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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22화 (22/573)

< 1장 21화 - 손바닥 밖으로 (0721 수정) >

3월이 되어서 날이 풀렸다. 훈련도감의 정식 출범 이전에 확인을 하라는 세종대왕님의 명을 받아서 남한산에 임시 교장을 만들고 훈련을 했다. 세종대왕님과 함께 일하면 새로운 제도는 언제나 이렇게 몇 번의 시험을 거쳐서 확인하고 점검한다. 이러니까 일거리는 늘어나지만 확실한 효과가 발휘되고.

“자네들 내금위 맞아?”

“죽겠습니다.”

갑옷을 착용하고도 장애물 훈련이 가능한지 검증하기 위해 피갑(皮甲 - 소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 뛰었는데 좀 힘들지만 할만 했다. 하지만 피갑도 입지 않은 내금위는 지쳐서 죽으려고 한다. 아무래도 장애물 훈련은 조금 난이도를 낮춰야겠다.

“다음은 피투체조 전체를 삼십 회 반복으로 해보지.”

“피갑은 계속 입으실 겁니까?”

“물론이네.”

피투체조는 피갑을 입고 하니 조금 힘들었다. 아마 보통 사람들은 다 마치지도 못하고 절반정도만 마치고 탈진하리라. 장애물 훈련과 피투체조에 대한 평가는 김종서가 내려줬다.

“화살은 위에서 아래로 내리 꽂히는데. 지금의 훈련은 앞에서 쏘는 것을 중점으로 하니 변용을 해야겠군요. 참호라 하는 것도 조금은 바꿔야 할 것입니다. 기병의 돌격을 막아내기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렇소? 하긴 원시(멀리서 쏘는 활)는 생각하지를 못하였구려. 그런데 여진족들이 포를 쏜다면 이 훈련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소.”

“그런 끔찍한 소리는 하지도 마십쇼. 그놈들은 지금 뼈로 화살촉을 만드는데 어찌 그렇게 변합니까? 혹여나 달단(북원)놈들이 명국의 것을 노획하면 모르겠으나 아직은 아닙니다.”

지금 임진왜란 이야기를 했다가는 날 미친놈으로 보겠지. 조총에 대한 생각도 있는데 이론만 있지 실제로 만들 생각은 못한다. 공조에 들어가려고 해도 눈치가 보여서 못하겠고. 장영실은 아직도 휴가 중이고.

“결국 예산이 문제인데. 천지신명께서 가엾게 여겨 금광이라도 만들어주지 않을까?”

“전하께서 밤낮 나라를 위해 국정에 임하시는데 그런 것에 기댈 순 없습니다.”

“농담이오. 금광이 있어도 명국에서 다 가져갈 것이니 풍년이나 계속 왔으면 좋겠소. 여기에 언제쯤 산성을 쌓을지.”

“남한산성이라. 참으로 대단하신 계획이지만 아국은 언제나 재화가 부족합니다.”

조선의 상황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만 속은 아직도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는 상황이다. 고려 말기의 혼란으로 제도는 간신히 정비하고. 사방팔방에서 아직도 문제가 일어나며. 상국인 명은 아직도 조공으로 과도한 물량을 – 비록 대가가 많다 하여도 양이 너무 많다 – 가져간다.

그러니 세종대왕님이 있어서 다행이지. 괜히 수양대군이 집권하고 재정 문제로 군대를 줄인 게 아니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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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호군 장영실, 주상전하의 명을 받들어 동래로 내려가 백성들의 삶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사옵니다. 지금까지 배워 온 지식이 보잘 것 없지만 입신체비기구를 만들며 터득한 보잘것없는 재주를 한껏 부려…(중략)

그리하여 동래부에서 시험해 보니 종래의 네 곱절, 많으면 여섯 곱절의 생선을 잡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에 남해안에서만 시험해보지 않고 서쪽인 흥양, 해남 일대에서 다시 행하고자 하니…….]

