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3화 - 몸을 만들자(2) (0727 수정) >
“나리! 기물들을 가져왔습니다! 혼자 나르기 벅차니 사람을 불러 주십시오!”
“드디어 왔구나!”
수레 한가득 소역기가 배달되었다. 같이 옮기는 하인들도 어리둥절하고 아내는 기가 차다는 듯이 이 쇳덩어리들을 바라보았다. 양이 많아서 분류하기 어려울지 몰랐는데. 내가 말을 안 해도 八 十 十四 하는 식으로 무게도 새겨놨다 다음에 대역기(바벨)을 주문하는 것도 여기로 해야겠다.
“그게 무엇으로 만든 것입니까? 이런 것들을 만드는데 예순 섬을 쓰신 겝니까?”
“무쇠로 만든 기구요. 내 양생법(養生法)을 만들어 볼 까 하는데 기구가 필요한 방법이어서 별 도리가 없었소.”
“나중에 가시면 맷돌을 엮어 드신 것처럼. 쇠로 장대를 만들어 무쇠덩어리를 엮어 드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하하, 그것은 내가 이 소역기로 효험을 본 다음이오.”
“소역기라 함은 대역기가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거 참 날카롭네. 들켰잖아? 일단 시험을 해보자. 몸을 만들려고 가져왔으니 몸으로 체험해야지. 그렇게 전신에 열을 돌리면서 몸을 덥혔다.
“몸에 열이 돌았으니 이제 역기를 잡아도 되겠구나.”
흔히 운동을 하기 전 시작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잡아다 시작운동부터 15분씩 시키는 게 내 필수 업무였고. 안하면? 안 해도 운이 좋으면 문제가 없다.
운이 없으면 으아아아 코치님 으아아아 트레이너님 하고 관절이나 인대에 급작스럽게 가해진 부하에 신음하면서 파스를 바르고. 잘못하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하지. 근데 조선시대엔 현대 의학이 없으니 언제나 조심 또 조심해야지.
“몸을 셋으로 나누어 하루는 가슴과 이두. 다음날은 등과 삼두. 마지막 날은 하체와 어깨를 할 것이며.”
아내가 계속 감시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어서 어쩔 수 없다. 현대에 와서도 ‘오빠가 핼갤러가 되었어요! 갑자기 남자 근육질 벗은 몸을 보면서 시불 개쩐다 하고 침을 삼키거나 닭 가슴살을 한 박스나 냉동고에 처박아요! 밥 대신 프로틴을 먹고 있는데 프로틴이 뭐죠?’ 라고 문의전화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양생법을 만드는 것 같이 행동해야지. 그럭저럭 수양대군의 머릿속에 있던 불경 지식과 각종 스포츠적 개소리를 중얼거리면서 행동하니 아내도 의심을 푼다. 아직 여권이 살아있는 시기니까 어쩔 수 없다니까.
3분할이던 5분할이던 4분할이던 어떤 루틴도 다 기억은 한다. 그래도 대중적인 3분할 루틴으로 가자. 몸이 어느 수준인지는 몰라도 내 기술은 전문가이다.
초보자라면 처음엔 절대 추천하지 않을 덤벨 벤치프레스가 잔뼈가 굵은 나한테는 첫 운동이다. 시범삼아 가벼운 무게인 20근(12㎏)을 양손에 잡고 해보니 수월했다. 헬스용어도 조선식으로 맞춰 정리했지?
“하나, 두울, 셋 … 열다섯. 이를 의압(椅壓)이라 하며 소역기를 사용하면 팔을 자유롭게 변화시킬 수 있어 부족함을 채울 수 있으나 잘못하면 팔에 무리가 올 수 있다.”
활도 쏘고 말도 타서 그런가? 이 수준의 무게는 가볍게 느껴진다. 가장 무거운 소역기인 24근으로 해도 별 느낌이 안 든다. 30근과 36근도 주문해야겠다. 역시 몸을 잘 쓴다는 기록대로 한가락 한다.
