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1화 - 시작이 반이다(0728 수정) >
“대군어른. 궁에 도착했습니다.”
“오냐.”
광화문. 현재의 광화문은 축이 틀어져 있지만 지금의 광화문은 원래 그대로겠지. 안으로 들어가니 궁궐을 수비하는 호군들이 내 얼굴을 알아보고 인사를 한다. 몇몇 대소신료들과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거나 하면서 근정전까지 들어갔다.
“전하, 진양대군 입궐하였사옵니다.”
“들라 하라.”
아직 상참(아침에 모여서 정사를 보고하는 회의) 시간이 아니어서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세종대왕님은 아니 저거 세종대왕님 맞나? 기억은 맞는데 이게 뭐야?
“너에게 명을 내릴 것이 있어서 먼저 불렀느니라.”
“아바마마?”
세종대왕님? 지폐에 있는 그 세종대왕님 맞으세요? 얼굴은 빵빵하고 배는 한복이 몸의 선을 다 뭉개버릴 정도로 살이 나와 있고. 여름철 새벽인데 벌써 땀이 나시네. 그리고 당뇨 환자들에게서 나는 아세트 냄새가 미약하게 느껴진다.
“왜 그렇게 멀뚱하니 있는 게냐?”
“아 아니 아 죄송하옵니다.”
“또 술을 마신게냐? 아니구나. 그러지는 않았겠지. 내 너에게 이야기 할 것이 있어서 그렇다.”
정신 차리자! 세종대왕님이 어떤 상황이건 간에 일단 왕이고 명은 들어야 한다.
“하명하시옵소서.”
“집현전의 부교리인 이사철 등에게 명하여 교정시킨 강목이 문제니라. 글자 모양이 조금 지저분하니 활자를 새로 주조하려 한다. 조회가 끝나고 집현전으로 가 큰 글자로 새로 쓰거라.”
“알겠사옵니다.”
식은땀이 올라온다. 지금 세종대왕님의 모습은 고도비만이다. 거기에 덥지 않은 때도 땀을 흘리시는 걸로 보아서는 당뇨병은 기본이고.
글을 크게 쓰도록 명하시는 건. 아마도 고혈당의 후유증으로 시신경 장애가 시작 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생각보다 너무나 상황이 심각하다. 이 정도면 현대에서는 무조건 입원부터 시작이다.
그렇게 조회를 마치고 집현전에 들렀는데. 나를 위해서 미리 준비를 다 해뒀다. 풀어 헤쳐진 강목과 그 강목에서 고쳐야 할 글귀를 찾아내는 관료들이 있었다. 강목은 활자 인쇄본이니 내가 쓴 글자를 참고해서 하나하나 새로 파야하나?
“대군께서 쓰신 글씨는 언제나 보아도 힘이 넘칩니다.”
“과찬은 그만두시오. 나보다는 용(瑢 - 안평대군)이의 글씨가 보기 좋소이다.”
수양대군의 기억과 함께 각종 신체를 다루는 방법도 옮겨왔는지. 붓을 잡으니 절로 손이 움직인다. 인쇄한 폰트같이 아주 똑바른 글씨.
방금 전의 내 말은 수양대군이 절대 하지 않을 말이었다. 안평대군에게 어느 정도 열등감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뭐 어때서? 그냥 봐도 안평대군이 훨씬 좋은데. 서예를 할 때 잡스러운 생각을 하면 글이 비뚤어진다고 들었는데. 손은 따로 움직이고 머리도 따로 돌아간다. 이게 그 듀얼코어인가 그런 건가?
“수백 자가 되니 하루로는 도저히 끝내지 못할 것 같구려.”
“놋쇠로 옮겨 본을 뜨는 것만 해도 족히 보름은 걸립니다.”
생각 없이 조회 참가하고 집현전에서 일하는 것이 보름이라. 그렇다면 나쁘지는 않다. 나는 수양대군의 기억 속에 없는 정보를 찾아내고자 먹을 갈면서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이 활자를 만드신 분이 호군(護軍) 장영실 아닌가?”