“선박을 바꾸니 여섯 배의 어획고를 올렸다고? 정녕 이 장계가 사실이란 말인가.”

“그렇사옵니다. 너무나 많은 고기가 잡혀 소금의 가격이 오 할이나 올라갔다 합니다.”

동래에서 올라온 장영실의 장계에는 새로운 배의 그림이 있었다. 무거운 물건을 높이 드는데 사용하는 회롱기와 녹로를 배에 올린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데. 어업과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어업이라 함은 바다가 얕은 서쪽에서 행하는 것인데. 남해에서 이렇게 할 수 있는가?”

“공조 판서 박안신 말씀을 올리옵니다. 본디 어업이라 함은 어전(漁箭 - 대나무로 만든 물고기 유도 통로)을 만들어 썰물에 그 안의 물고기를 잡는 것이었습니다. 하온데 장호군의 방식은 그 어전을 배를 움직여 그물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상세히는 제 깨우침이 얕아 보지 않고는 알 수 없습니다.”

“우선 호군 장영실에게 여비를 보내주고 해남 일대에서 협조하도록 명하여라. 또한 소금 값이 요동칠 것이니 충분한 소금을 동래부 일대로 보내어라.”

지금은 오로지 자염(煮鹽 - 솥으로 끓여 만드는 소금)만 있기에 소금을 만드는 곳이 동래 일대에는 한정되어 있었다.

“전하께 아뢰옵니다. 생선을 많이 낚는 것은 좋지만 백성들이 농사를 소홀히 하고 다들 어업에 빠질까 염려됩니다.”

“우선 동래부 관할로 새 선박에는 반드시 관원을 태워 소출을 확인하게 하며. 이전에 어업을 하였던 자로 가려 받도록 하여라. 추후 이 일에 대한 상세를 정할 것이다.”

업무가 연이어 계속되었고 피로가 쌓였지만. 세종대왕은 그다지 피로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자가 도우려 하였으나 거절하였고. 세자는 군기시에서 다시금 화약에 묻혀서 살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참으로 알 수 없는 세자와 수양대군이었다.

“참으로 빼어난 자식들이지만 둘이 어찌 이렇게 닮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거일반삼(擧一反三 - 하나를 알려주면 셋을 안다) 지만 그건 잘못된 것이다. 하나를 가르치면 셋까지 스스로 배우는 자가 있고. 다섯까지 배우는 자가 있다. 하지만 둘째인 유는 달랐다.

“하나를 가르치면 둘 셋은 건너뛰고 넷부터 여덟까지 아는구나. 그러나 자신이 셋까지만 아는 줄 알고 겸손하다니. 장 호군은 지식이 많은 자이기에 유와 함께 일하며 얻은 지식이 있겠지.”

둘째에게 선물을 하나 해야겠다. 관직을 내려주면 불편한 소리가 나올게 뻔하다. 제자는 셋 밖에 없으나 다들 영특한 자였고. 자신이 봐두었던 인재인 하위지도 제자로 넣어줘야지.

그래도 종친이며. 자신의 둘째라는 위치가 있으니 상국으로 향하는 동지사에 보내면 적당할 것이다. 그 사이에 중앙 관료들과 연결되어있지 않고. 부담이 가지 않는 제자들을 조금 넣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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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2년 6월 한여름에 서산군은 500근을 넘어 3대 운동 합이 550근에 이르렀다. 고기 섭취가 부족해서 근육이 늘지 않기에. 단백질 보충을 위해 구운 닭 가슴살을 가루로 만들어 뭉친 것과 유청단백을 좀 먹였더니 이전보다 근육이 빠르게 올라온다.

“배운지 일 년이 좀 넘었는데 550근을 들다니. 내년이면 교부(敎簿)가 될 것 같은데?”

“제가 몸이 좋지 않고 배움만 깊으니 어찌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말 말게. 벌써 내가 써준 서책의 속편까지 모두 외우고 행하지 않았나?”

