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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23화 (23/573)

< 1장 22화 - 근자명국행(1) (지도추가) (0719 수정) >

잠시 여기서 우리 조선이 가지고 있는 토종 돼지에 대해서 알아보자. 둘째 아이인 주현이를 가진 아내가 입덧을 할 때였다. 첫째 현동이와 다르게 심하게 입덧을 하며 몸이 말라서 걱정했는데. 갑자기 돼지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더라.

이 시대에 태어나서 돼지고기를 먹은 적이 없었지만. 아내를 위해 한양 근처에서 가장 토실토실한 돼지를 기른다는 집에 와봤고 내 눈을 의심했다.

“대군어른 제가 정성껏 기른 돼지입니다. 볼을 떼고(거세) 길러서 살이 아주 튼실하죠?”

“아 그렇구려.”

“달아보면 한 팔십 근(48kg) 나오지 않을까요? 어이쿠 그렇게 드시면.”

- 뀌이이익!

“팔십 근보다는 무게가 적은걸. 칠십 근(42kg) 정도 되어 보이는군.”

처음 봤을 때는 새까맣고 내 무릎을 조금 넘는 크기여서 검은 개를 기르나 했는데 이게 돼지란다. 여동생의 친구가 기르던 미니 돼지가 절식과 운동을 거치고도 다 자라지 못한 무게가 45kg인데 그거보다 작다고?

“정말로 맛있습니다. 소고기도 맛있지만 돼지고기는 역시 느끼한 맛이 좋습니다.”

“이런 것을 자주 먹을 순 없구려.”

“입신체비를 하면 기름이 많은 돼지고기가 해로운 것 아닙니까?”

“그저 양을 줄여서 먹으면 나쁘진 않소. 세상에 해로운 음식은 없소이다. 먹는 사람이 조절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오.”

아내는 뱃살(삼겹살이라는 말이 없다)수육을 잘 먹었지만 나한테는 질기고 비리다. 현대인의 입맛 문제가 아니고 그냥 조선 입맛으로도 별로다. 그래서 많이 먹지도 못했고.

일전에 강무에서 잡아왔다고 내려준 멧돼지 고기는 더 질기긴 했어도 향은 좋았는데. 혹시나 아내가 입덧으로 식성이 너무 변했나? 하고 하인들을 보는데 다들 비싼 돼지고기라고 좋아하며 잘 먹는다.

“이 돼지 대신에 중국 돼지를 가져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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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에 들려 사신의 직무를 수행하고. 하남까지 내려간 다음. 황하와 운하를 타고 내려가 남경 일대를 돌아보고. 다시 항주에서 배를 타고 산동 반도로 올라오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총 기간은 여덟 달 정도로 잡고 주요 도시만 보고 올 것입니다.”

“목적을 하나하나 이야기 하여라.”

“첫째는 가축과 종자들입니다. 명국에서는 돼지를 많이 기르고 먹어 육(肉)이라 함은 돼지고기를 뜻한다 합니다. 그렇다면 명국의 돼지는 분명 키우기 쉽고 살이 쉽게 붙는 것이겠지요.”

세종대왕님은 상당히 고민하신다. 기록상으로 보면 세종대왕님은 돼지고기를 좋아하셨다 하는데. 조선의 토종 돼지는 너무 작고 자라지 않아서 돼지고기가 더 비싸다! 그리고 곡식 종자도 쓸 만 한 놈이 많겠지.

“그저 가축과 종자를 찾는다면 명국에 의탁해도 될 일이다. 아직 부족하구나.”

“둘째로 수많은 서책들이 남경에 있을 것이 분명하여서 그렇습니다. 남송부터 대대로 내려온 도읍이며 명도 처음에는 남경에서 시작하였다 합니다. 그런 곳이니 북경과 다른 풍토를 가지고 더 많은 서책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을 보내서 찾으면 될 것이 아니겠느냐.”

“제가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담은 서책을 찾는 목적입니다.”

