께서는 풍채가 좋고 대장군의 상을 가졌다 하는데 이거 생각 같아서는 병부의 대장군을 맡게 하고 싶은 인재구려.”

조공 관계고 사신단 대표로 둘째 왕자가 왔다 치자. 그런데 황제의 태도도 그렇고 너무 심한 찬사가 아닐 수 없었다. 대체 왜지?

“다름이 아니고 석감 중 인삼석감과 향석감이 있다 하는데. 혹여나 따로 가져온 향석감은 있소? 아주 향이 강하면 좋겠소.”

“다른 이는 몰라도 저는 나리꽃(백합)의 향이 향석감이 있습니다.”

“정말로 나리꽃의 향이 나는구려. 거기 물을 가져오너라.”

내가 쓰려고 챙겨왔지만 한번 줘보자. 향석감의 효능을 시험한 왕진은 아주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나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번 여정을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는 말도 하였고. 아니 무슨 이유로 향석감을 좋아하는 거야? 그냥 인삼석감 쓰면 안 되나? 향이 좀 약해서 그렇지 충분히 좋은데.

“어휴 정말 힘들고 지친다. 자허(원호의 호)께서는 어떻소?”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수찬(신숙주)은 이제야 몸이 풀렸는데 참으로 특이하군요.”

“그래도 황상께서 이리도 좋게 대우해 주시니 일이 많이 풀렸다네.”

숙소로 돌아가는데 누군가가 우리를 보고 중얼거린다.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나도 제법 중국어를 알게 되어서 대충은 귀에 들어온다.

- 오줌싸개에 지린내 풍기는 놈들과 붙어먹는 조선 놈들이라니-

“대군어른 저 자는 금군 같습니다.”

“되었네. 환관의 전횡이 대단하니 저런 말을 할 수도 있지. 그런데 왜 환관이 오줌싸개에 지린내가 나는 거지?”

원호는 골똘히 생각하더니만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낮춰 말을 시작했다.

“모르셨습니까? 아국의 환관과 달리 명국의 환관은 남자의 양물도 잘라냅니다.”

“그건 알고 있네.”

“그러면 소변을 제대로 다룰 수 없어서 오줌이 질질 새나온다 하더군요. 저 자가 지린내가 난다는 말을 생각하니 석감이 인기가 있을 만 합니다.”

그래서 왕진이 완전히 아군이 된 거구나! 어쩌겠어? 저놈이 있어야 토목의 변이 터지고 명의 국력이 팍팍 깎여서 우리가 숨통이 트이는데. 그럼 호부상서도 입김이 팍팍 들어가서 저렇게 된 거고? 아주 나라 꼴 잘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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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산동 돼지가 가장 좋아! 돼지는 항주야!”

“닥쳐 취향을 존중한다지만 항주돼지는 작고 볼품없잖아! 역시 돼지는 강소성이지!”

“니들이 청평돼지의 찰진 뱃살 맛을 알아?”

“야 이 미친놈들아! 조선 둘째왕자 왔다고!”

관리가 언성을 높여도 들을 척도 안한다. 다들 자기 돼지가 최고라고 자랑하는데 여념이 없다.

“내년에 다시 와서 정하면 됩니다! 각자 자기 지방의 돼지를 가져와서 요리를 하자고!”

“옳소! 그게 명답이지! 그럼 종류는 어떤 걸로? 동파육? 악!”

“이 멍텅구리야! 항주 출신인 네놈 주특기를 내놓으면 어떻게 해!”

여기 모인 사람이 대충 60명이 넘는다. 그리고 하나같이 저렇게 언성을 높여 싸우고 있는데 이게 뭔 꼴이야? 옆의 관리는 말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

“대체 왜 저러는 것인가?”

“각 어선방(시설마다 딸린 주방)에서 대표를 뽑아 모이게 하였고. 내어선방(황제의 식사를 만드는 주방)과 외어선방(연회에서 외부인 음식을 준비) 두 곳은 제외하였죠.”

“그럼 다 서열이 비슷비슷한 상황에서 어느 고장의 돼지가 최고냐고 말을 하니.”

“저렇게 자존심을 걸고 싸우니 어찌 손을 대겠습니까.”

“내가 나서야겠군. 다들 조용! 다들 정숙!”

“당신 뭐야! 아악! 곰이 날 잡아든다!”

