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21화 (21/573)

< 1장 20화 - 대왕님 손바닥 안(2) (0721 수정) >

“본디 정음을 만들면서 모든 이에게 쉽게 글을 가르치려 하였다. 그러나 네가 창안한 제식법은 글을 아는 이에게는 쉽지만 말로만 설명을 들으면 너무나 힘든 일이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럴 수도 있느니라. 그리고 이들의 장비와 훈련방법을 보건데 갑사(甲士)보다는 못해도 많은 자금이 소모될 것이다. 또한 처음부터 그렇게 많은 자금을 투자하였다가 효험이 없으면 어찌 하겠느냐.”

그래. 지금 훈련도감의 개념을 세우고 장비를 마련하려면 1인당 30섬 이상은 투자해야 하지. 그나마도 초기 투자비용이랑 훈련비용만으로.

“이백 명 정도면 가능하겠습니까?”

“이백이라? 무과의 선발 인원이 190명인데 그 정도면 부담은 없을 것 같구나. 그러나 먼저 배운 이들이 모여서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러니 내금위에서 사람을 뽑아 가르칠 준비를 하고. 정음에 집중하자꾸나.”

현실의 벽은 정말로 높고 컸다. 문맹자를 군인으로 쓸 수 없는 이유? 지금 생각해 보니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미군들이 민병대 가르치다가 학을 떼었다지. 글로 전달이 안 되니 하나하나 구두로 전달하다가 효율도 안 나오고 엉망이 되었다고.

“현동이는 정음을 먼저 배우고 소학에 들어갔다 하였다. 그 아이가 다섯 돌(만5세)인데 소학은 얼마나 배웠느냐?”

“소학은 이제 절반을 넘게 읽을 수 있습니다.”

“훌륭하구나. 원래는 내년이나 내후년 쯤 원손 홍위로 물고를 트려 하였지만 현동이로 대신 할 것이다.”

네? 대왕님? 제 아들로 물고를 튼다니요? 무슨 생각이신지 모르겠는데요.

“오기일(정월 대보름)이 지나면 정음을 반포할 것이니 현동이를 궁에 데려올 준비를 해 두어라. 사대부 집안의 아이들도 여섯 돌에 소학을 읽는 아이는 별로 없고 보통 여덟에 대성하니 빠른 편이어서 좋구나.”

“알겠사옵니다. 그런데 관료들이 과연 정음을 좋아할지 의문입니다.”

“반대하는 자가 나온다는 말이겠구나. 그것도 이미 예상해 두었느니라. 자고로 배움이 쉬워지면 그 쉬운 배움을 질시하는 자가 나오기 마련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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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2년 1월 17일. 원래 역사보다 1년 이상 빠르게 훈민정음을 반포하였지만 상황이 다르다. 본디 해례본이 먼저 만들어지고 실질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언해본은 1459년에 와서야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언해본과 혜레본 둘 다 한권으로 묶여서 나왔다. 검수자인 정인지도 따로 할 말이 없었다 하더라.

보름이 지나고. 원 역사에서도 상소문을 올렸던 최만리가 여기서도 똑같이 상소문을 들고 나왔다. 최만리가 기나긴 상소문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세종대왕님이 눈짓을 줘 현동이를 데려오게 하였다.

“신 등이 엎드려 보옵건데. 정음을 제작하신 것이 지극히 신묘하며…….”

끝이 없을 것 같은 상소문도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렀다. 원래 역사에서는 세종대왕님이 화를 격하게 내시며 최만리를 파직하였다 하는데. 여기서는 몸이 좋아져서 여유가 있는지 덤덤한 표정이시다.

“그렇구나. 그대들의 상소를 추리면 한자와 다른 방식이며. 새로운 문자에 새로운 규칙과 숫자가 들어가니 기존의 규칙과 충돌할 것이며. 한글을 쓴다면 한자를 아는 자가 적어질 것이고. 갑작스럽게 글을 만들었다는 것이로구나.”

상소문은 언제나 왕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그것이 폭군이던 명군이던 성군이던 관계가 없었다. 세종대왕님은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을 유지하시며 입을 열었다.

“부제학의 상소는 내 처음 정음을 만들 때 심려하던 것이나 별 문제가 없었다. 수양대군의 장자 현동이 입궐하는 대로 대전에 들라 하라.”

답답한 기다림의 시간이 끝나고. 저 멀리서 현동이가 입궐한다. 이 애는 이제 갓 일곱 살인데(만으로 다섯이다) 싸늘한 대전 안의 분위기에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들어온다.

“이제 나이가 다섯 돌(만5세)이라 하였는데 소학은 어느 정도 익혔느냐?”

“칠 할을 조금 넘게 읽었습니다.”

