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筋肉朝鮮
< 프롤로그 (0729 수정) >
인생의 꽃이 피었다. 생활스포츠지도사 1급. 도합 7년간 얼마나 고생을 하며 이 자격을 취득했는가. 중간에 식품영양학과도 한번 다녀보고. 헬스클럽에서 돈을 벌면서 서울에 연립주택에도 들어가고. 그런데 여자 친구는 없네. 아 슬프다.
“우리 트레이너님의 자격증 취득을 기념하며! 자 최코치, 한마디 하게나!”
“이 자리를 마련해주신 회장님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여러분이 있어준 덕분에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다들 몸의 건강을 우선시 하시고. 적당히 마시고 적당히 즐기고 내일을 위해 삽시다! 건배!”
“건배!”
그래도 회원님들이 있다. 술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내가 코치를 해준 사람들이고. 이 센터에 장기 회원으로 계속 있었던 사람들이다. 대부분 40대 이상에 성인병에 시달리던 분들이다.
“이제 최 씨는 다른 클럽으로 가는 거야?”
“아뇨, 저희 사장님이 편의를 많이 봐주셨는데 1년은 여기에 있어야지요. 앞으로도 열심히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염려 마십쇼.”
술자리는 계속 이어졌다. 그래도 내일을 위해서 살자는 말을 했기에. 다들 적당한 수준에서 술을 끊고 집으로 들어갔다. 2차도 있으니까 움직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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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20년 지기 친구와 만났다. 센터 근처에 있는 작은 수제맥주 집에서 대기하고 있던 녀석은 벌써 치킨을 반 마리나 뜯었다.
“그래? 1급? 그거 따면 강남에 있는 센터는 갈 수 있냐?”
“나도 양심이 있지 바로는 못 간다. 1년 정도는 여기서 마무리정리 하고 가야지.”
“그래 양심 그거 좋지. 나도 그냥 어디론가 휙 가버리면 좋을 것 같은데.”
피로에 찌든 친구의 얼굴을 보니까 당장 회사 일 때려치우라 하고 싶지만. 이놈의 코도 석자다. 애가 지금 세 살이라던가.
“그 1년간 너 PT해줘서 살 쫙쫙 빼게 만들어줄까? 너 비만에 고혈압이라면서. 슬슬 위험해”
“야 내가 지금 회사에서 가장 일 열심히 할 위치야. 우리 이제 두 달 있으면 37이잖아. 야근 안한다고 버티면 어찌될지 모른다. 난 마누라도 있고 딸내미도 있어.”
“솔로라서 기쁘네.”
“기쁘긴 개뿔. 남자도 40이면 퇴물이야. 너는 진짜 열심히 살아왔잖아.”
생각해보니 참 어처구니없이 열심히 살아왔다. 친구는 오로지 한 길만 팠다. 그에 반해서 나는 사학과를 나왔다가 보디빌더의 길로 들어와서. 생활스포츠 1급을 취득했고.
“나는 차라리 너처럼 한 길만 파는 게 나아 보인다.”
“야 설계 쪽은 박봉이야 그것도 전통건축은 빡세고 박봉이지! 여기 오백 한잔 더요! 나 잠깐 화장실.”
“오냐.”
결혼?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15년째 연예세포가 고갈중인데 무슨 결혼이야. 중매 서야지. 그렇게 한탄하면서 맥주를 마시는데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온다.
- 그러니까 말이야 헬스클럽 다니는 새끼들 다 스테로이드인지 뭔지 맞는 거라고.
- 오빠 진짜?
이건 또 뭔 개소리야?
- 보충제인지 뭔지 그거도 이상한거야. 전에 근처에 센터 6개월 끊고 갔는데. 웬 꼰대 같은 놈이 내가 사온 보충제 먹지 말라 하더라고. 근데 왜 그놈은 맨날 먹어?
- 맞아 맞아. 보충제를 왜 먹으면 안 돼?
어서 듣던 목소리어서 뒤를 돌아보니 1년 전에 난장판을 피웠던 놈이 보였다. 손중기 근육에 혹해서 센터 등록했다가. 운동도 안하고 놀면서 빨리 근육이나 키워달라고 하던 놈이었지. 거기다가 하필 게이너(칼로리 보충용 제품)를 사와서 몸 망가트릴까봐 센터에서 쫒아냈었고.
“요즘 약투인지 뭔지 유행하지? 근육 우락부락하면 일단 의심부터 해야 해.”
“오빠 일단 잉스타에 올릴까?”
“중랑구 XX 헬스클럽 거기 올려봐 너 잉스타 팔로워 많잖아.”
나서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는데 한 소리는 해야겠다. 몇몇 양심 없는 놈들 때문에 내가 피해를 봐야겠어?
“올리십쇼 회원님.”
“야 너!”
그래도 멍청한 놈이 얼굴은 알아보네. 이럴 때는 거짓을 말하지 않고. 참되고 진실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야 회원님 반갑습니다. 육 개월을 끊으시고 일주일 만에 운동을 때려치우시니 아직도 근육량이 부족하죠. 저는 약 같은 것은 하지도 않았으니 신고를 하시던가요.”
“약을 안 한다고? 그럼 왜 너는 먹고 나는 약을 못 먹냐!”
“저는 보충제야 좀 먹지만 약은 안한 내추럴입니다. 회원님이 구매하신 보충제는 최고급 탄수화물 보충제여서 엄청난 운동량이 없으면 간이 망가지고 당뇨가 생기거든요.”
1년 전에 했던 말을 또 하자 얼굴이 시뻘게진다. 그렇지만 멈출 생각 따위는 없었다.