미는 운동은 체중대비로 중급자 수준인데. 당기는 운동인 덤벨 로우 아니 궁악(窮握)은 엄청나다. 너무 가벼워서 운동 효과가 없는 맷돌 대역기를 잘라서 한손용으로 다시 만들었다.
활을 당기는 손으로 변형판인 크록 로우 편수궁악(偏手窮握)을 해봤는데 쑥쑥 올라간다. 한 손으로 체중 절반? 활쏘기를 많이 하니까 앞으로 가르칠 사람들도 대부분 당기는 힘은 좋겠네.
“그래도 기구가 없으니 영 찝찝한걸.”
기구운동은 부위별 근육발달의 꽃이다. 안전하고 부분적인 발달을 시키는데 기구보다 좋은 게 없다. 좌만(坐挽 - 시티드 로우)이나 직흉강(直胸降 - 랫 풀 다운) 같은 건 못하니까. 그렇다고 고급자용 운동을 하나하나 가르칠 수도 없고.
일단 남을 가르치기 전에 내 몸부터 만들자. 최소한 헷갈리지 않게 회원 강사 같은 용어는 전파해둬야지. 그렇게 소역기만 가지고 운동한 지 한 달이 지났다. 바로 대장간으로 달려가서 대역기도 만들고 싶었지만 아내의 눈빛이 너무나 매서워서 소역기 30근과 36근만 주문했다.
그렇게 시일이 좀 지나고. 석감을 여러 번 다시 만드니 품질이 좋아져서 형님에게 보여드려도 될 것 같다. 형님은 내 변한 모습을 보고 알아보시기는 한다. 아직 근육량도 많이 늘진 않았는데 눈썰미가 좋으시다.
“유야, 요즘 사냥도 끊었다면서? 반면에 체구는 늘어나고 안색이 더 좋아진 것 같구나.”
“일전에 겨울에 함부로 행동하였다 백성들의 몸이 상하였습니다. 종친으로 행하여선 안 될 일이었으니 당분간 행실을 바로 가지고자 합니다.”
“네가 요즘 들어 많이 변했구나. 그 물건은 무엇이냐?”
처음 만든 비누보다 제법 단단하고 세척력도 좋아졌다. 여기에 아내의 인맥으로 향낭(조선시대의 향수, 각종 꽃이나 한약재를 넣는다)에 들어가는 향초를 넣으니 그럭저럭 싸구려 비누 수준은 된다. 굳이 따지면 삼천리 빨래비누랑 이거 사이에 고민은 해 볼 수준? 내 생애동안 목욕탕 비누 수준이라도 나오면 소원이 없겠다.
“석감이라고 합니다. 잡서에 ‘잿더미에 기름을 던져 넣었는데. 나중에 그 재를 손으로 부비고 물을 축이니 손이 희어졌다.’ 라는 내용이 있어서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네 손에 잔 때가 없어졌구나. 그런데 진귀한 물산을 쓰는 것은 아니겠지?”
“값이 조금 나갑니다. 쓰다 남은 기름 한 되와 함초를 태워 끓인 물 8홉을 섞으면 석감 17홉이 나옵니다. 여기에 향낭을 만들 때 쓰는 재료를 조금 넣으니 향이 나서 더욱 좋았습니다. 본디 기름은 수라간에서 남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손바닥 크기로 자른 석감을 매만져보던 형님은 내관을 시켜 물 한 대야를 떠오게 하였다. 비누가 묻은 손을 씻자 손때가 사라지는 것이 내 눈에도 보였다. 저런 찌든 기름때가 내 몸에도 꽤나 많았다니까.
“참으로 쓸 만하구나. 행여나 이 것이 벗기지 못하는 묵은 때는 없더냐?”
“타들어간 찌꺼기는 따듯한 물에 불려서 벗겨내야 합니다.”
“그렇단 말이더냐? 향가루를 넣지 않은 물건을 만든 것이 있으면 가져오너라. 내 군기시에서 화포를 닦을 때 그 물건을 쓰는 것이 아주 좋아 보인다. 살갗의 묵은 때를 벗긴다면 탄매도 쉬이 벗겨낼 수 있겠지.”