“배움이 빠르니 좋구나. 허면 소학을 읽어 보거라.”

한자로 만들어진 사자소학을 받았고. 현동이는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읽어 내렸다. 다행히도 내가 가르친 보람이 있는지 술술 읽어나간다.

“부생아신이니 아버지는 내 몸을 낳으셨고 모국오신이니 어머님은 내 몸을 기르셨다…….”

“이백 자를 쉬이 읽으니 그만하면 되었다. 부제학이 보기에는 배움이 어떤가.”

“그 누구와 견주어도 느리다 할 수 없으며 오히려 빠릅니다.”

보통 일곱, 여덟에 소학을 읽으면 범재. 그 이전에 읽으면 수재 정도의 반열이다. 그러나 내 아들은 그렇게 머리가 좋지는 않아 보인다. 그저 학습법이 달랐을 뿐이지.

“수양대군은 현동이를 어떻게 가르쳤는가.”

“처음은 서화와 정음을 섞어 만든 책으로 말문을 틔운 뒤. 사자소학의 음독과 훈독을 같이 가르치며 정음으로 토대를 쌓고 소학을 다져나갔습니다.”

기군망상을 저지를 수는 없으니 아주 솔직하게 답했다. 대전에는 다시 침묵이 감돌고 세종대왕님의 입에서는 내가 상상도 못한 질문이 나왔다.

“수양대군의 장손 현동에게 묻겠다. 네가 보기에는 정음만 배워도 충분할 것 같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정음은 입에서 나오는 말일 뿐이고 그, 그, 한문은 뜻까지 알 수 있으니 한문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정음은 부족한 바가 있으나 배우기 쉽고. 한문은 뜻이 차고 넘치나 배우기 어렵습니다.”

“부제학의 말이 옳기도 하다. 그러나 정음이 왜 훈민정음(訓民正音 -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이라 하였는가. 백성의 구 할은 글을 알지도 읽지도 보지도 못하고 있다. 그러니 적어도 정음(正音 - 바른 음, 여기서는 읽는 법)을 먼저 알려야 하지 않겠느냐.”

최만리가 고개를 숙여 사죄를 시작한다. 적어도 이 자리에서 훈민정음은 한문으로 나아가기 위한 보조용도로 쓰인다는 사실을 공표한 것이니. 자신의 상소와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전하 우둔한 신이 전하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하여 크나큰 죄를 지었사옵니다!”

“수양대군에게 묻겠다. 어찌하여 정음의 규칙에 기존에 없던 분절(띄어쓰기)과 부호를 넣었는가?”

“한없이 쉬운 글로 만들기 위하여 넣은 것입니다.”

한없이 쉬운 글. 유학은 본디 모든 백성의 교화를 목적으로 삼는다. 명분은 세종대왕님에게 있으니 다른 신하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그 말에 따라가야지.

“배움의 시작은 한 없이 쉬워야 한다. 정음만 배운 이는 그것을 바탕으로 한자에 욕심을 부릴 것이며. 그렇게 관직에 나서는 이도 많아질 것이고. 가르침을 쉽게 전달할 수 있게 한다. 세자에게 묻겠다.”

“예 아바마마.”

“원손에게 정음을 먼저 가르친 지 일 년이 지났다. 지금 원손은 얼마나 배웠느냐.”

“벌써 정음을 자유자재로 읽을 수 있습니다.”

놀라움이 대전 안에 퍼진다. 세 살에 시작하여 네 살에 대성하는 쉬운 글. 그리고 한자로 빨리 나아가는 징검다리니까.

“아무리 아둔한 자라 하여도 여덟 이전에는 정음을 배울 것이니 다른 가르침에도 영향이 없구나. 부제학은 이번 일의 책임이 있으니 한동안 물러나 마음을 가다듬도록 하여라. 나머지 학사들은 정음을 반포할 방책을 논하고 있으라.”

최만리는 내년에 죽던가? 그래도 세종대왕님이 격노하지는 않았으니 졸기(卒記 - 신하가 죽으면 실록에 적는 기록) 정도는 적힐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현동이가 대체 어떻게 그 말을 한 거지? 만으로 다섯 살짜리 애가 할 말이 아닌데?

“오늘 정말 고생이 많았다.”

“네 아버지. 주상전하께서는 정말로 대단한 분이십니다.”

세종대왕님이 왜 나와. 그리고 이 쪽지는 뭐지? 왜 보여주지?

“이건 주상전하의 필체가 아니더냐?”

“그것이 가마를 가져 온 분이 정음으로 적은 쪽지를 넣어주셨습니다.”

“뭐라고?”

“주상전하께서 내려주신 명이라 하시며 가마 안에서 읽어 암기해 두라 하셨습니다.”