그냥 밀고 들어가서 악력으로 하나하나 다 분리했다. 요리사들이니 손은 안 다치게 뒤에서 안아 들고 탈탈 털어서 분리한 다음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맛만 좋다고 가져간다면 현대에 브랜드까지 성공적으로 만들어낸 금화돈만 챙겨갔지.

“아직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는데 왜 들 그러시오? 조건이 있소. 우선 무게가 수퇘지 암퇘지 둘 다 이백 근이 안 된다면 해당이 아니 되오.”

“금화돈(金華猪) 맛있는데…….”

“그 다음. 성장이 빨라 2년에 원숙하여야 하오.”

“관령돈(關嶺猪)도 맛있는데…….”

“마지막으로 내가 지도에 표시한 이 길 근처에 있는 돼지여야 하오.”

“내강돈(內江猪) 정말 맛있는데…….”

그렇게 걸러내도 숙수가 여덟이나 남았다. 총 여섯 종류? 상세하게 물어보니 여행 경로에서 한곳이 완전히 비어버린다. 상산을 여행경로에서 제외해도 결국 낙양까지는 말을 타고 가야지. 지금은 12월이고 여행을 갈 수 있는 시기는 1월 말이다.

운하를 타고 싶지만 운하는 2월 말까지는 다 녹아내리질 않아서 운행이 중단된다. 그렇게 여행 계획을 계속 수정중인데 왕진이 사람을 보내서 잠시 찾아오라 한다.

“상산은 경로에서 제외하셨다 들었소.”

“상산을 거쳐 낙양으로 가려 하였는데 여기엔 볼 것이 없으니 별 방법이 없습니다.”

“상산은 고을이 좁고 북경에서 가까우니. 차라리 장안으로 향하는 것은 어떻소?”

장안이면 지금 토지 염화와 기반 붕괴로 쇠퇴한 도시이지만 역으로 이 곳의 종자는 염해에 어느 정도 내성이 있으니 건조한 기후에도 내성이 있을 거다. 종자의 폭이 넓어지면 이득이 충분하니 조금 끌리긴 하는데 거리가 멀다. 이 한겨울에 말을 타고 장안까지 들어가는 것도 고역이다.

“장안도 좋은 곳이지만 한참을 더 가야하니 열흘을 소모해야 합니다.”

“이번 사행은 평소보다 닷새 정도 빠르게 끝날 것이니 염려 마시오. 내 편의를 많이 봐드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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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행이 끝나고 이제 왕진의 도움을 받아 서안으로 출발하려는 날 새벽이었다. 숙소 앞을 보고 깜짝 놀랐다. 웬 으리으리한 마차가 비단을 감고 있어? 이거 최소한 명나라 관료가 타는 마차인데?

“이게 뭡니까?”

“사례감태감 어른이 저희를 보내시더군요. 서안까지는 따로 들릴 곳이 없다 하시기에 이 마차를 타고 가시면 됩니다.”

“일행이 아홉인데 마차가 다섯 대라니. 그리고 바퀴에 가죽을 감았으니 정말 대단하오.”

대체 얼마나 해먹는 거지? 친왕(황제의 형제들) 까지는 아니지만. 시종도 한명씩 붙여준 상서 급이 탈만한 거대한 마차가 줄지어 있었다.

“각자 두 분씩 타시고 짐을 뒤에 올리시면 됩니다. 대군께서는 따로 마차를 타시지요. 말들은 서안에 들려서 새로 구하시면 될 것입니다.”

“정말 고맙소이다. 하루에 얼마나 움직일 수 있소?”

“사두마차이니 하루에 팔십 리(중국의 1리는 약 600m, 48km)는 너끈합니다. 말을 좀 더 갈아탈 수 있으면 백이십리(72km) 까지 가능하지요.”

그래 길이 나있으면 마차로 이정도 거리는 충분해. 말을 계속 바꿔가는 파발이 아니고서는 이 수준이 한계지. 말은 시속 20km로 1시간을 달리면 체력이 고갈되니까.

“이 마차는 적어도 대신들이 탈법한 것인데 어찌 이리도 배려를 해주시는지.”

“나중에 한 번 더 뵙고자 하시더군요.”

“알겠소. 십년은 정정하실 분이니 그 이내에 반드시 동지사로 다시 오리다.”