서산군은 벌써 책의 내용은 다 읽어보고 거의 외우다시피 하였다. 내년 초면 근력은 조금 적어도 첫 입신체비사가 되겠지. 마서방은 암만 공령(플레이트)으로 답을 알려줘도 삼대운동만 칠백 근으로 올라갔지 머릿속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단다.

“종형께서는 학문이 매우 깊으시니 저는 언제나 배우는 입장입니다.”

“배움 하니 제수씨와 소실(첩) 윤 씨에게 호신술을 가르친 것인가?”

역사는 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혹시나 모르는 마음에 그놈의 강간사건을 막아보고자 서산군에게 간단한 호신술을 알려줬다.

“말도 마십시오. 입신체비를 배워 몸이 튼튼하고. 이걸 알고 있기에 상처가 없었지. 모르는 이는 막아내지 못하고 대번에 코뼈가 부러졌을 것입니다.”

“자네와 함께 길을 갈 때 암키와 두 개와 수키와 한 개가 같이 떨어졌었지. 혹여나 화가 생길지 몰라서 가르친 것이니 그리 생각하게.”

말이 씨가 된다고 누군가가 입신체비장 문을 부술 듯이 두들겼다. 문을 열어주자 헐떡거리는 종 한명이 거의 굴러 들어오듯 다급하게 안으로 뛰어들어 외쳤다.

“서산군 대감 계십니까! 소실(첩)께서 양녕대군 어른에게 큰 상해를 입혔다 합니다!”

“큰 상해라니 그것이 무슨 소리인가!”

“그것이 왼팔을 부러트리고 치아를 상하게 했다 합니다!”

역사가 변하긴 변했네. 강간에서 강간 미수로. 그리고 팔이 부러지고 치아가 상해? 이 시대가 시대고 법이 법이니까 이거 암만 그래도 강상죄에 해당되는데?

<1시간 전>

“셋째는 조카놈 따라 그렇게 열심히 배운다니 참 대단하기도 하다. 새아가야! 게 있느냐? 차를 진하게 우려내 오거라.”

오늘은 또 뭐로 놀까? 하고 고민하는 양녕대군은 쉰이 다 되어도 변한 것이 없었다. 셋째가 함안 윤 씨 문중에서 소실(첩)을 들였다는데 놀려나 보자. 차를 가져오라 시키고 사랑방 문에 나무로 만든 물통을 올려놨다. 문을 밀어 열면 쏟아지면서 옷이 젖어버리고 차도 놓치겠지.

“아버님 들어가겠! 꺄악!”

“어이쿠 얘야 내가 농을 좀 부렸다. 내가 이런 걸 좋아하니 가끔 어울려 주거라.”

“옷이 다 젖어버렸어요!”

한여름이어서 얇은 무명 적삼에 물이 적셔지니 보기가 좋았다. 셋째 녀석이 어디서 구해왔는지는 몰라도 - 애초에 집안일에 관심이 거의 없었으니 당연히 어느 가문 어느 성씨인지도 모른다 - 참으로 몸매도 참하고 얼굴도 반반하다.

“아버님?”

“허허 아가야 이리 와보련.”

“저기 아버님! 이러시면 안돼요!”

“안 되긴 뭐가 안 돼! 돼!”

양녕대군이 왼손으로 멱살을 잡고 벽으로 밀어가며 오른손으로 옷고름을 풀려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서산군을 통해 호신술을 배웠기에. 반사적으로 양녕대군의 손을 잡고 아래로 뒤틀었다. 갑자기 왼손이 아래로 빨려 내려가면서. 양녕대군의 체중과 윤 씨의 체중이 모두 양녕대군의 왼팔에 집중되었다.

“끄아아악!”

“꺄악!”

얽힌 두 사람이 정신을 차리자. 덜렁거리는 양녕대군의 왼 팔이 보였다. 덜컥 겁이 올라왔지만 이런 경험은 한때 세자였던 양녕대군에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망할 계집이 대체 무엇을 배운 것이냐!”

“누가 좀 살려주세요!”