서적도 중요하다. 사실 내가 알고 있는 많은 지식도 검증과 연구에 시간이 많이 들어간다. 당장 인삼 재배법? 난 개념만 알지 아래애들이 몇 년을 고생해야 하는데? 그러니까 남송시절 서적에서 ‘음지 식물 재배법’ 같은 것을 찾아내면 편하지.

“네가 남경을 목적지로 정한 까닭을 알겠구나.”

“그렇습니다. 남송이 40년간 달자들에게 저항한 기반이 있을 것이며. 홍무제도 남경을 바탕으로 하여 대륙을 통일하였으니 많은 기록이 있겠지요.”

중국 안을 뻥 좀 섞어서 1만 리를 돌아다녀야 한다. 대충 기억대로라면 3000km 나오고 배 타고 움직이는 거리만 800km네. 사람이 말 타고 하루에 60km 정도는 어떻게든 가능하겠지.

“네가 오가는 거리는 보통 사행의 세 곱절이 되겠구나.”

“여기에 참여하는 이는 수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견문이 늘어날 것입니다.”

세종대왕님은 지도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신다. 보통 사행만 해도 승진에 혜택이 주어지는데 이 거리에 그런 고생을 한다면?

“얼마 전에 네 장녀인 주현이가 났지. 사행의 일정을 조정하여 삼신상(아이의 백일 때 차리는 상)은 차리고 떠날 수 있게 할 것이며 돌잡이는 볼 수 있게 할 것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럼 생각하는 이를 천거(추천)해라. 나는 신료들과 세세한 사항을 정하겠다.”

집으로 들어와서 이 이야기를 하자 아내는 당연히 뒤집어졌다. 말이 8개월이지 사행을 두 번 반 뛸 기간이다! 보통 사행은 가면서 30일, 행사 40일, 오면서 30일로 총 100일이니까.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집안의 가장이! 북경에 다녀오는 것도 아니고 명국을 돌아 남경까지 다녀오신다니요.”

“여덟 달 이내로 일정을 맞추겠소. 다 생각해 둔 것이 있고 명국은 조선과 달리 말을 타고 하루에 백리는 쉬이 갈 수 있으며 중간부터는 운하를 따라 움직일 것이오.”

아내는 화를 내기 보다는 불안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이제 둘째가 막 태어났는데 중국에서 8개월을 지낸다 하면 다들 이럴게 분명하다. 당장 세종대왕님도 걱정하시던데.

“같이 움직일 분들은 누구이십니까?”

“몇 사람을 정했소. 그들이 나의 호위 겸 같이 견문을 넓히는 자가 될 것이니 염려 마시구려.”

“몸을 언제나 소중히 생각해 주십시오. 갓 태어난 우리 주현이를 언제나 생각해 주십시오.”

“내 뼛속에 새기리라.”

이번 사행의 목적은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다. 다행히도 토목의 변이 일어나기 전이고. 아무리 암군 정통제의 치세라지만 큰 변고도 일어나지 않은 상황이니 위험하지는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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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수찬께서는 어쩐 일인지 아십니까?”

“아니 모른다네. 청보(이개의 호) 자네는 알고 있나?”

“다들 집현전에 있지 않고 여기에 온 겐가?”

“원 직전(원호. 생육신 중 한명)님? 어인 일이신지요.”

원호, 신숙주, 이개는 각기 자신들이 왜 모였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머쓱한 표정의 한 명이 더 들어왔는데 군기시에 있던 박강이라는 자여서 서로 쭈뼛거리면서 소개를 했다.

“주상전하 납십니다!”

“전하?”

“그대들을 부른 것은 다른 일이 아닐세. 수양대군이 다음 사행을 겸해 명국을 돌며 물산을 수집하고 배움을 얻고자 하는데. 그대들이 여기서 얻을 것이 있을 것 같네.”

다들 눈빛이 변해서 세종대왕을 바라본다. 보통 사행만 다녀와도 출세에 도움이 된다. 그런데 명국을 돌아다닌다고? 그렇다면 최소 1품계 승진은 확정이다.