“네?”
이건 문종이 아니고 무(武)종이잖아! 비누를 보고 몸을 닦을 생각을 안 하고 화포의 탄매를 닦을 생각을 하다니 대체 당신은 어떤 분이십니까? 라고 말하려다 참았다. 하긴 총기수입 할 때 생각하면 강중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시대에는 이게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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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몸이 균형을 잡아가니 식단에도 신경을 써야지. 첫 과정은 벌크 업이니 거기에 맞는 식단으로 바꾸고 보자. 아내가 보면 이상한 짓이지만 이 시대의 식사는 탄수화물이 많아서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래서 결단을 내렸다.
“나리. 부엌엔 어인 일이신지요?”
“오늘부터 내 식사를 바꿀 것이다. 그러니 받아 적거라.”
“저는 글을 모릅니다.”
“그러면 다 기억할 수는 있느냐?”
그래 훈민정음 없다. 지금 세종대왕님은 훈민정음 편찬을 한창 하고 있겠지? 거기에 휘말려 들 생각은 없으니까 조용히 있자. 훈민정음이 생기면 당장 하인이나 머슴이나 아내도(아내도 글을 모른다!) 글부터 가르쳐야지.
“먼저 구이 두 가지를 다른 것으로 해라. 닭의 가슴살을 껍질을 떼고 살코기만 간장과 술에 재웠다 싱겁게 하여 석쇠에 굽고. 쇠고기는 기름이 없는 부위를 석쇠에 굽고. 요 근래 흉년이 들어 금주라 하지만 음식의 향을 낼 때 식초가 되어가는 술을 쓰면 될 것이다.”
“네? 네 나리? 어찌하여 기름을 쓰지 않으시는지요.”
기름 = 탄수화물이라니까. 벌크업 기간에는 기름을 좀 먹어도 되지만 어차피 참기름 폭탄처럼 넣는 부자의 식사니까 줄이고 싶어서 그러지.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다. 숙채와 생채는 참기름을 적게 넣고 호두가루나 개암가루를 넣어 무치고. 전은 기름을 적게 둘러 두부 전으로 하며 조림은 빼고 거기에 계란으로 수란을 만들고.”
“너무 많습니다. 잠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런 글을 모르니 방법이 있나!”
“한명 더 오거라. 여기까지만 하면 될 것이다.”
이래서 훈민정음 만드신 거구나. 한숨을 쉬면서 다른 하인을 불러서 또 말을 시작했다.
“국은 싱겁게 하고 국물을 줄여라. 그리고 밥은 삼분지 일씩 현미와 보리를 섞어라.”
“대군어른. 그리한다면 저희가 먹는 밥과 거의 같아집니다. 그러시면 안 됩니다.”
“그렇다면 그 밥을 한 번에 하면 되겠구나. 어서 석반(저녁)을 준비하여라.”
내 신분이 높아서 9첩 반상이라지만. 대충 탄수화물/단백질/지방 비율이 5:2:2다. 내가 말한 대로 식단을 짤 경우 5:3:1정도가 된다. 슬슬 근육이 올라오는데 여기서 치고 나가야지. 정상 근육량 초과 상태까지 몸을 적응시킬 수 있다. 당연히 아내는 식단을 보고 깜짝 놀란다.
“식사가 너무나 삭막하지 않습니까? 이것도 그 양생법에 속한 것입니까?”
“맞소. 내 몸으로 시험하기 전까지는 다른 이에게 함부로 말하지 않을 것이오.”
“요즘 들어 몸이 좋아지신 것 같은데 드시는 것이 이러신다면…….”
아내의 걱정은 당연하다. 밥이 대감집 종들이 먹는 수준 = 평민들이 먹는 수준으로 바뀌고. 각종 기름진 음식이 사라졌으니까. 이 시대에도 기름은 부의 상징이나 다름이 없었다.
