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20화 (20/573)

< 1장 19화 - 대왕님 손바닥 안(1) (0721수정) >

1441년 11월. 이징옥이 제시한 것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열정적으로 전에 했었던 주룩하네(바르제쉬에 파흘라바니. 이란 전통의 체력단련 시스템)를 머릿속에서 뽑아내고 각종 운동선수들의 훈련방법을 되새기고. 새로운 군대를 훈련할 방법도 모색했다.

“장구류는 어느 정도 구색은 맞췄고. 기본적 훈련법이야 몸으로 확인하면 되니까 완성. 일단 인원은 천명. 처음부터 시험을 봐서 몸 좋은 놈만 뽑아? 신장이 크고 작은 것은 문제가 안 되니 그냥 닥치고 뛰게 만들어?”

가만히 생각해보니 운동능력이 좋으면 무조건 체구가 크다. 전근대 시대에는 원균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다 비례한다. 그냥 체력장 스타일로 자격 시험을 보자.

“이질 같은 전염병이 돌면 끔찍하니 석감도 보급해야 하고. 이 시대에 목욕탕을 만드는 것도 한계가 있잖아. 그럼 샤워장도 만들어야 하나? 샤워장은 또 어떻게 만들지? 대나무로 샤워기 만들고. 수도꼭지는 어떻게 만들까? 황동?”

필요한 건물이 점점 늘어난다. 이러다가는 그냥 별궁이나 행궁 하나가 나올 기세라서 어쩔 수 없이 필수 건물들만 남기고 불편하게 살기로 했다.

“제식은 2주면 간단하겠지? 그리고 무기 기본훈련에 1개월 이상이 소모되고. 기초 사항 훈련도 한 달은 걸리겠고. 결국 내가 혼자 고뇌를 해봤자 설정놀음이잖아? 그냥 세종대왕님에게 평가를 부탁하는 것이 낫겠다. 김종서도 문관 출신이지만 이런 내용은 잘 알겠지.”

시험도 안 해보고 계속 머릿속으로 생각해봤자 설정놀음 외에는 답이 안 나온다. 그나마 한지를 아낄 수 있었던 것도 두루미 깃털로 깃펜을 만들어서 가능했다.

연필을 만들려면 흑연이 필요한데. 흑연을 찾는 일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개성 일대에 흑연광산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위치도 모르는 상황에서 아무도 모르는 광물인 흑연을 찾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니까.

----------

궁궐에 드나들면서 병서도 계속 읽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시대의 병법은 이해하기도 힘들었고. 결국 답답한 마음에 세종대왕님에게 한번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유야!”

“아 형님.”

“요즘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도절제사가 저에게 숙제를 많이 내주더군요. 아바마마의 말씀대로 세상 모든 사람은 제 스승이 될 수 있었습니다.”

형님은 뭔가 생각을 하시더니만 ‘군문의 일은 아바마마의 뜻인가.’ 라고 중얼거리시고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나도 너에게 숙제를 하나 내 주마. 상사독서를 하는 신료들에게 하사할 것이 떠오르지 않는구나. 네가 보기에 열심히 학업에 열중하는 신료들에게 좋은 것이 무엇이 있더냐.”

“건화(말린 해산물)입니다, 건화 중에서 석화(굴)로 만든 건화가 제격일 것입니다.”

“어째서더냐? 다른 좋은 것도 많은데 하필 굴이라니.”

아 이놈의 헬창 마인드. 열중한다는 말에 바로 그럼 아연 고단백 저지방이 필요하다고 답했잖아? 그래도 형님이 의외라는 표정이니 성실히 답해야지.

“굴은 다른 건화와 달리 어부들이 기를 수 있어 귀하지 않아 부담이 없을 것이며. 그저 서늘한 곳에 두면 되니 보관도 편합니다. 국으로 끓일 수도 있고 조금 불려 밥을 하여도 좋고 죽을 쑤어도 좋습니다. 그리고 비린내도 적으니 다른 승려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명답이구나. 아바마마께서는 육포를 하사하려 하셨는데 석화가 더 좋은 것 같구나.”