“그 기한은 얼마나 됩니까?”

“여덟 달 이라네. 다음 사행은 시월 중순 경 출발할 것이고. 여기서 여덟 달 동안 명국의 북경으로부터 시작하여 상산, 낙양, 서주, 양주, 남경을 거쳐 항주로 배를 타고 올라가 산동 반도를 통과해 다시 북경으로 들어가는 것 일세.”

혼일강리역대국도 위로 세종대왕의 손가락이 스치면서 경로를 알려줬다. 적어도 일만 리가 되는 긴 여정이다. 일정 안에 저걸 마치려면 강행군 그 자체였다.

“전하. 여덟 달 이내에 이 거리를 움직이는 것은…….”

“하루에 백리 정도를 움직이며 큰 곳만 열흘 아래로 돌아본다네. 유람이 아니고 나라의 일이니 이 정도면 족하다네.”

“그렇게 된다면 무엇인가 일이 생겼을 때 대처하기가 힘듭니다! 전하 조금만 일정을 조정해 주시옵소서.”

신숙주가 대충 경로를 계산해도 이동 거리가 너무나 멀었다. 그는 볼살을 푸들거리면서 어떻게든 조절해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한 달에 이천리라 함은 저희가 왕환노정(往還路程 - 공식적으로 움직이는 북경행 사신) 으로 움직이는 거리입니다.”

“그렇다. 수양대군과 머리를 맞댄 끝에 결정한 일정이니라.”

“하다못해 산동 반도에서 개성으로 배를 타고 옴은 어떠합니까?”

“아니 된다. 대국에 보내는 예의가 있는데 어찌 명국을 유람하듯 조용히 빠져나가느냐.”

사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만. 세종대왕은 명의 황제가 꼬투리를 잡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일종의 검열같이 쓸데없는 것을 가져가지 않는다고 증명할 생각으로 북경에 향한 것이다.

“주상전하. 저의 몸은 비대하여 그 사행에서 버틸 수 없을 것이옵니다.”

“올해 스물다섯이거늘 어찌하여 그런 변명을 내뱉는가? 설령 몸이 비대하다 한 들 수양대군이 알아서 과인과 같이 올바른 몸으로 만들 것이다.”

수양대군이 말하길 ‘신숙주 만큼은 절대로 빼지 말아 주십시오. 그의 통역이 절실합니다.’ 라고 한데다가. 믿고 키울 인재였기에 더더욱 굴리고 싶은 세종대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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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되었네. 다들 정한 일을 열심히 하게나. 그리고 마정호(마일용의 호) 자네는 혼인하였다고 너무 여색에 빠지지는 말게 그러다 뼈 삭는다네.”

“제가 이 입신체비장을 책임지고 있을 터이니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우현규 자네는 우선 배워야 할 운동들은 다 배웠어. 몸조리를 잘 하고 그동안 내가 알려준 의원들에게 나서 각종 수기요법을 전수받게나. 미리 삯은 주었으니 염려 말고.”

“알겠습니다.”

서산군은 아직도 우물쭈물 하면서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 앞으로 사람을 좀 더 가르치도록 방향을 잡아볼까.

“그리고 종제는 부디 아바마마와 형님을 잘 보살펴주게.”

“제가 배울 것이 더 많지만 부족한 몸으로도 최선을 다해 임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천장 자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고 싶었지만 도리가 있나.”

하위지에게는 기초적인 입신체비의 자세를 교정하고 다듬는 일만 시켰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돌아오면 확실히 가르쳐야지.

“한 달이었지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마정호는 비록 가진 지식은 그대보다 못하지만 몸을 보는 것은 잘 한다네. 서로 도우면서 이 입신체비장을 지켜주게. 그렇다면 이제 가보겠네!”