“맞습니다. 본디 갑인자는 20만자를 만들었지만. 이렇게 다시 파내야 하는 글자가 계속 생겨납니다.”
생각을 해보자. 일단 역사를 반복하기는 싫다. 그리고 내 앞에서 역사 속의 위인을 바로잡고 싶은 욕망도 있다. 그렇다면 필요한 순서는 이거다
먼저 비누부터 만들어야 한다. 이 시대에는 내 목숨도 챙기고 전염병도 막고. 종기 하나만 있어도 연속적인 감염으로 사람이 죽는 시대니까 방법이 없지. 비누 만드는 법은 대충은 기억하고 있다.
그 다음은 세종대왕님의 당뇨병 치료. 역사상 기록으로 추측해도 3년 이내에 손을 써야 한다. 나중에 치료하려 해도 영구적인 시각 손상 같은 일이 벌어지면 치료하나 마나다. 이건 정 안되면 5년으로 바꾸자.
마지막으로 필요한 일은. 이 시대 사람들에게 내 지식을 전파하는 일이다. 이 시대에는 아직 체계화된 학문이나 스포츠 과학이 어느 장소에도 없다. 이런 지식을 먼저 배우고. 그런 지식을 바탕으로 사상이 변할 수도 있으니까. 하다 못해서 최소한은 세상이 달라지긴 하겠지.
“끄음.”
주변을 슬슬 둘러보는데. 다들 일에 절어서 어깨와 목을 매만지는 사람이 많다. 이 시대에 책을 읽을 때는 자세를 아주 꼿꼿하게 세워서 하니까 더욱 피로가 쌓이겠지. 조만간 몸이 남아나지 않겠다. 마침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부교리 김문인데 이 사람에게 한번 권해보자.
“부교리, 혹시 어깨에 담이 찬 것 같고 목에 힘이 없지 않으십니까.”
“염려 마십시오. 아직 몸은 멀쩡합니다.”
“잠시 고개를 드시구려. 목에 있는 기혈을 뭉치지 않게 하는 법을 들어본 바 있소. 글을 볼 때 가끔 이렇게 하면 어깨와 목이 시원해져서 좋더구려.”
합법적으로 윗사람(현재 대군은 정1품이다)을 통해 쉴 수 있는 기회라 느꼈는지 잘 따라온다. 간단하게 귀를 잡고 머리를 당겨 돌리는 스트레칭 법을 보여주자 바로 따라하는 김문.
그러자 내 귀에도 오도독 우두둑 소리가 들린다. 이 시대에는 무문의 백년 전통 비법이라 하는 게 사소한 운동비법 정도였으니 현대에서 정립된 지식에 절대 비할 바는 아니지. 아주 표정이 시원해 보이는 게 내 기분도 좋아지네.
“아주 시원합니다. 대군어른께서 어찌 이런 방법을 들으셨는지 신묘하기 그지없으니 앞으로 업무를 보며 자주 해야겠습니다.”
어느 새 모든 관료들이 내가 알려준 스트레칭을 따라하면서 뼈마디 풀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 지옥 같은 신밀레(신하 + 에밀레)의 현장에서 빨리 빠져 나가야겠다. 그렇게 해가 기울 때 쯤 신하들이 슬슬 퇴근하자는 눈초리를 보내자마자 빠르게 도망쳤다.
그렇게 5일간 매진하니 업무가 거의 마무리 되었고. 나에 대한 평가도 그럭저럭 좋아진 것 같다. 이놈의 듀얼코어 덕분에 생각을 정리하면서 일을 하자 사람들이 말하기를.
“대군어른께서는 이리도 심혈을 기울이시다니 대단합니다.”
라고 아부를 했으니까. 사실 딴생각 하면서 몸은 따로 움직였어. 이거 참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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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다 끝나고 비누를 만들 준비를 시작해야지. 아내는 오늘도 내 얼굴을 보면서 염려한다. 이게 다 이유가 있어서 이러는 것이다.
“다녀왔소.”
“요 며칠 안색이 좋지 않으신데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지요.”
“아니오, 요 며칠간 집현전에서 주상전하께서 내리신 일을 하는데 신료들이 너무 고생이 많아서 그렇소.”