배려는 좋지만 다시 보기는 싫다. 이 정도로 배려를 해준다는 건 나라를 얼마나 갉아먹는지 짐작이 안가는 수준이다. 그렇게 해질 무렵까지 달리니 엉덩이가 뻐근하고 속이 울렁거리지만 참고 있었다. 마침내 마차가 멈추니 신숙주를 비롯한 문관들은 죄다 자빠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자네들 마차는 처음 타 봐서 그러나?”

“속이 뒤집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엉덩이가 아픈 것은 그렇다 해도 이건 너무하는군요.”

“첫날인지라 조금 무리했습니다. 수도 인근이니 백이십리를 말을 바꿔가며 내리 달렸습죠.”

“백이십리? 조선의 리수로 따지면 백팔십리?”

다들 조선에서만 있다 보니 하루 이백리가 정말 말 타고 죽어라 뛰어야 되는 줄 아는 것 같다. 대륙은 도로가 여전히 남아있어서 이게 기본이던가? 지방으로 내려가면 도로가 급격히 안 좋아지니 조선처럼 하루 백리(40km) 조금 넘게 움직이는 것이 한계겠지만.

“언젠가 조선도 나라를 정비하고 도로를 닦는다면.”

“이 정도는 할 거요. 내 장담하지.”

이렇게 경험이 늘어나면 생각이 트이지. 하루 육십 리(24km) 좀 넘게 움직이는 사행과는 격이 다르다고 생각할거다. 어느새 이개와 신숙주는 셈을 하면서 여정을 따져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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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하위지)께서는 대체 무슨 일인지 아십니까?”

“도저히 모르겠군.”

스승인 수양대군이 11월 말에 명으로 떠난 지 석 달이 지난 1443년 2월. 주변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가장 큰 것은 주변의 집 세 곳이 이사를 간 것이다.

진고개는 예전부터 목이 좋지 않기로 유명했다. 목멱산(남산)의 그늘이 겨울철에는 깊게 떨어져 땅이 질퍽해서 붙여진 이름이니 당연했다. 집이라는 것은 팔리고 나서 뜨는 것이 가능한데도 입신체비장 주변의 세 집만이 이사를 갔다.

“그래 셋 다 좋은 일이 있었다고 칩시다. 그럼 이건 또 뭡니까?”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주문한 적이 없네. 서산군 대감도 무슨 일인지 모르고 있으니.”

궁에서 사람이 왔다. 그 것까지는 좋았는데 공령이 수십 개가 쌓이고. 소역기와 평대를 비롯한 장비들이 계속 들어왔다. 처음에는 원래 있던 것만큼 들어와서 열심히 임하라는 선물인 줄 알았는데 너무나 양이 많았다.

“이보게나. 며칠 이내로 사람들이 올 거라네!”

“서산군 대감께서는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람이 온다구요?”

“주상전하가 급작스럽게 말씀하였다네. 지방에서 향시를 탈락하였던 부호와 향반의 자제 스물에게 입신체비를 가르칠 것이라고!”

뭐? 20명? 지금 입신체비장은 관리자 한명이 머물 숙소와 비상용 숙소. 방이 2개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저 집들을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다 합치실 거라 하셨네. 담을 허물고 하나로 합쳐 만든다 하더군.”

“대군어른도 계시지 않는데? 먹이고 재워야 할 것인데 어떻게 합니까?”

“지금 궁에서 사람들이 온다네. 그들을 시켜 다 갖춰놓아야 할걸세.”

마일용의 머릿속에는 요리도 잘하고 얼굴도 반반하고 자신을 챙겨주는 아내가 떠올랐다. 운동을 빼먹지는 않았지만 하루하루가 즐거워서 버틸 수 있었는데. 앞으로 집에 들어갈 날이 점점 줄어들 것이다.

“우선 이렇게 함세. 마정호 자네는 몸 재주가 좋으니 자세를 보고 다듬어주며 입신체비 할 때 지켜볼 것이고. 하천장 자네는 휴식년인 관료들과 함께 글을 가르치게. 지식도 충분히 있어야 하니 반드시 행해야 하네.”

“알겠습니다!”

“충실하게 가르치겠습니다.”

“나는 임시로 입신체비장의 관리와 필요한 물산을 궁에 부탁하겠네. 제발 종형이 돌아올 때 까지만 잘 돌아가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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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마마. 유가 명국에 간 동안 이렇게 하시다니요?”

“너는 서산군에게 입신체비를 받으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느냐?”

“이미 배움이 충분하지만. 스스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보였습니다.”

