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11화 - 자발적 참여(2) (0724 수정) >
사헌부는 관리의 감찰과 기강을 단속하는 기관이며, 사간원은 정책에 대한 간쟁과 논박을 주도하는 기관이었다. 두 기관은 왕권을 견제하고 나라를 이끌어 나가기 위한 기관으로 조선 초에는 건전한 기강이 확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헌부와 사간원 관리들은 최근 들어 세종대왕과 세자의 행동에 대해 미심쩍은 눈초리를 보내왔다.
“전하께서 수양대군이 창안한 입신체비라는 학문을 배우신다 하였는데. 시간을 바꿀 것이라 하셨습니다. 지난 번 말씀하신 대로 3월에 강무(講武 - 계절의 끝에 열리는 왕이 친견하는 사냥대회) 까지만 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게 무슨 이야기요? 겨울은 날이 길어 조회가 늦어지니 새벽에 해가 뜨기 전에 하시므로 하루 일과에 영향이 없지 않으셨소? 미리 말씀하신 여섯 달이 지나시는데 계속 하신다는 말씀이오?”
“전하께서는 조만간 참(오후 3시경 먹는 간식)을 없애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남는 시간을 당겨 업무를 하시고. 대신 석강 시간을 입신체비로 바꾼다 하였으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대사헌 안숭선은 이 상황을 심각하게 보았다. 경연을 아끼지 않고 학식이 월등하신 분이 어찌하여 석강을 없애려 하시는 것인가. 집현전에 있는 경연관들은 당장 경전공부를 적게 해도 되니 좋아할 일이지만 학문 수양을 줄이는 것은 안 될 일이다.
“내가 나서보겠네. 한번 좌천되는 일도 아니고 두 번 세 번도 걱정 없으니 염려 말게. 종묘사직을 위해 올바른 일을 행한다면 마땅히 나서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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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신 안숭선 아뢰옵니다. 전하께서 학문을 익히시는 것은 언제나 바람직한 일이며 종묘사직을 위해 모범을 보이시는 것이옵니다. 허나 석강 시간을 줄이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니 부디 입신체비를 3월 강무까지만 하여 주시옵소서.”
“대사헌은 그리 생각한단 말인가?”
“그렇사옵니다. 본디 학문이라 함은 수양에 있어 긴 시일을 요할 수도 있사오나. 그 중에 국가의 일과 다른 학문을 수양하면서 번갈아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다른 관리나 그놈의 문제덩어리 큰형(양녕대군)을 탄핵하고 나서거나 정책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던 사헌부에서 상소가 올라올 것은 예상했다. 석강을 제하면 스스로의 공부시간이 반으로 줄어드는 거지만 세종대왕 입장에서는 절대 아니었다.
지금의 삶은 너무나 좋았다. 몸은 피곤하더라도 눈이 잘 보이고 머릿속에는 뿌연 안개처럼 피로가 차 있지 않아 이치를 잘 파악할 수 있으며. 하루하루가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소갈증에 시달리며 여섯 시진(12시간)을 일하는 것 보다 소갈증 없이 네 시진을 일하는 것이 더 좋았다.
“경은 그 간에 내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알고 있는 것인가?”
“전하께서는 언제나 백성을 생각하시어 바삐 움직이셨습니다.”
“그러하단 말인가, 어의를 들라 하라.”
“신 양홍수 대령했습니다.”
어의라니? 양홍수를 비롯한 어의들이 들어오자 세종대왕은 나지막이 말했다.
“어의는 입신체비를 시작하기 전까지의 환후를 상세히 말하여라.”
“전하! 그것은!”
“이미 환후가 사라지고 있는데 이전의 일 정도는 말 하여도 좋다.”
양홍수의 입에서는 즉위 후부터 시작된 세종대왕의 소갈증에 대한 적나라한 말이 흘러나왔다, 모든 대소신료들은 그 말을 들으며 몇몇이 눈물을 흘렸다. 왕이 얼마나 고통을 받아왔는지, 그리고 자신들은 그것도 모르고 눈앞의 일이 고달프다며 얼마나 속으로 원망했는지. 그 모든 것들이 자신들의 가슴속을 헤집고 있었다.