여덟 달의 여정이니 여름옷. 봄옷. 입고 갈 겨울옷을 두벌 씩. 신발과 관대도 죄다 챙기고 하니 짐이 40kg 가까이 되었다. 세종대왕님이 좋은 말을 하나 더 주셔서 천만 다행이야. 그렇게 나의 중국 여행은 아니고 답사가 시작되었다. 현대에서 북경은 한번 가봤으니 두 번째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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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2년 12월 동지사로 북경에 도착했다. 일행이면 전체가 아니고 나, 신숙주, 이개, 원호, 박강, 거기에 세종대왕님이 붙여준 세 명의 무관과 비상시를 대비한 의관 전순의(全循義 - 문종, 단종, 세조의 어의)의 중국 답사 일행이다.

그 무관 중 한명이 강곤(康袞)이다. 내금위에 있고 원래도 수양대군과 엮인 정난공신인데 이게 역사의 장난이야 뭐야? 다른 하나는 무려 남빈. 그 억울하게 죽은 남이 장군의 아버지고.

“크헥 쿨럭.”

“모과청을 준비해 오길 잘했네.”

“부수찬께서는 역시 체력을 조금 더 기르셔야 합니다.”

“의원의 진찰을 받으실 때 까지 조금만 참으십시오.”

신숙주는 마른기침을 하면서 가래를 뱉어댔다. 인후염인가 뭔가 도저히 모르겠네. 말도 제대로 못하고 있잖아?

“이개 자네는 명국의 말을 안다 하였나?”

“잘은 못합니다. 어른께서는 어느 정도로 하십니까?”

“정음을 만들 때 배워 둔 것이 있어서 간단한 대화까지는 된다네.”

신숙주가 비만인 것이야 참아주겠는데 폐도 약해? 여하튼 내가 이 사행에서 가장 직급이 높은데다가 대표니까 근엄하게 있자. 북경에 가장 먼저 발을 디뎠는데 정말 별세계다.

“와 홍위병들 진짜.”

“위병들이요?”

“절도가 넘치는구려. 아국의 군인의 기세가 저 절반만 되어도 당해낼 자가 없을 거요.”

매번 이층집 한두 개 있고 기껏해야 20미터도 안 되는 건물만 있는 한양을 봐서 그런가. 정말 눈 돌아가겠다. 현대에 다 망가지고 박살난 다음 가까스로 되살린 북경이 아닌. 명나라 초기의 국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 이곳 북경이다.

당장 저 멀리 있는데도 자금성의 모습이 보이니 정말 어마어마하다. 벽돌만 1억 개가 넘게 들어갔다던가? 이것이 대륙의 힘인가 뭔가 그거냐?

“석감이 좋은 물건이지만. 명국에서도 통할지 의문입니다.”

“염려 말게나. 조선 하면 인삼이고 그 인삼의 즙을 섞었으니 눈이 돌아갈 것이야.”

이번 사행은 정기적인 예물 말고도 우선 뇌물로 뿌릴 석감이 육백 근, 진상할 석감이 천 근 이나 들어갔다. 석감에 손상된 인삼을 첨가한 덕분에 은은한 인삼향이 나는 특별 상품이다. 6000석 짜리 뇌물이 얼마나 효험이 있을지 보자. (쌀 4석 = 인삼비누 한 근 600g, 보통 비누는 네 근 2.4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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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감이라고 하여 조각자나무와 같은 줄 알았는데. 설명만 들어도 대단하군요.”

“조선에서 부족하나 정성을 기울여 만들었습니다.”

“체구도 장대하신 분이지만 배움도 깊으신데 이는 번국 조선의 흥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족한 저를 너무 추켜세우지 마십시오. 잡학에 능할 뿐 나라를 다스리는 덕은 세자저하와 주상전하에게 있으니 이것이 진정한 흥복입니다.”

먼저 환관들에게 간단한 설명을 했는데. 물건을 보지도 않았지만 벌써 기뻐한다. 설마 거시기를 잘라 여성화가 진행되었단 말인가?

“아직 행사에는 여러 단계가 남아있으니 제가 시간을 내어 만생원(万牲园 - 동물원)의 귀물들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대군께서는 풍채가 남다르시니 귀물들이 놀라 달아날지도 모르지만요.”