문종은 세종대왕의 행동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사람들에게 웃돈을 주어가며 집을 사들이고. 입신체비 기구를 잔뜩 만들어 강제로 가르치게 하다니?

“과거의 행실로 인해 생긴 마음의 골이 다 메워지지 않은 것이다. 그게 보이는 것이구나.”

“아바마마께서는 부족한 이를 가르치면서 깨우치게 하시려는 것 입니까?”

“그렇다. 그들 셋이면 스무 명 정도는 능히 통솔할 수 있겠지.”

유의 도움으로 건강한 몸이 되었다 하지만 천천히 늙어가고 있었다. 유가 낫게 해준 눈이 다시 나빠졌는데 이제는 유도 고칠 수 없는 노안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이제 권좌에서 물러날 때가 되었다.

“윤 씨 부인에게 태형 오십대를 내렸을 때. 형벌을 내리고 내렸지만 대명률은 너무나 벌이 가혹한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아무리 강상죄라지만 너무하지 않더냐.”

“허나 아바마마는 많은 것을 바꾸셨습니다.”

“그리 하여도 죄에 비해 무거운 벌을 받는 이가 종친의 소실(첩)이라서 방법이 없었다. 그 아래로 내린다면 죄를 너무나 감하였다고 후대에 남을 것이니. 아국의 실정에 맞는 법을 다시 세워야 할 것이다.”

종친의 첩실이자 세종대왕의 특명으로 50대의 태형조차 제대로 맞지 않았다. 기껏해야 형식적으로 종아리를 스쳤을 뿐이지만. 공식 기록에는 형을 집행했다고 남을 것이고. 이대로 혹형이 유지되면 다른 누군가는 억울하게 변을 당하겠지.

“아바마마께서 착수하시는 것은 법전을 새로 만드는 것입니까? 하오면 제가 돕겠습니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지천명(50세)이 되겠지. 그 때가 되면 이 자리를 네게 물려 줄 것이니라. 그 이후에 상왕이 되어서 법전에 손을 대겠다.”

“아바마마께서는 아직 정정하십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세종대왕은 지금 세자가 하고 있는 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날이 가면 갈수록 화포의 크기도 작아지고. 이제는 청동을 쓰지도 않고 강철로 만든다.

“본디 나이가 많으면 지혜가 늘어나고 생각이 깊어지는 법이다. 그러나 나는 네가 무엇을 만들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구나. 대체 그것이 무엇이더냐.”

“한 명이 들고 다니며 자유자재로 쏠 수 있는 작은 화포입니다.”

“화포는 본디 크고 우렁차 단매에 적을 분쇄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세종대왕에게는 당연한 이야기이다. 화포는 구경이 크고 많은 화약을 써야한다. 그러나 역시 세자의 생각은 정 반대였다.

“소자의 생각이옵니다만. 크기가 작고 길이가 긴 화포는 더욱 강한 힘으로 적을 꿰뚫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적은 화약을 쓰고 적을 확실히 쓰러트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이총통(二銃筒 - 구경 2.6cm의 소형 화포)이 아니더냐?”

“이총통으로는 부족합니다. 이런 저런 궁리를 하지만 아직 형태만 잡힐 뿐입니다.”

직접 작동하는 기물을 본다면 모를 것이지만 말로만 들어서는 여전히 세자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임금 이전에 아버지의 입장에서 그것이 가장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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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십시오! 저게 장안입니다!”

“세상에 천오백리(600km)를 정녕 십이일 만에 달리시다니. 정녕 대단하시구려.”

“별 말씀을요. 이게 다 일인데 말이죠.”

조용히 손가락 두개만한 은편 하나씩을 쥐어주고 작별인사를 했다. 그래 장안이다. 장안 하면 밀가루 요리다. 지치고 피곤하니 일단 입부터 챙기자. 안내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저 멀리서 달려오는 걸 보면 정통제의 명은 벌써 중국 전체에 전해진 것 같다.

“다들 배가 비었지 않은가? 이곳의 면 요리는 천하의 으뜸이라던데 한번 들어가 보세.”

“저는 면 보다는 소고기가 먹고 싶습니다.”

“말리지는 않겠지만 후회할 것이야.”

수양이가 곧 죽어 없어질 간신 왕진에게 뽕을 뽑아낸 덕분에 장안까지 갈 수 있었군요. 그래서 여행 경로가 더 길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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