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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10화 (10/573)

< 1장 9화 - 대왕님 대왕님 우리 대왕님(3) (0725 수정) >

1438년 음력 10월 1일. 진양대군의 군호를 수양대군으로 바꾼다는 교지를 내린 다음 헌릉으로 향하여 제사를 지낸 세종대왕. 제사가 끝나고 대관들이 풍수학관이 함께 와 수릉(임금이 살아있을 때 미리 마련 해 두는 능 자리)을 보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세종대왕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아바마마, 소자가 둘째 아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아니하였는데 그 아이도 훌륭히 성장하였습니다. 안에서 기른 자식이 장성한 것은 당연하지만 밖에서 기른 자식도 이리 훌륭하니 고심하고 있을 뿐입니다.’

세종대왕이 생각하기에 아버지인 태종의 방식은 너무나 거칠었다. 그래서 자신과 세자의 왕위와 국가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한 자유롭게 두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그 힘을 갈가리 찢어 버렸다.

그렇게 확고한 왕권을 위해서는 다소 문제가 있는 방식이라도 사용하려 하였다. 부민고소금지법과 같은 것은 자신도 악용의 가능성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지방 세력을 억누르기 위한 방책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수양대군을 따로 중책을 맡기지도 않고. 허송세월을 하게 만들었다.

‘차라리 그 아이가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이미 변하였고. 이제 빼어난 능력을 드러내고 있으니. 그저 세자의 그늘 아래에서 가만히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 바람은 이틀만인 10월 3일 저녁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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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결판을 내러왔다. 미리 사둔 청심환을 반쪽 먹었는데 약효가 좋아서인지(현대에는 금지된 약물도 들어있으니 당연히 좋겠지. 근데 뭐가 들었지?) 형님을 믿어서인지. 아니면 이 기회가 아니면 답이 없다 생각해서인지는 모르겠다.

마음이 아주 잠잠하다. 형님과 정해놓은 계획대로 저녁식사 시간이 끝나고 석강시간 전에 아바마마를 만나 뵙겠다고 입궐했다. 그 자리에서 웃통을 벗고 망건만 쓴 채로 상반신을 다 드러내 버리고. 내금위 군관들의 제지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세종대왕님이 사람을 물러가게 해 놓고 호통을 치신다.

“이게 무슨 일이더냐!”

“아바마마, 소자가 옥체를 걱정하는 마음이 앞설 뿐입니다.”

“그것은 어의가 할 일이다. 왕이라는 자리에 올라 그런 용력을 쓰는 것이 어떤 이유가 있단 말이냐?”

일단 말문을 트는 것은 성공. 애써 눈물을 지어내면서 고개를 들었다.

“아바마마께 있는 환후를 막아내기 위하여 알아내다 이런 용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의 양홍수를 들라 하라. 네가 얼마나 의술이 뛰어난지는 몰라도 나에게 환후가 있다 쉬이 말하는 지 궁금하구나.”

형님의 예상대로라면 ‘세종대왕께서는 사람을 가릴 때 시험을 하신다.’ 라고 하였으니 어의가 올 거고. 예상대로 양홍수를 비롯한 어의들이 달려왔다.

형님도 동궁에서 달려와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놀랍다는 표정만 지었다. 그렇게 사정전으로 들어간 다음에 보니 세종대왕님은 옥좌에 앉아서 매우 불쾌하다는 표정을 짓고 계셨고 양홍수는 그 옆에 서서 나와 언쟁을 시작했다.

“대군께서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시는 겝니까.”

“내 근래에 들어서 아바마마의 옥체에 환후가 있음을 확신하여서 그렇소.”

“그런 불경스러운 일을 어찌하여 말씀하시는 겝니까?!”

“아바마마께서는 일전부터 서책의 글귀가 세세하면 보시기 힘들어 하셨소. 거기서 의서를 찾아보게 되었고 그 환후는 상소(上消)라고 확신하게 되었소.”

양홍수의 입이 쩍 하고 벌어진다. 소갈 중에 하필 상소라고 정확히 집어서 말한 거니까.