사실 뻥이다. 내가 역사를 그대로 따라가면 나병에 걸려서 이러는 거니까.
“신료들이 나라의 녹을 받기 위해서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니 염려치 마십시오.”
“그래도 너무 일에 치이며 사는 것 같구려. 잠시 시전에 볼일이 있소이다. 금방 돌아오겠소.”
야사대로면 수양대군은 1457년에 나병에 걸렸다. 질병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지만 심각한 피부염 혹은 나병으로 정리되었다. 나병은 최악의 경우에는 20년의 잠복기를 가지니 내년부터 나병에 걸릴 수도 있다.
결국 피부염이던 나병이던 질병 감염의 기회를 최소화해야 한다. 그러니까 비누가 답이다. 99%의 세균을 뭉개버릴 수 있는 비누를 만들자. 다행히도 나에게는 비누에 대한 기억이 있다. 조선시대에도 쓰일 정통적인 방법으로 만든 비누 제조법이.
“게 아무도 없느냐?”
“여기 대령했습니다.”
“시전에 가려고 한다. 쇄은(碎銀 - 조선시대에 간접적으로 쓰인 화폐. 은 조각이다)과 쌀을 조금 챙겨오너라. 뭘 담을 됫박 몇 개도 같이 챙겨오고.”
그렇게 하인들과 나오니. 현대보다 조금 더 울창한 남산 자락이 나온다. 수양대군의 기억대로면 여기가 ‘진고개’라 한다. 산세를 보면서 기억을 되새기니 충무로역 인근?
길거리에 나와 보니 아직 한양의 인구가 적어서 별 것도 없다. 그나마 북쪽에 있는 육의전 쪽에는 이층집이 보였지. 이층집 하니까 친구가 한 말도 생각났다. 경신대기근으로 시작된 소빙기 때 살아남기 위해서 이층집이 사라졌다던가.
다른 하인들에게 기름을 사오라 하고. 길을 걷다가 적당한 약재상을 찾았다. 이 시대에는 약재상이라고 해도 볼품없지만. 내가 찾는 물건이 과연 있을까?
“함초(鹹草) 있소?”
“네? 함초요? 함초라 하면 무엇입니까? 여기서도 처음 들어봅니다.”
“개흙에서 나는 짠맛이 나는 풀 있지 않소.”
“아 퉁퉁마디 말씀이십니까? 여기 있습니다.”
퉁퉁마디, 함초라고 불리지는 않는구나. 이 풀은 소금기를 머금고 자라는데 피부미용에 좋다고도 한다. 내가 아는 비누의 재료는 식물의 재면 충분하지만 함초의 효능을 믿고 있다. 먹을 게 아니고 비누를 만들 물건이라 많이 샀더니 상인이 놀란다.
“이걸 이리 많이 사시다니. 어디 약재로 사시는 겁니까?”
“약을 만드는데 쓸 거요. 잘 말라있으니 다행이구려.”
정해진 장소에서 잠시 기다리니 하인들이 됫박을 들고 성큼성큼 걸어온다. 다들 기름을 잘 사왔나? 비누를 만들려면 기름이 필요하지.
“강쇠 왔구나. 기름은 많이 사 왔느냐?”
“세 됫박을 사왔습니다. 하지만 등잔에 쓰는 삭은 기름은 별로 없어서. 쓸 수 있는 기름을 사버린 바람에 제법 값을 치렀습니다.”
“양이 조금 적긴 하지만 그래도 고생이 많았다.”
집에 들어가서 퉁퉁마디를 태우는데 현대의 기억이 떠오른다. 부녀회장님이 나에게 선물했던 비누에 관련된 기억이.
- 자 들어봐 최코치. 이거 함초라는 건데 이걸로 잿물을 만들어서 비누를 만들지 뭐야? 내가 XX정보통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봤는데. 이거 피부미용에 그렇게 좋고 다 천연제품이래! 이걸 만드는 방법을 아는데 좀 도와줘야지. 안 그래?