“걱정 마시오. 기름지고 단 것은 입에는 좋으나 몸을 해롭게 하는 법이오. 한 달간 행해보고 나아짐이 없으면 바로 원래 식사로 돌아갈 것이니 염려 마시구려.”
“알겠습니다.”
이렇게 운동을 하니 밤일은 당연히 강해져서 발언권이 강해졌지만. 정작 아이는 안 들어선다. 그래도 수양대군의 첫째 아들은 2년 뒤쯤 태어나니 잠시만 상황을 지켜보자.
닭 가슴살을 한 점 먹었다. 매번 먹으면 물리니까 훈제해먹고 된장에 절여먹고 말려먹고 쪄먹어야지. 그런데 장닭의 닭 가슴살이라 그런지 질기다. 수란도 적당히 맛있고 나물에 호두와 개암을 넣어 무치니까 그럭저럭 고소하고 괜찮네.
그렇게 식사를 마치자. 처가에서 결혼할 때 주었던 사유지에서 편지가 왔다. 마름이 보낸 편지인데 흉년이 심하다고? 이건 처가에서 준 재산이니 아내와 논의할 일이다.
“허어. 장인어른께서 주셨던 땅에서 편지가 왔구려.”
“그 자는 신의가 깊고 일을 잘 하던 자였습니다. 거짓은 아닐 것이나 혹시나 모르니 한번 확인을 하시는 것이 어떠신지요."
"흉년이라 하였는데 나도 조금 걱정이 되는구려. 내일 바로 떠나겠소."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한번 얼굴을 직접 대면하기로 했다. 처가에서 양도한 재산이라 해도 결국 내 확인이 필요하다. 물론 수양대군은 재산에 대한 생각도 별로 안 해서 보편적인 4할로 맞춰놓긴 했는데 흉년이면 좀 줄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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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군기시에서는. 석감으로 화포를 닦던 장인이 안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한쪽은 석감을 바른 화포. 한쪽은 바르지 않은 화포인데 큰 차이는 없었다.
“세자저하. 석감이라는 물에 불리는 것과 큰 차이는 나지 않습니다.”
“탄매가 쉬이 벗겨지진 않는다는 말이지.”
“평소에 물로 불려서 닦을 때 보다는 쉬이 닦이지만 그 차이가 크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탄매에 찌든 손이 더 희게 닦이고 있습니다.”
“그러한가? 정말 그러하군. 물은 탁한데 자네의 손은 희어졌으니.”
문종은 다시 석감을 집어 들었다. 동생이 어떤 방법으로 만들었는가? 재와 기름을 섞어서 만든 물건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물로 닦이지 않는 기름을 씻어낸다는 말인가? 제조법에 대하여 적어 주었으니 내수소(내수사의 전신)으로 보내면 충분히 만들어 내겠지.
“녀석, 참으로 귀중한 물건을 만들어 내었구나. 안 그래도 요즘 흉년덕분에 아바마마께서도 마음이 편찮으신데 석감을 보여드리면 좋아지겠지. 그 외에도 쓸 곳이 많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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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께서 석감이라는 것을 만들어냈다 들었습니다. 어찌 만드는 것인지요?”
“그 일에 대해서는 주상전하께 말씀드려 내수소에 일임했으니 거기서 알아서 할 일이오.”
충청도 일대에 있는 땅을 보고 돌아오니 10월이 다 되었다. 조정에서는 겨울이 다가와서 근무시간이 줄어든 신료들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고. 석감이 꼭 주제로 끼어있었다. 듣자하니 내가 보낸 비누 가운데 10개정도를 세종대왕께서 신료들에게 하사했다던가.
(조선에서는 낮의 길이에 맞추어 여름에는 오전 4시 출근(세종대왕 시기에는 매번 조회가 있어서 출근이 한 시간 빠르다) 오후 6시 퇴근. 겨울에는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이었다)
안 그래도 형님께서 말하기를. ‘요즘 흉년이라서 함부로 기름을 쓰게 하면 피곤하다. 일단 입을 조심해라.’ 결국 돈 쓸어 담는다는 소리잖아? 그래 나쁠 건 없지. 결국 중앙정부의 빈약한 재정이 한 단계 위로 올라가는 거니까.