“상소의 환후가 있으시니 폐와 위에 열이 일어나 목이 말라 찬물을 많이 자실 것이며. 하소증도 있을 것인데 가슴이 답답하시고 소변이 많으며 탁하고 거품이 날 것이고. 몸에 습이 돌지 아니하고 쌓여있으며 열이 눈과 입으로 몰리신 것이 아니요?”

아주 딱 걸렸지? 미래에서는 실록도 기록도 다 열려있으니 세종대왕이라는 인물에 대한 연구가 아주 잘 진행되어 있지. 하지만 왕의 지병은 아주 심해지기 전까진 비밀이다.

정말로 의지하는 신하. 병을 돌봐야 하는 어의 그리고 바로 근처에 사는 세자와 왕비 정도만 아는 건데 어떻게 증상의 파편만으로 알아낸 것처럼 보이니까.

“그 그리하여도. 환후는 어의가.”

“잠시만 가만히 있게. 네 말이 옳다 하자. 어떻게 소갈증을 고칠 것이냐. 어의는 유의 말에서 잘못 된 곳이 있다면 그것을 바로 말하라.”

“몸을 움직이시고 근골을 바삐 놀려 땀을 내시어 올라온 열과 함께 옥체에 쌓인 열을 몸으로 돌리시고. 그 열이 돌 때 습이 쌓이지 않게 고기를 적게 드시는 것입니다.”

사정전 안을 침묵이 감돈다. 그만큼 직설적으로 세종대왕님의 몸 상태를 이야기 해버렸다.

“......”

“저 말이 옳은 말인가?”

“저 전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충분히 알겠다. 세자는 이 일을 알고 있던 것이냐. 아니면 유가 먼저 나선 게냐.”

“아바마마의 옥체에 소갈증의 징후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유가 저에게 아바마마의 환후를 이야기 하여 유와 같이 행동한 것입니다.”

고기 적게 먹고 운동해! 라는 말을 양홍수도 몇 십 몇 백번이나 참아왔을까. 아무리 이 시대의 한의학이 발전하지 않았다 해도 다들 아는 수준이겠지. 양홍수의 목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세종대왕님이 입을 여셨다.

“네 용력은 나라에서 으뜸 갈 것이며. 이는 바꾸어 말해 나라에서 의술이 아닌 육체를 다루는 법에 대해서는 가장 잘 아는 것과 다름이 없다. 나의 환후를 알아낸 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겠다.”

“정말 감사하옵니다.”

“하지만 왕의 일은 끝이 없으며. 나의 몸 하나만이 소중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네가 만든 육체를 다루는 법을 뭐라 하는 게냐? 내 그것을 보고 마음을 정하겠다.”

입신체비서 형님이 손대지 않았으면 여기서 와장창 무너졌겠지. 나는 미리 준비해둔 꾸러미를 펼쳤다.

“입신체비서라 하옵니다.”

“입신체비서(立身體備書)라. 뜻은 좋으나 그 속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한번 보자꾸나.”

그렇게 삼일이 흘렀다. 세종대왕님은 딱 6개월만 해 보자는 말을 하시며 백기를 드셨다. 형님 말로는 이틀간 설득하느라 죽을힘을 들였다더라.

그마저도 의관을 정비하는 걸 합쳐서 한 시진(2시간)이 내실 수 있는 한계라고 하시는데 좀 짧지만 어쩔 수 없다. 실제로는 한 시간 반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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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님 신장은 한 168정도로 잡고 체중은 110정도 나가시겠네. 내 신장과 비교하고 고도비만인 분들이야 많이 PT 해봤으니까 어림짐작으로는 가능하지.”

내 사저에 있던 역기들은 궁에서 온 인부들이 죄다 가져갔다. 이제 계산에 들어가 보자. 말씀하신 기간은 6개월이다.

원래 역사에서는 6개월 뒤에 당뇨 합병증이 악화되어 실명수준의 시력저하가 일어났는데 이 기간이면 얼마나 좋아질 수 있지? 당연히 현대에서 의욕적으로 체중감량을 시도하는 사람과는 기준이 다르다.