그때 부녀회장님은 비누를 6㎏이나 만드셨고. 두 개를 쓰고 아무도 쓰지 않았다. 결국 나에게도 한가득 주어진 천연 약비누는 헬스장 수건용 빨래비누로 변신했다.
퀴퀴한 기름 냄새가 나고 거품도 잘 올라오지 않는데다 물만 닿아도 녹아내리는 비누지만. 이 시기에는 비누가 없잖아? 당장 답답해서 미치고 팔짝 뛰겠다. 몸에 쌓여있는 개기름은 현대인의 섬세한 감각에는 너무나 불쾌하고. 대군이라는 직책 상 품위를 지켜야 하니 대놓고 벅벅 긁지도 못하겠고.
“함초 태운 재를 물에 잘 녹이 거라.”
“나리. 빨래에는 잿물보다 조두가루나 삭힌 오줌이 더 좋습니다.”
“알고 있다. 먼저 계란을 하나 가져와라.”
계란을 띄우자 뜨지 않고 가라앉는다. 아직 비중이 가벼우니 조금 더 끓여서 졸였다. 그렇게 한참을 졸이고 다시 계란을 띄우자. 알칼리 성분이 농축되어서 계란이 위로 약간 떠올랐다.
“가서 번철(프라이팬)을 가져와라. 오래 묵은 번철에 기름때가 잔뜩 끼어서 더는 못쓸만한 것이면 가장 좋으니라.”
번철을 다시 마당에 피운 장작불 위에 올리고. 기름 한 홉을 붓고 조금 열을 가했다. 거기다 농축된 잿물을 한 홉이 조금 안되게 조심스럽게 부었다. 이게 간단한 천연비누 제조법이다.
이 혼합물이 적당히 따듯해질 때 쯤 불에서 내리고 계속 저으면 된다. 점차적으로 질척해지면서 굳어가자 잠시 쉬고 또 젓고. 질척한 비누를 종들에게 넘겨 나무틀에 담고 주변을 둘러봤다. 해가 기울어 가는데 슬슬 저녁을 먹어야겠네.
“기름과 잿물로 무엇을 만드신 겁니까?”
“더러운 때를 없애는 것이오. 몸을 닦는데 쓸 것이지. 잡서에서 나왔는데 한번 행해 보았소.”
“그런 물건이 있다면 참으로 쓰기 좋을 것입니다. 어서 석반을 드시지요.”
석반은 저녁이다. 점심은 대충 챙기고 아침과 저녁에 집중하는 식문화이긴 하다. 일단 이 집은 상당히 부유한지 9첩 반상이 무조건 저녁이다. 밥상 가득하게 반찬이 있는데 다 먹을 필요도 없고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먹는다. 그렇다 해도 밥의 양이 너무나 많다. 이건 벌크 업 식단으로는 단백질이 조금 부족한데.
밥도 다 먹고 비누도 다 굳었으니 시험을 한번 해 봐야지. 이 시대의 비누는 이름을 석감(石鹼)이라 하자. 하인들을 시켜서 더러운 걸레를 빨아보라 하였다.
“석감에 손을 대지 말고 묻혀라. 잘못하면 피부가 상할 수도 있다.”
“명심하겠습니다.”
잘못하면 염기성이 너무 강해 피부가 상할지도 모르니까 되도록 손을 대지 말고 빨게 하였다. 하인들은 엄청난 구정물을 보면서 감탄했지만. 잠시 뒤에 바로 반색하면서 나에게 말을 했다.
“대감님, 제법 닦이는 것 같은데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라니?”
“석감에서 조금씩 기름기가 베어 나오는데. 옷을 빨았다면 큰일 날 뻔 했습니다.”
역시나 한 번에 되는 일은 없지. 두 번째로 만든 비누는 잿물을 약간 더 졸여서 만들어야지. 그리고 비누에 향을 입히거나 조금 다른 약재를 넣거나 하면서 개량을 해야겠지. 이걸 왕실 독점으로 내수소(내수사의 이전 명칭)에서 팔게 하면 국익에 도움이 될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아내가 와서 실패한 비누가 빨아낸 걸레를 바라본다. 기름기가 남아있다 해도 효과는 굉장하지?
“무엇인가 문제가 있습니까?”