“제 풍채가 어떻단 말씀이십니까.”

“떡 벌어진 어께는 하늘에서 내려온 신장(神將)과도 같고 우람한 팔뚝은 증장천(增長天 - 불교의 사천왕. 사람이 사는 세상을 지켜준다 한다)과 겨루어도 손색이 없습니다.”

뭔가 이상해서 얼굴을 보니 ‘하악하악’ 그 자체다. 설마 환관인데도 동성애자인가. 생각을 돌려야한다. 이 시대의 동물원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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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이 코끼리입니다. 안남에서 바쳐온 것인데 여덟 마리나 있습니다.”

- 빠오오옹!

“뭐야? 왜 그러지? 왜 물러나는 것이냐?”

울타리에 손을 얹고 쳐다보자 코끼리가 뒤로 두 걸음 물러나서 주저앉았다. 아니 무릎을 꿇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겠지? 이게 무슨 현상이야? 진짜 그 실록의 내용이 거짓이 아니야? 수양대군에게 왕재가 있었나? 뭐 운명 그런 거냐? 이개도 어안이 벙벙해서 가만히 있었다.

“이런 기이한 일이 어찌.”

“난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네.”

“죄송합니다! 미리 연통을 주셨다면 준비하였을 것인데!”

멀리서 뛰어오는 젊은 남자는 사육사 같은데 나와 너무나 닮았다. 그냥 나의 키를 10%정도. 체형을 30%정도 축소해 놓으면 아주 정확히 일치할 것 같았다. 그냥 닮아서 그런 거야? 코끼리는 시력이 아주 나쁘다던데 착각했나?

“우리 둘이 너무 닮은 것 아닌가? 그리고 저 코끼리들은 왜 그런가?”

“혹시 울타리에 손을 올리고 지그시 보셨습니까?”

“어떻게 알았나?”

“제가 조련할 때 간식 준다는 표시를 그렇게 보냅니다.”

이개가 헛웃음을 내는데 나도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수양대군은 이 일을 경험하고 정말 자신이 준비된 왕이라 생각했겠지. 진짜 우연이 너무 심해도 이 정도면 무섭다.

“어쩐지 뒤로 물러나서 무릎을 굽히더군. 자네는 몇 년간 여기에 있었나?”

“올해로 칠년? 육년 되었습니다.”

“그런가? 그럼 그동안 코끼리를 많이 들이고 내놓았을 것인데. 고생이 많군.”

아마 베트남 쪽에서 들여온 코끼리의 유지비를 감당하지 못하니 주기적으로 팔아넘겼을 것 같다. 그렇게 이야기하니 상대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 말에 수긍한다.

“그렇습니다. 20마리 정도 바뀌었죠. 그런데 제가 처음 들어왔을 때 황색 털이 길게 난 녀석이 하나 있었다 하는데 지금은 없습니다.”

“황색 털이라?”

“사람의 말을 잘 들어 재주를 부리던 녀석이었는데 황위에 오르신 황제께서 다른 부호에게 팔아버리셨습니다. 털이 황색이니 백상(흰 코끼리)이라고 사가더군요.”

“그럴 수도 있지.”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동물원에는 공작도 있고 설표도 있고 이것저것 다 있긴 한데 코끼리 빼고는 진귀한 쪽은 아니었다. 역시 현대인인 나의 눈에는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

“정말로 진귀한 금수들이 있으니 놀랍군요.”

“그렇게 마음에 드신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한 가지 청이 있는데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명국에는 돼지를 즐겨 먹는다 하였는데. 아국에도 그 돼지를 키우고 싶습니다.”

“별 일은 아니군요. 조만간 숙수를 부르겠습니다.”

사실 내가 아는 돼지는 금화돈 하나다. 상해 인근에서 기르는 토종돼지고. 체구가 작고 성장이 느리고. 맛은 엄청나게 좋다는 특징이 있는 돼지. 그래도 그 돼지의 상세를 아니까 걱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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