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2화 - 몸을 만들자(1) (0728 수정) >
“이번 석감은 괜찮구나.”
새로 만든 비누는 기름이 새어나오지 않았지만 조금 뻑뻑했다. 몸을 불려서 씻으니 처음엔 몰랐지만 묵은 때가 줄줄이 벗겨져 나온다. 역시 비누라니까! 앞으로 경험이 쌓이면 석감이 조금 잘 나오겠지.
며칠 동안 생각을 이어갔다. 내 직업 헬스 트레이너로 그리고 생활스포츠 1급으로 과연 세종대왕님을 치료할 수 있는가? 충분히 가능하다. 근데 내가 만들어야 할 것은 뭔가? 뭐긴 뭐야 몸이랑 기구를 만들어야지.
"우선은 바벨이다."
운동의 기본은 바벨이다. 3대 운동을 할 수 있는 기적의 도구이자 근육의 친구. 조선에서 바벨을 만들 수 있나? 나무장대에 맷돌을 두개씩 끼우면 낮은 무게는 가능이야 하겠지. 근데 그 이상한 것을 현재의 매우 부족한 몸으로 세종대왕님에게 들이대면?
‘우리 유가 이상한 짓을 하는데 이는 관직에 오르지 않아서 그러는 것이구나. 사군육진에서 김종서 장군이랑 같이 여진족을 무찌르겠느냐. 무릉도(울릉도)에서 관리생활을 하겠느냐. 아니면 말 타는 것도 좋아하고 귤이라도 실컷 먹게 탐라도에 감목관 자리는 어떠냐?’
하면서 나를 저 머나먼 곳으로 보내버리겠지. 수양대군의 지식을 바탕으로 하면. 이런 짓은 산간오지 떨어지는 지름길이나 다름이 없었다.
"정치도 자신이 없어. 지식도 자신이 없으니까 내 근육부터 키워야지."
지필묵을 준비하고 생각을 정리한다. 사실 그냥 들이밀어서 가르치고 아무런 것도 없이 먹여준다면 쉬운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귀찮다고 안하고. 그냥 버려질 가능성도 있지.
원인과 결과를 알고 그에 대한 분석과 대책을 세운다. 세종대왕께서 세금개혁을 하실 때 왜 여론조사를 하였는가? 왜 조선에서는 후기쯤에 가서야 다시금 이런 모습이 나타났는가?
이걸 변화시키려면 우선 세종대왕님을 이겨야한다. 한반도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성군이자 조선 초의 시스템을 완전히 정비한 최종보스. 완벽하게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접근을 통해야만 쓰러트릴 수 있다. 일단 보디빌딩을 학문으로 재정비하자.
"입신체비서(立身體備書), 썩 좋은 이름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구색은 갖춰놔야지."
자기를 세우고 몸을 갖추는 책. 근육양생법 같은 제목도 생각했지만 그건 너무 잡서 같고 어느 정도 성리학을 사상적 도구로 삼는 조선에 맞춰서 적용해야지.
논리는 효도다. 몸을 멋있게 만들고 잔병을 없애며. 근력을 키울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가장 만들기 쉬운 아령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아직 아령이라는 단어가 없네? 그럼 소역기(小力器)로 간다. 역기는 어떻게 만들지? 하고 고민했는데 쇠로 만들어야지.
“세종대왕님에게도 드릴 역기니까 함부로 돌로 만들면 안 되지. 거기 있느냐! 잠시 도성 밖으로 나가봐야겠다!”
대군의 신분인데 이런 괴상망측한 도구를 만들면 뭔 소리를 들어먹을지 모른다. 그래서 사대문 밖의 주철장을 찾았는데. 다행이도 하인들이 예전에 집에서 쓰는 솥을 주문한 가게를 알아서 직접 하인 한명과 방문했다.
“게 있소?”
“네 나리. 예까지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여기가 솥을 빼어나게 만든다 해서 찾아왔는데. 이런 것을 만들 수 있는가?”
종이 위에 대충 소역기의 형태만 잡아놓은 도면을 보여주자 내 얼굴을 쳐다본다. 무기도 아니고 도구도 아닌 것이겠지. ‘저분 좀 이상한데?’ 라는 표정이 보인다 이거 다 몸에 좋은 거야. 우리 같이 역기 들지 않을래? 난 하루 종일도 할 수 있는데.
“이걸 다듬어 만들라는 말씀이십니까? 저희는 주물을 뜨는 곳입니다만.”