“이론상 하루 운동량 2시간 잡고 식사량 기초 대사량의 1.2배 잡아놓고 하면. 고도비만 환자는 부종이랑 지방이 같이 빠지면서 첫 달에 6㎏ 둘째 달에 4㎏정도는 빠졌고 젊은 사람들은 더 쫙쫙 빠졌지.”

대략적으로 뭉텅이로 끊어서 계산한다. 세종대왕님은 고혈압도 의심되니 과다한 운동은 불가능하다. 저 중량 고 반복이 답이다.

“가장 큰 문제는 수라인데 대충 계산해도 3000칼로리 아래로는 절대 못 내리니 그것도 문제네. 다행이도 수라간에서 이야기를 해보니 우뭇가사리는 써서 다행이다.”

당뇨병 환자에게 중요한 것은 당분조절, 단순탄수화물 억제, 지방질 억제, 단백질 적정량 섭취, 그리고 식사시간 조절이다. 여기에 운동은 무조건 필수고. 우선 당을 태우기 위해 유산소를 최소 1시간 잡아보자.

세종대왕님이 할 만한 유산소는 속보와 승마다. 그 다음엔 큰 근육 위주로 저 중량 고 반복 무산소를 돌려서 근육 크기증가로 당 저장량을 늘리고.

“당분조절은 꿀과 조청의 양을 조절해서 하고. 단순탄수화물은 현미밥은 너무 값싸 보이니 발아현미를 추천해보자. 단백질 섭취는 제한해야 하니 동물성 말고 식물성도 섞어서 전체적인 양을 줄이고. 수면시간 조절은 체력고갈로 빨리 주무시기를 바랄 수밖에.”

아직 최악은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철저한 계획을 짜 놓았다. 이미 형님이 설득에 나서서 수라간의 요리법도 어느 정도는 손을 볼 수 있다. 바로 형님을 찾아가니 정리한 내용을 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변한다.

“제법 상세하구나. 하나하나 설명해 보거라.”

“가벼운 속보로 땀을 올리신 다음 승마를 하여 하체를 단련할 것입니다. 그 후에는 실내에서 소역기와 대역기를 사용하여 근육을 쥐어짜 온 몸에 열을 돌게 할 것입니다.”

“아바마마께서는 한 시진 정도만 자리를 비우실 수 있으니 승마와 속보는 반시진보다 적게 해야 한다.”

“겨울철에는 조회까지의 시간이 기니 문안인사 후 조회를 드리는 사이의 조강 시간에 행할 것입니다. 봄이 되어 날이 길어지면 석강 시간으로 옮기는 것이 나아보입니다.”

형님과 최종 정리를 하면서 일정 조율에 성공했다. 어디 까지나 임시로 하는 일이지만 방법이 있나. 기왕이면 투박한 사제 역기대신 공조에서 잘 만들어낸 왕실 역기를 쓰시는 것을 추천하고 싶었지만 거절당했다.

6개월간 해 보시고 차도가 있으시면 궁에서 쓸 것도 만든다고 하셨으니 방법이 없지. 그리고 역사적인 첫 입신체비 - 보디빌딩 - 을 실행할 곳은 소헌왕후께서 동궁 앞에 있는 서재를 하나 비우고 하는 것이 좋다 추천하셨다. 그 말을 듣자마자 형님 안색이 창백해졌는데 왜 그럴까? 운동은 좋은 건데 우리 형님도 나중에 운동 좀 하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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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치는구나.”

오늘도 반시진이 넘게 그 입신체비서에 있는 대로 운동을 하였다. 같이 빠르게 걷고. 말을 타고 안장 위에서 한참을 시달리고. 바로 동궁으로 들어와 그 소역기인가 하는 기물을 움직이는 걸 반복하였다. 둘째 아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정성을 다해 몸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았다고 하였지만 다 마치고 나면 피로가 몸을 무겁게 한다.