“그리하여 전하께서는 최근 들어 안력이 돌아오시고 소갈증이 거의 사라지셨습니다.”
“들었는가? 사헌부와 사간원은 정책의 필요성과 신하들의 일탈, 부정부패를 잡아내는 것인데 그 관심이 안으로 들어왔다면 이 내가 어떻게 지내왔는지는 알고 있지 않겠나?”
“신 주상전하의 환후에 대한 사실은 전혀 몰랐습니다. 신에게 벌을 내려 주시옵소서.”
잘못을 했다면 벌을 청하는 것이 답이다. 그러나 세종대왕은 여기서 안숭선을 쫒아내 보았자 다른 간관이 다시금 상소를 올릴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사헌부는 그런 곳이다.
“자신의 환후를 숨겨왔으니 그에 대한 것은 모를 수도 있다. 헌데 입신체비가 대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인가?”
“용력을 기르는 것이라 알고 있습니다.”
“용력을 기르는 것은 입신체비에 매진하여 몇 년을 임하였을 때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고. 그 이전에 몸을 올바로 만들어 병환을 막아내고 정상적으로 돌려놓는 것일세.”
“하오면 환후가 사라지셨으니 횟수를 줄이시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파직을 당하더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겠다. 세종대왕은 그 속내를 단번에 이해했다. 여기서 끝을 봐야한다.
“횟수를 줄이면 하루하루를 다시 소갈증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고 이는 왕의 소임을 다 하지 못하는 것일세. 허면 이번 강무에 한번 따라나서 보게나. 그동안 소임을 다 하지 못한 것을 이번에 고치려 한다네.”
“알겠사옵니다.”
“만약 내가 강무에서 온전히 소임을 다 하지 못한다면 그대들의 말이 옳은 것이니 삼일에 한번으로 입신체비를 줄일 것일세. 허나 온전한 소임을 다 한다면 그대들이 이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니 눈이 트이고 귀가 열리게 당분간 입신체비를 절반이라도 해야 할 것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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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구조가 불안정한데 바꿀 방법은 없소?”
“역시나 축이 하나면 오래 버티지는 못하는군요.”
“길게 생각합시다, 주상전하께서도 세자저하께서도 올해 십일월이 되어서야 이 기구를 다시쓸 것이니. 앞으로 8개월 간 계속 개량을 해 나가면 새로운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거요.”
봄이 되고 강무를 마친 다음날부터는 보행기를 쓸 일이 없다. 이제 밖을 거닐 수 있으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철거하게 된 보행기를 분해하여 확인해 보니 축이 살짝 휘어있었다.
이대로 계속 썼다가는 무너졌을 가능성이 높고, 자칫 잘못해서 축이 뽑힌다면 와장창! 하고 내 모가지랑 장영실의 모가지가 같이 날아갈 수준이었다. 뭔가 구조적 해결책이 필요하다.
“제가 가져가서 관원들과 머리를 맞대어 보겠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기구 가운데 처음 것이 나왔습니다. 직흉강(直胸降 - 랫 풀 다운)에 쓰일 녀석입니다.
“어디 봅시다. 오호 아주 멋지구려.”
랫 풀 다운, 역기로는 힘든 운동이고 등의 광배근과 대원근을 자극하여 속칭 등빨을 좋게 하는 운동이다. 구조도 간단해 쉽게 만들 수 있다 생각했는데 한번 당겨보니 조금 둔탁한 걸 제외하면 그럭저럭 잘 돌아간다.
“공령(플레이트)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만들어 보았습니다, 주상전하와 세자저하께서 입신체비를 하시는 것이니 내금위 두 명 정도는 보조를 서야겠지요.”
“언젠가는 이 공령 대신 압배(押陪 - 블록)를 쓰는 것이 나아 보이는데 말이오.”
“주상전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이라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또한 많은 배움이 되었으니 대군어른께서 생각이 얼마나 깊으신지 알게 되었습니다.”