한 손이면 아녀자 정도는 쉬이 목을 조를 수 있었다. 아직 남아있는 오른팔로 목을 조르려고 했는데. 윤 씨는 양녕대군의 오른팔 안쪽 관절을 거세게 눌러버렸다. 목숨이 위험하다 생각해 튀어나온 괴력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 양녕대군의 몸을 기울이기에 충분했다.

“끄억!”

양녕대군의 상체가 딸려가 머리가 앞으로 기울어지고. 그 방향과 정확히 일치하게 소실 윤 씨의 머리가 날아왔다. 인중에서 격통이 느껴지면서 양녕대군은 기절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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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뭔 일이야.”

“아버지! 아니 그리고 작은 부인! 이게 무슨 일이오! 포도청에선 왜 왔소!”

급히 말을 몰아서 왔는데. 양녕대군은 대청마루에 누워 의원들의 진료를 받고 있었다. 팔꿈치 아래쪽의 팔이 부러져 버려서 부목을 대어 치료했고. 위쪽 앞니 두 개 중 하나는 뽑혀버리고 하나는 반 토막도 안 남아있는데다가 입가가 피로 범벅이 되었다.

“앞니는 그냥 뽑는 게 답 같은데. 그냥 두면 썩어버리겠어.”

“대군어른 앞니는 도저히 살릴 방도가 없으니 뽑겠습니다. 초오산(마취제. 극약에 가깝지만 효능은 어느 정도 있다)을 드리겠습니다.”

“아랐서 그냥 해. 니(이)가 너무 아파”

양녕대군의 입으로 초오산이 흘러들어간다. 약효가 도니 사람이 표정이 완전히 풀린다. 진짜 추잡하다 못해서 역겹다. 이딴 놈이 세종대왕님의 큰형이라고?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발치하겠습니다!”

“그아아앗!”

의원들 사이에서 벌써 주정이 퍼졌는지. 이를 뽑은 의사는 주정을 묻힌 솜을 앞니에 대고 지혈을 한다. 상처 깊숙이 고농도 알코올이 스며들면서 고통이 엄청나겠지.

“의금부에서 왔소! 어서 문을 여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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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은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 소상히 말해 보거라.”

“아바마마 소자는 이미 사건이 벌어진 뒤에 도착하였습니다.”

“괜찮다. 처음 경과부터 확실하게 이야기 하여라.”

세종대왕님은 아주 화가 나신 모습으로 양녕대군, 나, 서산군, 첫 목격자인 서산군의 부인과 종들, 그리고 가해자로 추정되는 소실 윤 씨를 친국(親鞫 - 왕이 직접 심문함) 하셨다. 정식 절차대로라면 벌써 소실 윤 씨는 곤장부터 시작했겠지.

“얼마 전 서산군과 함께 입신체비를 하고 목멱산에서 절육(切肉 - 커팅)을 위해 땀을 흘리려던 중 수키와 하나와 암키와 두 개가 옆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리 하여 이를 풀이하니…….”

“그렇다면 호신술이라는 걸 보여 주거라. 의금부에 있는 중죄인중 용력이 뛰어난 자 하나를 데려오라!”

잠시 뒤. 비교적 가느다란 몸인 서산군이 내가 가르쳐준 호신술로 더 큰 덩치인 죄인의 팔을 가볍게 꺾고(함경도에서 잡힌 여진족 죄수라 한다) 자빠트리는 것을 보여줬다.

“전하 제 팔이 부러지고 앞니가 부스러진 것은 제 탓이 아닙니다.”

“양녕대군은 조용히 하라. 저 호신술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겠다. 수양대군은 가만히 있는 서산군에게 호신술을 걸어 보거라. 네 힘이 서산군의 곱절은 넘으니 양녕대군과 소실 윤 씨의 힘 차이보다 더 할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호신술은 가만히 있는 상대에게 쓸 수 없다. 상대가 자신의 몸을 잡고 있는 것을 역이용 하는 거니까. 서산군의 팔을 억지로 올리고 꺾어봤자 넘어지기만 하고. 팔을 당겨봤자 서로 뒤로 구르기만 한다.