입신체비가 끝난 뒤 석감으로 몸을 닦고 다시 의관을 갖추니 거의 두 시진이 흘렀다. 급하게 조회에 나가서 신하들을 보는 것도 지치고. 팔 다리를 계속 놀리니 알이 배기고 힘이 빠져나간다.

수라를 뜰 때면 손에 힘이 달려서 실수를 할 뻔 했다. 지금도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정서(政書 - 글씨를 바로 쓰다)를 하려 붓을 들고 한 획을 내리긋다가 손이 잘못 움직였다.

“이 종이는 쓸 곳이 없다. 초지서에 보내어라.”

“알겠사옵니다.”

“또 붓을 잘못 놀렸군.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으니 이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몸만 지치는 것이 아니고 팔 다리도 쑤시니 더 힘이 드는구나.”

수라상도 유의 말을 듣기로 한 다음부터 변했다. 밥은 흰밥과 팥밥 말고도 발아현미(發芽玄米) 라는 걸 넣은 이상한 밥이 생겼다. 먹어보니 꺼슬꺼슬하였지만 배가 쉬이 고파지지 않고 머리를 맑게 한다는 말을 듣고 택해봤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국은 푹 고은 쇠고깃국 대신 무와 두부가 들어간 소고기 탕국으로. 전은 기름의 양이 줄어들었고 고기 또한 기름이 적은 부위를 넣고 양은 평소의 반으로 줄었다. 그래도 유의 말을 듣기로 약속했으니 자신도 방법이 없었다.

“쉬이 나아지는 것 같지도 않고 피로도 쌓이는구나. 게 있느냐? 야별참(야식)을 들여오너라.”

“네 전하.”

“소반과(小盤果 - 한과 모음) 이로구나.”

아드득 소리가 나면서 강정이 부스러졌다. 역시나 평소보다 엿이 덜 들어가고 현미가 섞여서 별 볼일 없는 맛이었다. 밤으로 만든 과편조차도 어딘가 밋밋한 맛이 느껴졌다.

인삼정과는 그대로지만 이것도 나중에 가면 새로 만들지도 모른다. 차를 한 모금 마시니 입 안이 개운하다 못해 허전해졌지만 식욕 보다 피로가 앞서서 먹기도 귀찮다.

상을 내가게 하고 상소문을 읽으려 하였지만 몇 개 읽지도 못하고 눈이 감겨왔다. 대체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놈의 입신체비를 행하기 전 까지는 피로를 정신으로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몸이 천근만근 무겁고 눈꺼풀이 감겨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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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몸을 풀겠사옵니다.”

“육일 째가 아니더냐. 어찌하여 역기라는 것을 들지 않는 것이냐.”

“쇠도 계속 두들기면 깨어지듯이 사람의 몸도 닷새 정도를 움직이면 하루는 몸을 정리하고 다시 하루는 푹 쉬어 힘을 보해야 합니다.”

“그 방법이라는 게 무엇이더냐?”

“근골과 관절을 푸는 것입니다.”

세종대왕님 뿔나셨다! 그래도 5일 동안 몸을 힘들여 움직이게 한 보람이 있는지 고도비만 환자에게 일어나는 부종이 천천히 없어지기 시작했다.

한창 PT 트레이너로 입문할 시기에 유연성 운동이 없다면서 투정부리는 아주머니들 등쌀에 어깨너머로 배운 요가동작과 각종 스트레칭 동작을 직접 가르쳐 드리고 어의 양홍수와 함께 관절을 쥐고 트니 우득우득 소리가 난다.

“그래 거기는 시원하구나.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던 것이 풀어지니 아주 좋구나.”

“조금만 더 참아주시옵소서.”

“괜찮으니 조금만 살살 해라.”

천천히 척추를 풀게 허리를 돌리니 생전 처음 들어본 소리가 나서 뼈가 어긋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세종대왕님은 척추디스크가 있었는지 신음소리를 내면서 고통과 시원함을 참으시는 것 같았다.

그렇게 반 시진(1시간) 정도의 정리운동이 끝나고 세종대왕님이 나가시자 다시 역기를 잡고 나도 운동을 했다. 공조에서 역기들을 모두 완성할 때 까지는 이걸 쓰신다니 방법이 있나. 애초에 이렇게 쓰려고 만든 것인데 적당히 하고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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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보름이 지났는데 주상전하께서는 환후가 어떠하신가?”