굴은 좋은 식품이야. 남성호르몬 생성이 빨라지는 아연을 비롯한 무기질도 들어있고 기본적으로 원기를 북돋아주는 스태미나 식품이지. 도로사정이 구려서 말린 굴 정도만 가능하겠지만 그게 어디야?

“형님께서도 굴을 드시면 몸이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거보다 더 빠르게 말이냐? 되었다. 그것보다는 너에게도 질 좋은 석화를 보내라 할 것이다. 그런데 너는 요즈음 몇 근을 드느냐.”

당연히 근육의 성장이 늦어졌을 뿐. 여전히 근육은 계속 증가중이다. 1년에 한 3근정도 늘어나나?

“저는 요즈음 성장이 더뎌서 1080근이 한계입니다.”

“뭐? 처 천근이면 충분한 게 아니더냐?”

“제 목표는 1200근 입니다.”

이런 훌륭한 몸이면 1200근. 720kg정도는 들어야지. 형님 안색이 왜 이리 창백해지는지는 모르겠는데. 계속 중얼거리시는 700근에 그렇게 얽매이는 건 별로 좋지가 않은데.

----------

“어허 세상에.”

“참 풍경이 좋지 않습니까?”

스님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진관사는 현대보다 규모가 훨씬 컸다. 하긴 현대에 와서도 무형문화재가 존재하는 절이니 역사는 깊다고 예상했지만. 지금 있는 건물보다 대 여섯 동 정도 더 많은 것 같다. 이거 숭유억불 국가 맞아? 그리고 한쪽 구석에 익숙한 물건이 있었다.

“이건 또 무엇인가. 이건 소역기가 아닌가? 수십 개가 넘는데?”

“지금 이곳에서 상사독서를 하고 있는 신료들 중 한분이 만들어 사용하시더니 다른 분들도 이 것을 하나 둘씩 만들어 이리 쌓이게 되었습니다.”

분명 입신체비서에 기본적 운동기구 만드는 방법도 써 놓았다. 무쇠로 주물을 떠 만드는 방법 다음에 돌로 만드는 방법도 써 놓았지. 그런데 이렇게 많이 만들었다고? 이 정도면 초보자가 하고도 남을 분량인데.

“신료 분들이 시간이 날 때마다 이것을 들었다 놓았다 하시던데 이것은 대군어른께서 창안하신 것이 아닙니까.”

“맞소. 내가 가르친 적은 없지만 스스로 터득하다니. 참으로 대단하군. 그런데 대체 누구요?”

“하천장(하위지)이라는 분입니다.”

“하천장이라 함은 집현전 부수찬이 아닌가?”

하위지는 나도 몇 번 만나보았다. 그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하위지를 비롯한 집현전 출신 신료들이 밖으로 나왔다.

“범옹(신숙주의 호)은 입신체비를 정녕 하지 않을 것인가? 이 얼마나 좋은데.”

“그런 생각은 접어두게. 난 서책을 읽는 것에만… 수양대군 어른께서 여기 어인 일이십니까?”

“이거 금방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인재들을 만나니 어쩔 수 없군. 나도 공양(식사)을 하겠소. 그런데 신 부수찬을 제외하고는 다들 체구가 당당하시구려.”

신숙주는 훤칠하고 눈이 작다는 묘사와 달리. 신장과 체중 모두가 빵빵했다. 확실한 비만이 맞고. 지금 세종대왕님과 비교해도 좀 더 살이 쪘다.

“맞습니다. 입신체비서를 즐기니 다들 등이 넓어지고 체구가 당당해 지더군요.”

“그래서 모두 하고 있는 것이오?”

“처음에는 입신체비서를 읽은 제가 혼자서 하였는데. 쓸데없이 허송세월 하느니 몸이라도 건강하게 하는 것이 좋아보였습니다. 그래서 너도나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위지는 역기를 가볍게 들어보였다. 맷돌을 끼워 만든 놈인데 한 60근 정도는 나오겠다.

“그렇소? 보아하니 하 부수찬께서는 아주 올바른 신체가 나오는구려.”