이거 나도 최만리도 이미 다 세종대왕님이 생각하신대로 굴러간 거잖아? 이미 반포 이후에 일어날 영향까지도 죄다 예측하시고 시작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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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음 반포가 끝나고. 세종대왕님의 제안대로 내금위 무관들과 김종서를 불러 기본 체계를 짜 맞추기 시작했다. 내가 알보병 출신이니 병법은 이 시대 병법을 따라야 하고. 훈련 방식과 난이도 조절에 힘을 써야지.

그렇게 상황을 파악하니 무식한 신체스펙 괴물들이 아니고. 철저히 지적이고 경험이 많은 숙련병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임시명칭은 좀 재수가 없지만 별기군(別技軍)이라 하고 내가 그 별기군의 주 담당자가 아닌 자문위원 정도의 위치다. 애매한 관직은 화를 불러온다니까.

“훈련법을 읽고 행해보니 어떻소?”

“입신체비는 제가 잘 모릅니다만 천축봉(인디언 밀)과 천축퇴(인디언 클럽)는 것은 당장 들여오고 싶었습니다. 자주 한다면 병장기를 사용할 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도수체조라는 것도 몸에 좋아 보입니다.”

“방패를 아주 크게 만든 것을 천천히 돌리고 누워서 몸 위로 굴리니 굉장히 힘듭니다. 하지만 방패수는 적의 창날을 받아내야 하니. 무조건 해야 합니다.”

“석쇄(케틀벨)는 처음에는 이상했는데 몇 번 해보니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악력은 중요하니까요.”

다들 평가가 좋네. 체계적인 훈련법을 처음 해봤는데도 마음에 드는지 몇 명은 나에게 제작방법을 물어보기도 했다.

“만약 이 방법을 남에게 가르칠 정도로 배운다면 얼마나 걸리겠소. 여섯 달이면 충분한 것이오?”

다들 이런 질문에는 고민하고 있네. 나라 일에 그다지 신경을 안 써서 그랬는데 작년 10월에 김종서가 병조판서 자리에 올라 바로 한 일이 내금위 정예화였다. 120명을 다른 곳으로 전출시키기로 했으니까. 아마 이 자리라도 들어오려고 심혈을 기울이겠지.

“다들 무재가 뛰어나니 여섯 달이면 충분할 것입니다만. 이것은 미완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서책에 나온 것을 읽어야 소용이 없습니다. 본래 중요한 일은 여러 번 시험을 해야 가까스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알겠소. 되도록 그대들을 이 자리에 앉히도록 주상 전하께 말씀을 드리겠소.”

결론은 실험을 몇 번이고 해봐서 몸으로 체득하고. 확실하게 만들어야 하는 거구만. 조용히 책만 읽고 있는 김종서는 대체 뭔 생각을 하고 있지?

“판서께서는 보시기에 어떻소?”

“제식훈련이라 하셨는데 이렇게 복잡해도 되겠습니까?”

“제식은 곧 전투력이요. 대열이 무너짐은 패배와 같은 말이 아니겠소?”

“발까지 맞춘다 함은 어째서 그런 것입니까.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렇게 철저히 훈련한다면 그 시간에 창과 칼을 휘두르고 활을 한번 쏘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북한군 제식훈련처럼 해봤자 전투력이 올라가나. 그냥 동작만 맞추고 최대한 각 안 잡고 인체공학적으로 움직이자.

“아니오. 발을 맞출 정도의 훈련도면 명령을 쉽게 전달할 수 있지 않겠소? 또한 개별 전투에는 각개법이라고 따로 만들어 두었으니 염려하지 마시오.”

“각개법이라. 한 몸을 이루어 진군하고 필요에 따라 조를 이루거나 따로 움직이는 방법이 얼마나 효율적일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오장(伍長 - 최소 지휘단위) 안에서 호흡을 맞추는 것에는 쓸 만할 겁니다.”

평가가 그럭저럭 괜찮네. 검증이 안 되었을 뿐이지 이론상으로는 연구 가치가 있다? 이런 소리겠지.

“아직 많이 부족한 것이니 계속 갈고 닦아야 할 것 같소.”

“많이 부족한 것은 아닙니다. 너무나 새로울 뿐입니다. 논리는 충분하나 아무도 효험을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이니 심려치 마십시오. 그리고 이 유격이라 함은…….”

“부족하오?”

김종서는 갑자기 화를 내더니 나를 뚫어지게 노려본다. 아유, 왜 그러세요.

“사람을 잡으려고 하시는 겁니까? 중간에 진창과 탱자나무를 기어서 건너고. 외줄을 타고 오르고 통나무를 건너뛰며… 장애물 훈련이 아니고 귀곡(鬼哭 - 귀신 울음소리)훈련이라 칭하십시오.”