“세자저하께 말씀드리기는 송구하오나. 저희가 맥을 짚지 못하게 하십니다.”

“혹시 노하신 겐가? 아니면 다른 환후가 있으신 것인가.”

“노하시긴 하셨지만 그래도 수양대군의 정성을 보아 많이 인내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옥체에 징후가 나타나셨습니다.”

왕의 건강상태는 최고 중요 사항이다. 문종은 징후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맞댔다.

“어찌 변하였다는 말인가? 차도는 있으신가?”

“우선 매우(梅雨 - 왕의 소변)에서 거품이 적어지시고 색의 혼탁함이 줄었습니다. 또한 입신채비를 하면서 한우(汗雨 - 임금의 땀)도 많이 흘리셨는데. 물을 자시는 양은 오히려 적어지셨습니다.”

“그 징후는 좋은 것이지 않나? 단 보름 만에 이리도 차도를 보일 수 있는 것인가?”

“하지만 체구가 빠르게 줄어들고 계십니다. 소갈증이 깊어지는 징후가 아니겠습니까?”

“그 또한 소갈증의 징후로군. 허나 여위는 것인지 아니면 유의 말대로 옥체의 습이 돌아 몸이 정상이 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니.”

문종과 양홍수를 비롯한 어의들은 머리를 맞대고 논의 했지만 왕 자신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니 답이 나올 리 없었다.

한 달이 조금 넘게 지나자 전부터 입던 곤룡포의 품이 너무 커져서 새로 만들게 되었다. 옥대의 길이도 줄어들고 몸이 갑자기 줄어든 것을 숨기기 위해 홍룡포로 색을 달리 하였다. 양홍수를 비롯한 어의들은 소갈증이 진전되는 것 같아 노심초사 하였지만 괜한 걱정일 뿐이었다. 그렇게 세종대왕이 운동을 한 지 한 달이 지나갔을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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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녀석은 대체 이 아비를 마소로 아는 것인가 정녕 자기처럼 용력을 부리게 만드는 것인가 모르겠다.”

“그런 용력을 가지려면 이년 동안 쉴 새 없이 몸을 쥐어짜내어 입신체비를 하여야 한다 말했습니다. 아바마마? 지금 읽으시는 서책 말입니다.”

“서책? 대명률 말이더냐? 언제까지고 대국의 법을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느니라.”

“그것이 아니옵고 서책의 글귀가 세세하옵니다.”

“그렇지 세세하니? 내가 이 것을 어떻게 보는 거지?”

허리를 곧게 세우고 서안(書案 - 책상)에서 대명률을 보던 세종대왕은 글자 크기를 보고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작은 글은 전혀 보이지 않아 새로 쓰라고 명을 내렸고. 그마저도 시간이 갈수록 더더욱 흐릿해졌다 그런데 지금은 흐릿하게는 보인다.

“양홍수를 들라 해라!”

당직이 아니어서 퇴청하려던 중 급하게 달려온 양홍수. 그는 조심스럽게 왕의 손목을 잡고 눈을 감았다. 혈맥이 세차게 움직이는 것은 흥분한 탓일 것이다. 그렇게 침묵 속에서 고심하던 중 결론을 내렸다.

“옥체의 습사(濕邪 - 습이라고 하며 한의학에서는 부종을 비롯한 각종 병의 원인 중 하나이며. 양기를 소모하게 만든다고 한다) 가 많이 사라지셨습니다. 또한 안정(眼睛 - 왕의 눈)에 몰린 열이 사그라지어 옥체에 돌고 있으니 이는 소갈증이 밀려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지독한 것이 사라진단 말인가?”