“이곳에서만 소역기로 입신체비를 한 지라 제가 과연 잘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놀랍게도 하위지의 몸은 서산군과 비교해도 그리 떨어지지 않는다. 순수한 자습만으로 저런 몸매가 나온다고? 재능은 몰라도 자세는 정확하고 내가 쓴 책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다.

“마침 잘 되었습니다. 수양대군 어른께 청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자네는 학문에도 소질이 있는데 어찌하여 이 길을 걸은 것인가?”

“제가 사가독서를 처음 시작하였을 때. 몸에서 식은땀이 올라오고 단내가 났습니다만 입신체비를 하면서 몸을 다스리자 며칠 심하게 아프다 곧 나아졌습니다. 이런 좋은 것을 계속 배우고 싶습니다.”

진짜 고민된다. 다른 자도 아니고 사육신의 하위지가 입신체비에 맛을 들려? 아니 하위지면 훈민정음 창제도 관여하고 전쟁사인 역대병요도 쓰고 고려사도 썼잖아? 이런 인재가 헬게이가 된다면야 명분은 서지만 국가의 손실 아닌가?

“학문에 소질이 있는 자가 더 좋은 길을 두고 어려운 길을 가는 것 같아서 염려되는군.”

“처음에는 그러한 생각이 들었으나. 입신체비라 함은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면 하루 반 시진만 임하여도 몸을 유지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한번 제 수준을 시험해보고 싶습니다.”

“알겠네. 지금은 상사독서 중이니 배움에 열중하고. 시간이 날 때 언제든 진고개에 있는 내 사저로 찾아오게나.”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열정은 충분하고.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면 서산군과 비슷한 수준까지는 올라가겠지. 사대부 출신 제자는 입신체비의 확산을 위해서 필요하지만 하필 하위지라니.

----------

“주상전하께서 왜 나를 동래에 보내셨을까.”

물산을 돌게 할 것을 만들라. 이전부터 구상하였던 가마를 변용한 수레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다. 하지만 오랜만에 동래로 내려오면서 수레 하나로는 부족한 것 같았다. 길은 굽어있고 때로는 가팔랐으며 조그마한 개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을 적셔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다고 길을 내면 그게 물산을 돌게 하는 건 분명한데 이건 내 일이 아니고 공조에서 할 일인데. 그리고 그게 이번 대에 끝날 일인가?”

생각은 끝없이 이어져 나갔지만 아직도 부족했다. 이 동래부에서 부사와 직급이 동급인데 혼자서 놀 수는 없었다. 손을 놓기는 눈치가 보여 일을 조금씩 도와줬는데 품계가 너무 높아서 그런지 오히려 부담스러워 한다. 이럴 때는 옛 친구를 찾아가자.

“이젠 나리라고 불러도 되겠나?”

“마음에도 없는 소리는 하지 말게나. 그대는 아직도 내 벗일세.”

“한낮 어부가 어찌 벗이 될 수 있다고. 술은 좋은 것이 있나? 오늘 안주는 3일 된 자반비웃(청어)라네.”

“맛이 올라오려면 닷새는 걸리거늘 3일 이라니. 청주도 있는데 우선 탁주부터 마시지 그래.”

탁주 한 동이와 잘 구워진 자반 청어가 소반 위에 올려졌다. 장영실은 동래에 돌아오니 이런 것이 좋았다. 관노 시절 친했던 자 몇을 관직에 오른 뒤 면천시켜주었다. 납속으로 면천하였으니 다들 자신을 우러러 보았고. 개중에 하릴없이 농을 건네는 친구는 이 자 하나였다.

“맛이 이상한데? 이 비웃 상한 것 같네.”

“비웃이 상해? 정말이네?”

“3일 만에 비웃이 상하다니. 소금을 팍팍 쳤어야지.”

“이거 절일 때 늦게 절여서 이 모양이군. 비웃에서 소금기를 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 나물무침을 내오겠네.”

“늦게 절여서?”