음? 그렇게나 차이가 나나? 그런데 장영실은 뿌듯하다는 듯이 기구를 어루만지고 있다.
“도르래는 자주 쓰이는 것이 아닙니까.”
“한 개나 두 개를 엮어 쓸 뿐이지 움직도르래를 이렇게 사용하는 법은 정확히 아는 이가 없었습니다. 이걸 만들면서 녹로(轆轤 - 설치식 거중기)에 들어가는 품을 줄일 수 있도록 여러 가지를 만드는 중입니다. 헌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이 삼베밧줄이 쉬이 상해 자주 갈아야 할 것입니다.”
“삼베라는 것이 잘 늘어나지도 않는 것이지 않소.”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싶은데 비단으로 꼰 밧줄도 생각하여 보았지만.”
“비단으로 밧줄을 만든다면 더 버티겠지. 정말 고래심줄이라도 무두질하여 밧줄로 써야하나.”
금속공학을 비롯한 기술들 수준이 낮으니 방법이 없구나, 탄소강 와이어가 언제 나오지? 20세기? 에이 그건 좀 무리다, 치트키를 쓰면 모르겠는데 그런 건 나한테 없잖아?
“고래심줄이라뇨. 그걸 쓰느니 비단을 쓰는 것이 나아보입니다.”
“하하. 나중에 가면 고래를 잡을 배라도 준비하는 게 좋겠구려.”
지금쯤 세종대왕님이랑 형님은 횡성에 가셔서 강무 중이실테지. 몸을 그렇게 만들어 드렸는데 역사처럼 실명까지 가시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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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금위 소속 관리들은 지금 일어난 이 상황에 대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평소에는 형식상 강무의 시작을 알리는 활을 쏘고 몰아온 사냥감 쪽으로 적당히 활을 쏘는 것 외에는 움직이지 않으셨던 분이. 이제는 예전 태종 대왕께서 하시던 것 보다는 못해도 바삐 움직이고 있다.
“전하께서 저리 바삐 움직이신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제가 전하를 십여 년 넘게 모셔왔지만 없었습니다.”
“세자저하도 마찬가지일세, 날래지는 않지만 예전처럼 몸이 마구 흔들리지는 않는 것을 보게나.”
반면 세종대왕은 말을 타고
“그래, 태종 대왕께서 왜 나에게 강무에 나서고 활쏘기를 즐기라 하였는지 이제야 알겠구나.”
“태종 대왕께서 말씀하셨다니 그게 어찌 된 일입니까?”
“가만! 대저(大猪 - 큰 멧돼지)가 오는구나!”
세종대왕의 활은 힘차게 날아가 80보(144m)정도를 날아가고 바닥에 떨어졌다. 멧돼지에게는 닿지 않는 거리였지만 활을 쏘는 둥 마는 둥 하였던 예전과는 달랐다. 이에 질세라 세자 이향의 화살이 날아가고, 다른 종친들의 화살이 날아들면서 멧돼지는 자리에 풀썩 넘어졌다.
“강무를 단순한 사냥이 아니며. 일신의 수련을 위한 것도 아니고 병졸들의 훈련과 단합을 위한 것이다. 내 태종 대왕께서 내리신 큰 뜻을 외면하고 형식에만 치중한 것이 부끄럽구나.”
“저는 아바마마께서 이리도 옥체를 날래게 움직이는 것이 기쁠 뿐이옵니다.”
저 뒤에서 보고 있던 사헌부 관원들은 세종대왕의 모습을 보고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세종대왕이 강무에서 그저 움직이는 척만 하였다면 지금은 정확히 왕이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니까.
“어떠한가? 몸이 변하지 않았다면 어찌 강무를 이렇게 제대로 행할 수 있겠는가. 허면 약조한 대로. 궁에 들어가서 석강시간에 행할 입신체비에 다들 나오도록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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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후원에는 바짝 얼어있는 사헌부 관리들이 집합해 있었다. 그리고 세종대왕님은 평소와 같이 말을 탈 준비도 마치셨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인데?
“아바마마, 어찌하여 대사헌을 비롯한 사헌부의 관리들이 자리에 와 있는 겁니까?”