“아니옵니다. 분명 약해지긴 하였으나 여전히 소갈증의 환후는 있사옵니다. 하오나 한 달 만에 이렇게 차도가 있으시면 언젠가는 소갈증을 완전히 몰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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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깨 쪽인데 언제쯤 장영실과 같이 입신체비 기구(웨이트 트레이닝 머신)를 만들 수 있을까? 일 년 정도는 세종대왕님 봐드리고 그 다음부터는 다른 사람들도 제자 만들어서 계속 굴려야지.”

오늘도 새벽같이 일어나서 가마를 타고 궁으로 향했다. 아직 해가 뜨지도 않았지만 세종대왕님은 겨울에도 묘시(새벽 5시)에 일어나시니 한 시간 일찍 가둬야한다.

11월 중순이니 해가 뜨기는커녕 새벽이 밝아오지도 않는다. 그래도 지금 가서 미리 준비해야지 쓴 소리를 안 듣지. 차도가 있는 건 분명 보이는데 확신이 안서네.

부종도 많이 사라지시고 입에서 나는 아세트 냄새도 많이 줄어들었다. 아마 확인은 안했지만 망막질환도 상당히 차도가 있으실 게 분명하다. 일단 당 수치가 떨어지면 망막에 혈액공급이 원활해지며 혈관이 축소되니까.

그렇게 입신체비복(티셔츠)을 입고 위에 누비옷을 껴입어 추위를 막았다. 운동 시간 전까지 후원에서 몸을 푸니 세종대왕님이 새벽같이 일어난 내금위와 같이 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아바마마, 기체후일향만강(氣體候一向萬康) 하시 온지요.”

“이 아비가 미안하구나. 내 너를 믿지 못하여서 그리하였구나.”

“아바마마?”

세종대왕님이 웬일로 이러시지? 그런데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다. 그리고 아비? 몸이 얼마나 변하셨기에 그러는지? 그래도 운동은 빼지 마셔야죠?

“끄응! 어제 대명률을 간만에 보았는데 서책의 글귀가 제대로 보이더구나.”

“대명률이라 함은 아국이 언젠가는 고쳐야 할 법도가 아니옵니까?”

“언젠가 법전을 아국과 맞게 고쳐야 하니 계속 보아왔는데. 그 글귀가 세세하여 내 안력이 쇠한 뒤로 볼 수 없었느니라.”

수양대군의 기억 속에 있는 대명률의 글귀는 제법 작다. 이 정도의 차도를 보려면 본인의 노력도 있지만 약물이 필요한데? 이게 그 태조 이성계의 무골을 이어받은 결과물인가?

“그 글귀가 보이십니까?”

“글귀가 조금 탁하긴 하지만 확연히 보이는 것이니 안력이 돌아오고 있다. 어제 어의가 몸을 진맥하였는데 소갈증이 물러가고 있다 하더구나. 네가 나를 살린 것이니 진정한 효가 아닐 수 없구나.”

수양대군의 몸이 대충 헬스장 기준으로 0.5~1% 이내에 속한 재능충인데 아버지인 세종대왕의 몸이 애초부터 안 좋을 이유는 없고 최소한 평균적인 몸이라 예상했었다. 역시나 내 예상대로 보통 몸보다는 훨씬 좋은 몸이었다.

식이요법과 약물치료를 병행하는 고도비만 성인병 환자에게 PT를 돌리면 2개월 정도부터 몸이 확실히 호전되는데 세종대왕님의 신체는 기본적으로 튼튼해서인지 한 달이 지나자 몸이 호전되기 시작했고 그걸 본인이 확연히 느낀 것이다.

“자식의 도리를 다 하였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조금 쉬자꾸나.”

“안됩니다.”

어디서 PT를 빼먹으려 그러시나! 안 돼 못해줘 이건 내 자존심이 아니고 처음 한 달이 가장 중요하니까. 그렇게 급격히 시무룩해진 세종대왕님과 함께 운동을 마치고 나니 가슴이 뿌듯해졌다.

역사는 진짜 내 손으로 변하고 있다는 자부심마저 들었고. 그리고 나 장영실을 좀 써도 될까? 기구의 작동원리나 기본적인 필요능력은 다 기억나는데 세부적으로 만드는 건 장영실 같은 장인이 달라붙어야 하는데. 과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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