“갑옷을 입으니 다치지는 않을 것이오.”

“목이 꺾여 죽을 것입니다! 그리고 피투(避鬪 - 피하고 싸운다) 체조라는 것은 사람이 분명 죽어나갈 겁니다. 최소 오십 회를 두 번 이상씩 반복한다 하셨습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백 회를 할 수도 있소. 충분히 될 거요”

“수양대군께서는 몸이 빼어나니 그렇습니다! 최대 30회이며 반복을 한다 해도 총 횟수는 50회 아래로 하십시오!”

내금위 출신 군관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조금 무리인가? 그렇다면 한번 양보해보자.

“그렇다면 갑옷을 입히지 않고 오십 회를 한다면 어떻겠소.”

“갑옷을 당연히 입히지 않는 것이 아닙니까! 입히고 50회를 시키면 항우장사가 아니고서야 다 지쳐 죽을 것입니다!”

“그것은 보통 병졸을 보고 말하는 것이오?”

“갑사 기준입니다!”

씁. 어쩔 수 없지. 결론을 말하면. 이걸 다 검증, 실험, 확인해보고 고치고 수정하는 과정을 다 합쳐도 2년이 걸린다. 그 동안 할 일이 많으니 최대한 시간을 아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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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녹로(크레인)를 배 뒤에 두었나 의문이었는데. 효험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이 녹로는 수양대군께서 설계하신 기물에서 비롯한 것일세. 그것을 거꾸로 돌린 것이야.”

길이가 10보(18m), 폭이 3보(4.8m)가 넘는 배였다. 고기잡이용 치고는 크기가 큰데 배의 뒤에는 녹로가. 그 우측에는 밧줄을 엮어 당길 수 있는 회롱기(밧줄을 감는 장치)가 있었다.

“말어! 말라고!”

“이런 씨부럴! 회롱기 감다가 팔 빠져 죽겠네!”

“비웃(청어)이 여기에만 수백 마리가 달려온 거니 당연히 죽겠지! 어여 뜰채로 떠서 들통에 담아! 그물 터지겠어!”

큰 배가 세 척에 작은 배가 한척이었다. 두 배가 서로 밧줄을 연결한 뒤 노를 저어 바다에 둥글게 그물을 쳐서 고기를 가둔다. 회롱기를 말아 생선을 몰아서 끌어올리고 나머지 한 배는 커다란 들통 여러 개와 예비용 그물을 준비하고 있었다. 비어있는 배에서 갈고리가 내려와 청어가 담긴 들통을 들어올렸다.

“녹로 풀어!”

“풀었어! 감아!”

“갈고리 걸어서 갑판위로 올려! 그리고 풀어! 천천히! 옳지!”

“올렸으니 어서 생선 따자고!”

수십 마리의 청어가 담긴 들통이 올라왔다. 어부들은 바쁘게 청어의 목을 잡고 배를 갈라 알 따로. 이리 따로. 내장은 바다에 휙 던져버리고 몸과 머리를 따로 분해하여 각기 작은 통에 넣고 그 위에 소금을 켜켜이 뿌려댔다.

“역시 끌이 배는 녹로를 없애고 갑판을 넓히는 게 좋겠어. 그럼 배를 네 종류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되려나? 녹로도 저렇게 위태롭게 갈고리를 걸어 아래에서 좌우를 움직이게 하지 말고 기둥이 움직이게 하면 좋겠군.”

“아이고 호군나리가 이 늙은 몸을 일하다 죽게 만들려고 이런 기물을 만드신 것입니까?”

“농은 그만두게나. 이거 효율이 너무 좋으니 소금이 필요하겠어. 소금을 또 어떻게 많이 만들지? 전하께서는 아실까? 또 내가 해야 하나?”

뒤에서 장영실을 태우고 대기하고 있던 작은 배가 다가왔다. 그 위로 청어가 담긴 들통들이 가득 쌓이고. 다시금 빈 들통과 소금들이 옮겨졌다.

"이거 몇 마리 낚은 거야? 네 척이고 사람이 25명이 있는데 지금 일곱 통이 오갔어!"

"칠백 마리로 잡아도 두당 20마리가 넘네. 이거 쪽배로 움직일 때와 잡는 양이 비슷한데 힘은 덜 들어가네?"

“다음 고기떼 찾아 가즈아!”

“가즈아아아아아!”

이걸 주상전하께 보여드린다면 충분히 만족하시겠지. 아마 기대하신 것보다 나으면 났지 못할 리는 없다. 험난한 동해바다가 아니고서는 어디서든 원하는 만큼 물고기를 잡아 올릴 수 있다. 물산을 돌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물산을 많이 산출해 낼 수 있으니 품계가 오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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