대신 내 재산은 줄어들었다. 세종대왕님이 반찬 종류를 줄이실 정도의 흉년이어서 직격탄을 맞지 않은 내 사유지도 세를 3할로 낮추어 버렸으니까.
“형님, 오늘도 석감을 찾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내수소에서 석감을 만드는 것은 차도가 있습니까?”
“하삼도에 워낙 흉년이 심해서 아바마마도 드시는 것을 줄였다. 이런 시국에 기름과 함초는 많이 쓰기는 힘들다. 적어도 올해에는 많이 만들어 내기는 힘들겠구나.”
하삼도. 여기에 충청도는 직격탄이 아니지만 전라도 경상도만 해도 조선 생산량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형님이 한숨을 쉬어서 위로라도 해줘야겠다.
“저 또한 며칠 소작농을 보고 왔는데 흉년이 심하여 세를 삼 할로 낮추었습니다.”
“훌륭한 일이다. 그나마 반가운 소식도 있구나. 순빈이 회임하였다 한다.”
“순빈이라 함은 얼마 전 졸(卒)한 지돈령부사 봉 공숙(恭肅 - 시호)의…….”
“그렇다, 승휘 권 씨도 회임하였는데. 두 빈이 연달아 회임함은 실로 복이 아닐 수 없다.”
이 시기였나? 그놈의 주종관계를 이용한 동성애로 역사에 남은 순빈 봉 씨의 사건이? 가짜임신해서 쇼를 벌인 게? 그렇다면 이달 말에는 폭탄이 하나 터지겠는데.
이걸 어쩌지. 아니 난 정치에 손 놓을 거야 이 일과 나는 무관해! 그래 소작농한테 받은 게 있으니까 대역기를 만들어야지. 아내에게도 허락 받았다고! 그렇게 형식상 축하한다는 말을 남기고 형님에게서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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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소역기를 잘 만든 대장간에 대역기를 주문하러 갔다. 욕심을 좀 부려서 속이 비어 있는 강철봉을 만들라 했는데 단번에 난색을 표한다.
“저기. 이런 것은 저희가 만들기 어렵습니다. 봉을 곧게 만드는 것 까지는 가능하나 철판을 말아서 둥글게 접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속이 비어 있으면 그리도 힘들단 말인가?”
“철판을 만드는 것도 어려운데. 둥글게 접으면 한 곳에서 흠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래서 강철로 조총 같은 건 언제 만들지. 일단 포기해야 하나.
“그 강철봉이 양 끝에 백 근의 무게를 매단다면. 버티긴 하겠나?”
“양 끝에 백 근의 무게를 매단다 함은 이백 근의 무게를 지탱하라는 것이 아닙니까. 철판을 말아 만드는 것은 힘들지만 봉으로 만든 것은 어찌 버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크기를 더 크게 만들면? 손에 쥘 수 있는 지름으로는 어떻게 안 되나?”
장인은 한참 생각하더니만 고개를 저었다. 도저히 이 시대의 기술로는 안 되나?
“얇으면 만들기는 쉽겠지만 힘을 버티지 못할 것이고. 두껍다면 말아서 둥글게 만들고 나면 손에 잡히지도 않을 것이라. 그런 이야기인가?”
“그렇습니다. 그냥 봉으로 만들어 사방에서 세게 두들기는 녀석이 좋습니다. 혹여나 명국에서는 이런 물건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만.”
“일단 알겠네. 목표를 봉은 이백 근을 양 끝에 매달고 버티는 정도로 삼아 한번 만들어 보게. 그리고 이런 것도 만들 수 있겠나?”
“이것은 쉽습니다. 사람 한명이 매달리는 정도라면 아주 쉽지요.”
철봉은 쉽단다. 그런데 이백 근을 버티는 속이 빈 강봉을 만드는 건 욕심이 지나쳤나? 아니다 혹시 모른다. 이 근처에는 대장장이들이 많으니 여러 개를 주문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