왜 자반이 늦게 절였다고 이렇게 되었을까? 자반은 7일은 보관할 수 있고. 충분히 말려서 절이면 달포도 간다. 하지만 이 자반은 3일 만에 쉰내가 올라와 먹을 수 없었다.

“이보게나. 자반비웃을 어떻게 만들지? 자네는 어부니까 알 것 아닌가.”

“그물로 낚은 고기를 집으로 가져와서 바로 만들지.”

“그런데 왜 늦게 절인다는 말인가?”

“생선은 가까운 바다에 있을 수 있고 먼 바다에 있을 수 있지. 먼 바다에 있으면 멀리 가서 하루. 돌아와서 하루. 다시 고기를 내리는데 하루니까 가끔 이런 녀석이 나온다네.”

상한 자반비웃이 마당에 던져지자. 고양이가 냉큼 달려와 물고 달아난다. 장영실은 어찌 된 일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 배에서 내릴 때 상한 것 아닌가?”

“아닐세. 배에서 내리고 소금 간을 할 때는 비린내가 나서 내장 색이 좀 변한 것 빼고는 몰라. 소금을 뿌려도 늦게 내린 놈은 시일이 지나서 갑자기 삭아버린다네.”

왜? 어째서? 보통 자반비웃은 하루가 지난 다음에 배를 가르고 만든다. 그리 하여도 7일 동안 상하지 않는다면. 3일이 지난 다음 만든 녀석은 삼일도 가지 못하는가? 그러고 보니 전에 손이 벗겨졌을 때 주정으로 닦은 적이 있었다.

주정에는 먼지 중의 독을 씻어내는 효능이 있다던가? 내장에도 독이 있던가? 생선이 죽으면 내장에서 독이 생겨서 상하게 만드는 건가?

“이봐 영실이. 이봐!”

“하루 만에 만들면 7일간 저장이 되고, 3일 만에 만들면 3일도 저장하지 못한다면. 바로 배 위에서 만든 자반비웃은 열흘은 가겠군.”

“거 이 친구 옛날버릇 아직도 못 고쳤나?”

장영실은 어린 시절부터 이랬다. 이렇게 일이 생기면 골몰하여 계속 생각하는 것 덕분에 이런 관직에까지 올라갔지. 친구는 혀를 차면서 장영실의 옆에 가만히 앉아버렸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다.

“하나만 부탁할 게 있네. 자네 다음에 비웃을 잡으러 갈 때 잡은 것을 배 위에서 바로 자반으로 만들어주게나!”

“그게 무슨 소리야! 내 배는 나와 내 아들놈 둘이 모는 쪽배야 그럴 공간이 있나?”

“그러면 관아로 가서 다른 배를 찾으면 되겠군. 들어가 보겠네.”

관원들이 수근 거리면서 ‘호군이나 되어서 어부를 왜 괴롭히나.’ 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고용된 어부들과 함께 배를 타고. 낚은 청어를 바로 배를 갈라서 자반으로 만들어 소금으로 절여두었다. 아마 자신의 생각이 맞는다면 이 청어들은 열흘이 되어도 상하지 않을 것이다.

“12일이 지나도 멀쩡하다니.”

“네? 자반비웃이 열흘이 넘게 간다니요?”

“어서 먹어보게나. 조금 삭은 맛이 나지만 이 정도는 하루나 이틀은 더 둘만 하지 않은가?”

“참말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그래 주상전하의 말씀은 이것이었어. 물산이 더 돌 수 있겠지.”

비웃을 잡자마자 배를 따고 바로 절이는 것으로도 4일 이상을 더 보존할 수 있다. 나흘이면 날랜 자는 등짐을 지고 파는 것 까지 감안하여 100리 이상을 옮길 수 있고. 200리도 가능할 것이다.

물산을 돌게 하려면 이 것이 정답이었다. 아니다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입신체비를 위한 기구를 만들면서 또 다른 지식이 늘었다. 그것이 다 합쳐진다면 더 좋은 물건이 나오겠지.

“선소에 있는 목장(기술자. 여기서는 함선 건조 기술자)들을 불러주게.”