“무쇠로 주물을 떠서 만들어 주시오. 중요한 것은 좌우의 균형이 맞을 것, 무게는 정확하게 지킬 것, 손으로 잡는 곳이 충분히 강도가 있어서 내리치거나 떨어뜨린다고 쉬이 깨지지 않을 것이오.”
한참을 살펴보던 주철장은 가능은 할 것 같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무게가 중요하다 하셨는데 대체 어떤 무게인지요?”
“각기 2개씩 쌍으로, 8근(4.8㎏)부터 시작해서 24근(14.4㎏)까지 두 근 간격을 두면 족하오. 총 이백사십 근 가량의 쇠가 들어가는데 가능하겠소?”
“이백사십이요? 그 양이면 세상에. 환도 백 개를 만들 고도 남습니다!”
아직 이게 시작인데. 나 현대에 있을 때 벤치 180까지는 가뿐했는데. 일단은 태연하게 말하자. 이 사람들 이상하게 생각한다.
“그 정도는 알고 있소. 묻고 싶은 것은 가능한지에 대한 것이오.”
“가능은 합니다만. 쌀 일흔 아니 대량에다 주물이니 예순 섬은 주셔야 합니다.”
예순 섬이면 대충 어디보자. 현대 화폐가치로 이천만원? 아니다 나 땅 많네. 당장 과전법으로 소유한 토지가 300결. 여기서 1할씩 거두니 900석 조금 안되고.
처가에서 결혼할 때 보낸 땅이 충청도랑 황해도에 합쳐서 400결이 넘는데다가 사적으로 소유한 땅이 200결이 넘으니 상관은 없구나. 이야 수양대군 부자네?
“예순 섬이라? 쇄은으로 계산도 가능 하겠소? 그리고 얼마나 걸리오?”
먼저 건넨 쇄은의 무게를 재던 주철장은 한참을 고민하더니만 입을 열었다.
“일단 선금으로 은편 서른 넉 냥을 받았습니다. 열흘 정도 기다리시면 될 겁니다.”
“집까지 옮기는 것은 가능하십니까? 나머지 액수는 쌀로 만들어 조만간 보내주겠소.”
집으로 돌아오니 아니나 다를까. 부인이 너무 많은 재물을 썼다고 뭐라 한다. 아무런 말도 없이 덜컥 질러버렸으니 당연한 결과다.
“예순 섬이나 되는 많은 재물을 어디에 쓰신 겁니까?”
“부인, 내 다 생각이 있소. 허나 부인에게 이야기를 하자니 너무 머나먼 이야기이고 이를 함부로 말할 수 없기에 그저 묵묵히 있을 뿐이오.”
“그러시다면 그 목봉에 뭘 들어서 어찌 하시는 겁니까?”
뭐긴 뭐야 3대 운동이지. 그런데 설명을 하자니 골치가 아프다. 그냥 적당히 둘러대자.
“다른 이에게 알리기 전에 내 몸으로 시험할 뿐이오. 염려 마시구려.”
헬스 아니 입신체비의 기본은 3대 운동이다. 소역기가 완성되려면 열흘인데 그 동안 손을 놓고 있을 이유는 없다. 그러니까 맷돌과 나무 봉을 조합해서 임시로 역기를 만들었지. 무게는 한 50? 60? 근으로 따지면 백 근 정도 되나?
그러나 너무나 가벼웠다. 수양대군의 몸은 생각보다 강한 것 같다.
“모르겠다. 이걸로는 너무나 부족해. 을동아! 따듯한 물은 준비해 놓았느냐?”
“네 대감님! 부인께서는 먼저 일을 마치셨습니다.”
“하긴 이 체구에 이 무게면 힘든 일도 아니지.”
부하가 조금 걸리기는 하는데 몸의 한계를 알 길이 없었다. 그렇게 몸을 닦는데 비누의 품질이 영 마음에 안 든다. 처음에는 때가 벗겨져서 너무나 행복했는데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단 말인가.
“다 되었으니 머리를 말리게 도와주거라.”
“네 대감님.”
하인의 도움을 받아서 풀어놓은 상투에 부채질을 해서 말리고 있었는데. 아내가 와서는 석감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한번 써보면 절대 벗어날 수 없다니까.
“석감을 만드실 때는 별 볼일 없지만. 지금 생각하니 참으로 좋은 기물입니다. 조두(녹두나 팥가루로 만든 세면용 물품)보다 훨씬 좋으니 말이지요.”
“다음번에는 향낭을 만들 때 쓰는 가루들을 몇 개 넣으면 좋을 것 같은데.”