“사헌부의 관리들이 일전의 나처럼 눈이 침침하고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하여 입신체비를 해야 할 것이니라. 사람이 많아 역기는 사용하지 못하지만 후원을 달리면 충분하지 않겠느냐.”
“헌데 이 관리들이 다 같이 말을 타게 된다면 후원이 너무나 번잡해 집니다.”
“유야, 너는 날래게 뛰어다니지 않느냐. 그리고 다들 이 정도는 뛸 수 있지 않겠느냐?”
내가 말 위에서 움직이면 동물학대라고요! 그래서 세종대왕님이 내금위와 함께 속보(약 12km/h)의 속도로 말을 달리면 같이 뛰어다닌다. 잠깐 이 양반들 입신체비복도 없잖아? 저 도포자락을 휘날리면서 뛰어야 한다고? 그것도 얇은 가죽신을 신고?
“먼저 출발하겠다. 알아서 따라오너라! 가자!”
“전하! 저희도 같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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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전쟁 같은 상황이었다, 아바마마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몰라도 반 시진 내내 후원에 있는 구릉이나 수풀같이 적당히 험한 곳을 속보 중에서도 조금 빠르게 마구 다니셨다. 나야 입신체비복을 입고 있는데다 체력도 좋아서 괜찮았지만 다른 관원들이 문제였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따라왔는데 이 운동은 반 시진, 한 시간 동안 하는 거다. 그 동안 아마추어 마라톤 선수 수준의 속도를 유지해야 한다!
“으악!”
“대사헌 나리! 괜찮으십니까?”
순식간에 체력이 고갈된 사헌부 고위 관료들이 바닥을 뒹굴었다, 한각(약 15분)이 좀 넘어가면 운동 안한 사람은 다 저렇지. 그런데 세종대왕님은 멈출 줄 모른다. 따라가지 못하면 명을 거역한 게 되니까 필사적인데 그런 정신력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관복이 걸렸 꺄으각!”
“누가 신발 있나?”
“여기에 그런 건 없다네! 맨발로라도 뛰시게!”
수풀을 지나가자 옷자락이 걸려서 넘어지는 사람은 그나마 다행이고 심한 사람은 쭉 하고 찢어져버린다. 가죽신도 튼튼하지 않으니 - 입신체비를 위해 제작한 신발은 두꺼운 소가죽으로 샌들처럼 만들어서 잘 버틴다 - 밑창이 찢어지거나 코가 나가서 아예 훌러덩 벗겨져 버린다.
“누가 좀 일으켜주게! 아이고 내 관모!”
“내 각대(허리띠)가 터졌어!”
“대군어른! 전하를 멈춰주십시오!”
“아니 사헌부에서 무슨 말을 했기에? 주상전하께서 대체 왜 그러시는 거요?”
결국 성한 이는 하나도 없었다, 어명이니 어떻게든 내 뒤를 쫒아서 세종대왕님을 따라가다가 자빠지고 넘어지고 깨져서 탈진한 상태가 되자 보다 못한 내금위 병졸들이 부축해서 후원 입구에 데려다 놓는다.
이마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리고. 넘어지면서 다친 팔다리를 부여잡은 사람도 많다. 옷은 죄다 찢어져서 흙투성이가 되어버려 관복을 새로 맞춰야 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같은 사람이니 하나하나 대충이나마 부목을 만들어 일단 응급처치는 하는데 땀에 흠뻑 젖은 주상전하가 말에서 훌쩍 뛰어내리고는 말씀하셨다.
“그래, 나와 유가 어떠한 일을 하는지 그 두 눈으로 잘 보았는가?”
“예 전하!”
“다른 것은 몰라도 그대들도 이렇게 뛰어다니며 잠시간 몸을 움직이면 보이지 않던 것도 잘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도 잘 들릴 것이니 걱정하지 말게.”
“그렇사옵니다 전하!”
이미 사헌부 관리들은 기강이 바짝 들어가다 못해 내금위 군관들처럼 행동할 지경이었다.