“등에 삼백 근을 짊어지고도 일어서는 수양대군의 몸으로도 저런 것을 행할 수 없거늘. 정녕 아녀자의 몸으로 저것이 가능키나 한 일인가? 경들이 보기엔 어떤가?”

“신 영의정 황희 아뢰옵니다. 양녕대군이 윤 씨에게 손을 댄 것이 분명합니다.”

“신 형조 판서 유계문 아뢰옵니다. 만에 하나 머리로 들이받았다 해도 팔을 부러트리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옵니다.”

세종대왕님은 그야말로 뼈까지 씹어 먹겠다는 표정을 잠시 보여주셨다가 포기한 듯 표정이 풀어지셔서는 판결을 내리셨다.

“증좌를 보니 분명 소실 윤 씨의 잘못도 있다. 소실의 몸으로 시아비의 몸을 훼손하였으니 그 죄는 장 일백 대에 유형 이천 리에 해당된다.”

“전하! 지아비로서 부인을 다스리지 못하였으니 저도 같이 벌하여 주시옵소서!”

“허나 겁탈을 행하려는 것을 막았으므로 그 죄를 감하여 태형 오십대로 줄일 것이다. 또한 서산군은 지아비로서 소실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였으므로 부인과 소실을 데리고 도성 밖인 과천현의 사가로 가거라.”

아마 지금 법이 경제육전(經濟六典)인데 이 법은 정말 살벌하다. 명의 혹형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거열형이 기본으로 있는 등. 상당히 가혹한 형법체계니까. 나중에 성종 대에 가서 경국대전으로 어느 정도 완화가 되었지만 아직 법은 이런 상황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양녕대군은 종친으로서 행실을 바로 하지 못하였으나. 몸이 상하여 스스로 죗값을 치른 것이니 더 이상은 관여치 않겠다. 다만 궁으로 들어와 어의의 진찰을 받아 몸을 보하도록 하여라.”

양녕대군도 더 이상은 아무런 소리를 못하였는지 성은이 망극하다는 말만 하고 있다. 태형 50대라고 해도 그저 형식상의 50대이지 실제로 때리는 것은 다섯 대도 안 되겠지.

거기다 과천이라고 해도 지금의 과천현은 동작구, 서초구도 포함되어 있으니까 강을 건너서 조금만 움직이면 내 집까지는 반 시진 정도면 충분히 닿는다. 세종대왕님이 배려를 많이 해 주신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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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동 이후 세 달이 지나 9월이 되자. 양녕대군은 몸이 다 나아도 별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사람이 변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조용히 사는 방법은 터득한 것 같았다. 서산군은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에 더더욱 열심히 입신체비에 임하고 있었다.

나야 언제나와 같이 세종대왕님에게 입신체비를 가르쳐 드렸고. 그렇게 한참을 땀을 흘리다 세종대왕님이 입을 열었다.

“유야. 서산군이 입신체비에 능숙한 것이냐?”

“3대 운동 무게는 적어도. 그 지식은 어디에서 부족하다는 말은 못 할 것입니다.”

“마침 잘 되었다. 네가 명에 동지사로 다녀와야겠다.”

사신? 그놈의 수양대군이 만들지도 않고 창작한 ‘노산군 일기’에 의하면 코끼리를 만나서 절을 받았다던데? 한번 시험이나 해볼까?

“사신이라니. 제가 반드시 가야 할 일이 있습니까?”

“네가 요즘 관직도 가지지 못하고. 입신체비를 퍼트리기 위한 명망도 떨치지 못하니 아쉬워서 그러느니라. 그런데 무엇인가 기대하는 것이 있느냐?”

중국에 가면 가져올 것은 정말 많은데. 돼지 찾으려면 여섯 달은 있어야겠지? 거기다 각종 약재며 종자들을 다 빨아먹으려면 얼마나 걸릴까? 몇 명을 내 휘하에 두고 데려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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