그렇게 닷새정도 임시로 만든 대역기를 굴려봤는데. 효과는 있지만 변화는 없다. 좌우 균형도 잘 안 맞는 놈으로 계속 운동하면 척추가 휠지도 모르고. 이대로 허송세월을 하느니 다른 일을 시작하자.
“백 섬 정도 재산을 더 써야겠소. 구휼의 용도로 쓰는 것이오.”
“구휼이라니요? 그것은 혜민국(惠民局)에서 하는 일이 아니옵니까?”
“내 일전에 겨울이 다 끝나갈 무렵에 사냥을 한 적이 있지 않소. 그때 백성들을 몰이꾼으로 부렸는데. 나중에 와서 추위가 극심해서 몸이 상할까 염려되는구려.”
라고 변명을 했다. 아내는 마음씨가 착하니까 통할 거야. 사실 학술조사지만 이렇게 연막을 쳐야지 방법이 있나.
“백성들이 상했다 한들 겨울에 나선 그들의 일이 아니겠습니까?”
“잘못하면 병환에 시달릴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하면 되겠소? 전에는 생각이 짧았으니 지금이라도 바로잡는 것이 맞소.”
“그리 생각하시니 훌륭하십니다. 백성들을 돌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요.”
허락 받았어! 이제 사람도 부르자. 기억을 더듬어보니 마일용? 평소에 수양대군은 마서방 이라고 불렀던 자구나? 사람을 보내서 조금 기다리니 바로 달려와서 집 앞에 대기하고 있다. 아주 훌륭한 자세야.
“대감님. 그동안 별고 없으셨는지요?”
“별 일은 없네. 마서방 자네한테 묻고 싶은 게 있네.”
“무슨 일이십니까? 날이 아직 더운데 사냥을 나가시려 하십니까? 몰이꾼이 필요하신지요?”
맨날 사냥만 나가니까 아주 말하면 척이네. 수양대군이 한량처럼 행동했다는 말이 이해는 된다.
“그 몰이꾼 하던 백성들 말일세. 지난번 겨울에 지독한 추위에서 몸이 상했나 싶어 말이네. 그들이 곤경에 처했다면 도움을 주고 싶다네.”
잠깐 이해가 안 되었는지 마서방 아니 왜 서방이라 불러. 결혼도 안했는데! 마일용이라고 부르자. 여하튼 마일용은 벙 찐 표정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청계천 일대에 살긴 합니다만 거긴 어른께서 가실만한 곳이 아닙니다. 시일이 조금 걸리더라도 여기까지 불러오는 것이 나을 겁니다.”
“아닐세, 직접 가는 게 옳은 일이니 염려 말게.”
“그렇다면 그 가죽신은 갈아 신으시지요. 여름이라 땅이 매우 안 좋습니다.”
진고개도 겨울이 되면 질척거려서 붙은 이름이지만 그건 남산의 그늘에 가려져서고 여기는 진짜 질척거리고 퀴퀴한 냄새가 난다. 이런 동네에 수양대군도 온 적은 없겠지. 나막신으로 바꿔온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가죽신이었으면 진흙투성이가 되었겠지.
“으엑.”
“보십시오, 여기는 오실만한 곳이 아닙니다.”
“매번 이런다면 백성들이 불편하지 않은가, 설마 사시사철 이렇게 질척거리는 것인가?”
“아닙니다, 비가 오면 청계천이 넘쳐 여기까지 물이 들어찰 때가 있었습니다. 가물 때는 그렇지 않은데 올해에는 조금 심해서 그렇습니다.”
맞아 지금 수표교(水標橋)가 없지? 그러면 홍수 유무도 넘치기 직전 가서야 알겠네? 이건 나중에 해결될 일이니까 넘어가자.
“올해에는 가뭄이 심한데도 그런단 말인가?”
“비가 내리지 않다가 한 번에 많이 내리면 이리 물이 불어납니다.”
아직 한양이 인구가 많지도 않은데 이런 꼴이 난다니. 그렇게 골목골목을 지나 허름한 초가 앞에서 사람을 불렀다. 이윽고 손가락 두 개가 사라진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양대군이라면 절대 알아보지 못했을. 기억을 쭉 살펴본 나만이 알아차린 그 사람이다.
“뉘신지? 대감나리!”
“자네 전에 몰이꾼을 하던 사람 아닌가? 혹시나 하여서 와봤는데 이리 되었으면 말을 하지 그랬나! 추위에 손이 얼어 곱아가다 결국 상한 것이 아닌가!”
“그것이야 손을 잘 싸매지 않은 제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심려치 마십시오.”