“아니오. 단번에 성공하는 일이 없으니 조금씩 개량해야 하는 법이오.”
근데 아까 전부터 시선이 야릇하다. 맞아 우리 아들도 없지? 그래봤자 세조의 첫 아들은 1438년 출생인데 지금은 1436년이잖아? 시기가 안 맞는데? 일단 의무 방어전은 치러야 한다. 침소로 향하면서 과연 우리 첫째 아들은 언제 태어날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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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은 오늘도 서책을 읽으며 내려온 업무를 해나가던 중 목이 뻐근하고 집중이 되지 않자 귀를 잡고 머리를 이리저리 틀며 목의 근육을 풀었다. 시원한 감각에 갑자기 찾아온 누군가를 눈치 채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고 시원하다 아이고.”
“서책을 펼쳤으면 그 서책의 글귀에 집중하는 게 옳지 않은가?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겐가?”
“세 세자저하!”
진양대군이 알려준 ‘기혈이 뭉치지 않는 법’은 정말 좋았다. 새벽같이 일어나 저녁 해가 질 때쯤에야 돌아가는 관료들의 목 근육은 차돌덩어리 같았고. 이렇게 가끔 목을 풀어주면 아픔이 가셔 글을 더 오래 정확하게 볼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현전 관료들은 영전사부터 대제학도. 심지어 가장 아래인 정자까지 죄다 이 운동을 하고 있었다. 주상전하가 오실 때에는 미리 말씀을 하시기에 들키지 않았지만. 세자저하는 이번에 불쑥 나타나서 단번에 들통 났다. 하긴 경박하긴 했다. 손으로 귀를 잡고 머리를 상하좌우로 마구 틀어버리는 방식이니.
“대저 서책이라 함은 그 글귀를 백번 읽어 마음속에 새겨도 부족함이 없는데. 이리 고개를 뒤틀면 어찌 집중하여 그 뜻을 알고 본받겠는가. 이걸 처음 시작한 자는 누구인가?”
“진양대군이십니다.”
“유(瑈)가? 얼마 전 집현전에서 일을 했다는데 그때 알려준 것이란 말인가?”
진양대군이라. 자신의 동생은 학문에는 그리 재능이 없었지만 몸은 날렵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목이 떨어질 것 같고 어깨가 뭉쳤을 때 이렇게 하면 효험을 보았습니다. 잠시 목을 풀고 서책을 보면 더 집중할 수 있어서 모두 기혈을 풀었습니다.”
“어디 이렇게 아윽!”
세자이자 미래의 문종도 세자로서 신밀레를 당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귀를 잡고 목을 틀자 굳어있는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이윽고 시원함이 밀려오자 스트레칭을 계속 하며 목의 근육을 풀어나갔다.
“참으로 좋은 것을 알려 주었구나. 어의들이 몸을 풀어내는 것만큼 효험이 좋으니 이는 실로 훌륭한 일이다.”
“그러합니다.”
“그러니 더더욱 정진하도록 하라. 하나의 짐을 덜어낼 수 있지 않았는가?”
집현전의 관료들은 몸이 좋아진 만큼 일이 고되어졌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하였다. 돌아간 세자 이향은 세종대왕에게 이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세종대왕은 이 사실을 유를 가장 아끼는 자신의 부인. 소헌왕후에게 알려주었다.
“유가 예전부터 몸이 날래고 행동이 빨랐는데 이리도 좋은 방법을 알아내다니. 실로 기특하기 이를 데 없는데. 도대체 이런 것을 어디서 배웠는지 의문이구려.”
“그 아이는 무예도 뛰어나지만 잡다한 것에 능숙하지 않았습니까.”
“신분을 가리지 않고 여러 사람을 만난다 하였는데. 그런 곳에서 좋은 것을 찾아내는 재주가 있나 보구려.”
목의 경혈을 푸는 방법이라 하여 경신방(頸伸方)이라 불린 간단한 체조는 대소신료들에게 서서히 퍼져나갔다. 그러나 아랫사람도 윗사람도. 아픈 것이 없어진 만큼 더 일을 해야 하는 선순환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