“저기 사사로이 목장들을 부르신다면.”

“주상전하께서 내리신 숙제를 드디어 풀 수 있으니 불러야지. 누구든 상관이 없네.”

장영실은 배를 만든 적이 없었다. 동래에서 있던 시절에는 고기잡이 배 정도는 손을 대 본 적이 있지만 나머지는 장인들과 오랜 시간 배를 만들어보고 작동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한 작업은 지금까지 많이 해 왔으니 필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

“요즘 네가 생각을 골똘히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징옥과 관련된 일이더냐?”

“그렇사옵니다.”

“역시 내가 이징옥을 만나게 한 보람이 있구나.”

역시 세종대왕님이 바라는 일이었네. 관료를 다룰 때 숙제를 내는 스타일이기도 하지.

“그자가 저에게 많은 짐을 지워주더군요.”

“이징옥은 북방에서 병졸들을 이끌던 자 이며 군문에 속한 자이니 너와 필요한 것이 다르겠고. 시선 또한 다르지. 네가 요즘 바삐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아서 그랬다.”

“아바마마의 깊으신 뜻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역시 세종대왕님. 뜻이 다 있으시니 나를 굳이 연회에 내보낸 것이 맞았다. 아마 감기에 걸리지 않으셨어도 두 번째 연회에는 내가 나섰을 게 분명하다.

“얼굴을 보아하니 너와 같이 생각이 깊은 자가 고기 하나 가지고 그렇게 잡념에 잠겨있을 리가 없다. 설마 네가 만들려고 하는 것이. 군문에 관련된 일이냐.”

“어떻게 아셨습니까!”

“무엇인지 조금은 보여주어도 좋다. 입신체비서를 완성하는데 향이의 도움이 컸다면 이제 새로운 서책을 만드는 데는 내 도움이 들어가도 좋겠지. 한번 말해보아라.”

지금까지 쓴 책자는 대충 육군훈련소 훈련내용 조선식으로 푼 것과. 조선시대의 병장기에 맞게 조금 개량한 훈련법 들이다. 이게 과연 통할까?

“20인이 1개 조를 이룬다. 어찌하여 이렇게 한 것이냐?”

“그렇습니다. 20인 정도가 모여야 서로 상황을 볼 수 있고 관리도 편하며 사고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천축봉. 천축퇴 라니 불경에서 따온 것이냐? 그런데 보통 훈련과 다른 것이 무엇이냐.”

“무기의 무게는 본디 5근이 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무거운 봉으로 무기와 비슷하게 훈련하면. 나중에 무기를 휘두르는 힘이 확실히 늘어날 것입니다.”

세종대왕님은 군사적 지식이 아주 풍부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나보다는 훨씬 많다. 특히 이 시대에 대한 군사적 지식은 압도적으로 많지. 하지만 계속 고민하면서 보시네.

“입신체비서와 완전히 다른 것이로구나. 서로 어느 부분에서는 조화를 이루는 것이 있는데 반면에 아예 상반된 것이 있으니 신기하다. 그리고 제식법이라는 책자는 흐음.”

“제식법에 문제가 있습니까?”

“이 서책을 보니 정음을 좀 더 빠르게 반포해야 할 것이다. 너무나 많은 것을 필요로 하는구나. 단순히 몇 명의 무관들을 데리고 할 일은 절대 아니다.”

“정음이라니요?”

대체 왜 훈민정음 이야기가 나오지? 군사훈련에 한글이 필요한가? 잠깐 아 젠장. 조선시대는 한자기준으로 90%이상이 문맹자잖아! 군대에서 중졸자 이상만 받는 이유는?

훈련소 과정이라도 이수 하려면 최소한의 상식과 지식이 필요해서다.(2015년에 변경되었으므로 수양이의 군 입대 시점인 04년도에는 중학교 중퇴 이하는 군 면제입니다) 당연히 글을 읽는 것이 최소조건인데 조선시대에는 이것만 해도 상위 5%에는 들어가는 인재다. 한자만 있으니까 당연하지! 정음이 퍼지려면 몇 년은 더 걸리고!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