대접같은건 바라지도 않았다, 높으신 분이 와서 그런지 부인은 나무사발에 냉수라도 어떻게든 떠서 소반에 올려왔고 타들어가는 속에 벌컥벌컥 마셔버렸다. 이렇게 생각이 없이 다니지? 그러면서도 불공은 꼬박꼬박 드리네. 아휴!
“혹시나 해서 왔는데 역시니. 자네 저기 있는 정과 가래를 보아하니 석공이 아닌가? 손이 상했으니 일을 하려면 고달플 것 같은데.”
“그것이…….”
“아이가 한참 먹을 나이인데 이래서 되겠나. 저 아이가 올해 몇 살인가?”
“큰놈은 올해 열하나이고 둘째는 여섯, 셋째는 넷, 막내는 갓난아기입니다.”
성장이 전체적으로 늦다. 종친들이나 관료 자제들을 보아왔던 수양대군의 기억 속의 아이들보다 성장이 세 살 가량 늦은 수준이니. 이 정도면 오히려 내가 생각하는 일을 더 잘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
대충 성인 한명이 한해 네 섬 정도를 식량으로 삼고 이 집안 식구는 여섯이다. 애들은 반만 먹는다 치면 내가 보내주는 것 외에 조금 더 돈을 써야겠네. 이정도면 적당한 구휼이긴 한데 내 목적은 따로 있다.
“내 열흘에 한번 사람을 통해 한 말씩 쌀을 보내주고 거기에 계란도 여섯 개를 같이 보내주겠네. 부족함은 있겠지만 그대도 날품팔이라도 해야지.”
“아이고 나리! 쌀도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어찌하여 계란까지 보내시는 겁니까?!”
입신체비서에 넣을 육질(단백질)의 효능 검토용이다. 라는 말이 올라왔지만 참았다. 대신에 구구절절이 아무 말이 솟아나왔다.
“그대의 혈색이 좋지 않네. 그래서 폐에 습이 차올라 병이 생길 것 같아서 그러는 것일세. 자네의 피를 이어받은 아이들도 마찬가지이지. 계란을 가끔 먹어 몸을 보하면 큰 병치래 까지는 가지 않을 걸세. 그리고 하나만 더 할게 있다네.”
“네? 나리? 무엇이옵니까?”
“그대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나 사람은 변하기 쉽기 마련이지, 그대의 장남과 차남의 신장과 체중을 대략 달포마다 와서 잴 것이네.”
물론 신장 체중을 꼬박꼬박 기입해서 근거 자료로 쓸 거니까 이렇게 했지. 하지만 이렇게 안하면 남겨먹지 않겠어?
“다른 아이들보다 더디게 자란다면 내가 준 재물을 허투루 쓴 증좌가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내가 준 것은 반드시 다 같이 먹게.”
“말씀을 반드시 지키면서 열심히 따르겠습니다. 아이들도 열심히 키울 것입니다!”
“믿겠네, 그러면 이름이 무엇인가?”
다음집도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이쪽은 발가락을 잃어서 조금 싼 생선으로, 별 문제는 없었지만 당시에 고생한 집은 콩으로, 진짜 사람이 죽어나간 집은 너무나 미안해서 닭고기를 주기로 했다.
열개의 가정에서 성장기 아동 22명을 대상으로 한 성장발달실험을 구휼을 핑계대고 강행해 버렸다. 현대였다면 부자의 갑질이다 사람을 불구로 만들고 돈으로 넘기려한다! 소리가 나오겠지만 여기는 조선이다.
입신체비서를 만들 때. 조선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다. 아직은 머릿속에 있는 지식만 깡그리 털어 넣은 일종의 실타래 같은 것이고 지금도 계속 쓰고 있는 것이지만. 적어도 이 시대에 새로운 개념을 넣어주고 싶다. 실험개념이나 변인개념 혹은 원인과 결과의 개념 같은 것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데 마서방은 입이 삐죽 나와서 투덜거리고 있다. 부자가 쓸데없는 짓을 한다 생각하겠지.
“대군 어른께서 행하신 일을 과연 지키겠습니까? 저는 지키지 않을 거라 봅니다.”
“그들이 가장 안심할 때 찾을 것이야. 그리고 자네도 가끔 찾아가야겠지.”
“대군어른?”
“우리는 한 배를 탄 것이네.”
마서방의 손에 은편 조금을 쥐어주자 눈빛이 변했다. 마서방? 입신채비서 정비되면 마동석처럼 만들어볼까? 뼈도 굵고 체구도 단단한 것이 근육을 기르면 위압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