“사흘 뒤부터 사헌부와 사간원은 두 조로 나누어, 한 조는 이전의 조강 시간에 세자와 함께 입신체비를 하면서 후원을 뛸 것이고. 다른 한 조는 지금과 같이 석강 시간에 후원을 뛸 것이다. 그러하니 유야, 잘 알아두고 저들을 위한 입신체비복을 미리 준비해 두어라.”
“알겠사옵니다! 전하!”
“오늘은 기분이 매우 상쾌하니 조금 쉬고 싶구나.”
“아니 되옵니다. 이럴 때 중량을 더 올릴 수 있사옵니다.”
물 타기가 아주 선수시네. 안 돼요 안 돼! 아주 자연스러운 물타기니 10점 만점에 9.3점 정도를 줬는데 PT를 빠지려면 9.5점을 넘어야 한다.
어깨가 급격하게 처진 세종대왕님과 함께 근력운동을 다시 시작하였는데 처음 잡아보시는 직흉강(랫 풀 다운)을 해보시더니 ‘이걸 하면 활을 잘 쏘게 되나?’ 하시면서 쑥쑥 당기신다. 그렇게 근력운동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이 좋은 것을 빠지고 싶진 않지만 나도 도리가 없구나. 앞으로는 조금 바쁠 것이다.”
“아바마마, 국정에 다급한 일이 있다면 상관없사옵니다.”
“그것이 아니다. 내 이 나라 이 백성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거기에 조만간 너의 힘이 필요할지도 모르겠구나.”
나의 힘? 음 입신체비로 뭘 하려고? 우선 겸손하게 나서보자.
“나라와 백성을 위한 일이라 말씀하셨는데 저의 학식은 그리 깊지 않습니다.”
“다른 것은 아니다, 네가 가진 학식 보다는 네가 알고 있는 사람의 몸에 대한 지식이 더 중요하다.”
“알겠사옵니다. 아바마마께서 제 부족한 지식을 찾을 그 날을 기다리며 절차탁마 하겠습니다.”
그렇게 들어가시는 아바마마를 보면서 망상에 빠졌다, 어의들에게 입신체비서를 줬는데 거기서 해부학적 지식으로 야전의학? 해부학? 이런 의학 쪽의 일이면 어떻게든 아는 지식으로 설명이 가능하고. 입신체비를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친다? 아직 나라와 백성을 위한다는 말이 나올 수준은 아니다. 힘을 기르며 몸을 정상으로 돌리는 방법이지. 대체 뭔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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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마마. 정음의 제작은 어느 정도 진전되신 것입니까?”
“내년 초부터 검증에 들어갈 것이다, 유가 가진 지식도 필요해 보이니 유에게 이야기를 하였다. 그 아이는 흔쾌히 수락하더구나.”
문종은 기겁하여 다시 되물었다. 수양대군이 가진 지식은 다른 지식이니까.
“유가 가진 지식이라 함은 인체의 동작에 관한 지식이 아닙니까?”
“그렇다, 녀석은 사람의 몸에서 보이지 않는 근육과 골격의 움직임을 아주 잘 알고 있으니 혀와 입의 움직임은 조금만 생각하여 보면 알 것이다.”
“입신체비서를 처음 봤을 때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만 혀와 입은 근골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과거시험에서 경전을 제대로 이해한 자가 관리가 되어서도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느냐. 비슷한 재능이라 생각한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 자신의 숙원이었다. 이제 집필의 과정은 거의 다 완료되어 검증만이 남았다. 자신이 만든 것이 아무리 대단하다 생각 한들 자신의 머릿속에서만 나온 일이고 다른 이가 그것을 보아주지 않으면 모순과 허점을 그대로 안고 가야한다. 그런 점에서 몸에 대한 지식이 뛰어난 수양대군은 가장 적합한 인재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설령 재능이 없다 하더라도 계속 일을 하다 보면 어디선가는 도움이 되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더냐? 유가 석강과 조강 사이에는 별다른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더구나.”
“유는 지금 조강시간에 저를, 석강시간에 아바마마를 돕고 있으니 그 사이의 비는 시간에 일을 하게 하면 충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