“회원님의 몸을 보면 참으로 딱하기 그지없습니다. 벌써 마른비만인게 제 눈에 보이네요. 뱃살 어떻게 감추고 다니세요? 안색도 안 좋으신데 보충제를 막 드신 거 아닙니까?”
술도 많이 올라온 것 같은데 말을 이해는 했을까? 하는데 갑자기 병을 들어서 깨버린다. 뇌가 맛이 갔나?
“저기 옛 회원님? 그거 말고 총 가져오시죠.”
“오지 마 새끼야!”
“저 안 왔습니다.”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리고. 친구 녀석이 화장실에서 튀어나온다. 솔직하게 말해서 병에 찔리면 병원도 가야하니 귀찮았다. 그래서 노려보고만 있었는데.
“야 뒤에 돼지새끼 오지 말라고!”
갑자기 친구가 전화기를 들고 신고하려 하자 친구를 향해 다가오다가. 지 혼자 발이 꼬여서 다른 식탁에 머리를 박으며 자빠져 버렸다. 이건 또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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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어디냐고? 경찰서다. 내 인생에서 두 번째로 온 경찰서다. 일단은 내가 가해자란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제가 욕을 좀 했다고 갑자기 멱살을 잡고 던지지 뭡니까?”
“진짜 멱살 잡았습니까?”
“그냥 서있었는데요.”
분명 스스로 발광하고 스스로 자빠져서 스스로 뇌진탕에 걸렸다. 정작 경찰은 CCTV가 보이지 않는 각도라고 일단 끌고 왔다. 그렇게 한참을 있자 애새끼의 부모라는 작자가 왔는데 하는 말이 가관이다.
“당신 뭔데?! 뭔데 우리아들을 손대!”
“이게 무슨 삼류 소설이야? 당신 아들은 지 혼자 술 먹고 지 혼자 깽판 치다가 지 혼자 넘어졌다고요!”
“당신 뭐? 트레이너? 어느 헬스클럽이 너 같은 깡패새끼를 트레이너로 삼아? 거기 폐업시키게 어디인지 주소나 불어!”
사회상활 하면서 이런 부류는 거의 보지 못했지만. 말로 듣지 못하면 듣게 만들어야 한다. 끊은 지 십년도 넘은 담배가 당기네.
“담배한대만 피고 오겠습니다.”
밖으로 나오자 증인으로 있던 친구가 담배를 뻑뻑 피우면서 괜한 짜증을 내고 있었다. 그러다 병들어 죽겠다 이놈아.
“너 담배 다시 하냐?”
“딱 한 대만 주고 들어가라. 여긴 내가 해결 본다.”
“너 혼자서 뭘 하냐. 혹시 너희 사장님 부를 거야? 그렇다면 내가 나설 일도 없겠다.”
친구가 조용히 사라지자.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이전 통화를 눌렀다. 오늘의 술자리를 만든 회장님이자 나를 이 길로 끌어들인 분이다.
“네 회장님. 좀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뒤로 30분도 지나지 않아서 경찰서 앞으로 외제차가 들어왔다. 내가 고용된 피트니스 센터 건물주이자. 나름 손꼽히는 기업의 회장인 사람이다. 이분의 PT를 시작하면서 내 인생도 이 분의 인생도 달라졌으니까.
회장님은 도착하자마자 호구조사(여기서는 기업조사)를 시작하셨고. 자신이 알고 있는 회사의 부장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이후는 그야말로 설명 할 틈도 없이 끝났다. 자식이 죽일 놈이 되었고 나는 깡패 트레이너에서 엘리트 트레이너가 되었지.
“최코치. 내일도 PT 잘 부탁해.”
그 소동은 없던 일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더러운 내 기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늘은 좀 취하고 싶다. 내일부터 빡세게 하면 어느 정도는 보충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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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놈의 한국은 몸을 키우지 않는가. 미국만 해도 다들 몸 기르고 근육이 있어야 사람답다고 취급받는데 말이지. 편의점에서 대충 맥주랑 소주를 사와서 말아서 먹고 있었다. TV에서는 그 유명한 프로그램이 나왔다.
- 짜잔! 가격 후려치는 사나이들!
- 오우! 아주 큰 무기를 가져오셨네요?
- 이 무기는 제 가문에서 미국으로 이주할 때 가져온 물건이에요. 저희 집은 한국, 정확히는 조선에서 1902년에 미국으로 이주를 했죠, 처음에는 하와이에서…….
멍하니 보고 있자니 배알이 꼴린다. 그딴 놈도 여자 친구가 있는데 왜 나는 없지? 조선시대가 나왔으니 잘 되었네. 그래 조선시대라 생각하자.
“세종대왕님이 단명한 이유? 간단하잖아! 운동을 안 해서야! 형제들도 스물 전에 죽은 경우 빼고 다 60넘게 살았는데 운동만 했으면 60이었어! 고기 좀 적게 먹고 운동하고 했으면!”
- 이것은 임진왜란에서 쓰였던 무기라고 하는데요…….
“그래 임진왜란? 야 나 같은 장수가 있었으면 천명쯤 몸 좋은 애들로 뽑아서 트레이닝으로 근육 체형으로 만드는 것이 시작이다. 남자는 몸이 좋아야지!”
- 오우 그 전쟁에서 조선군의 피해가 매우 컸다고 들었는데요.
사학과 나와서 그런지 기억은 좀 나는데 모르겠어. 헬스에 미쳐서 근육이나 기르다가 학점을 깔아주면서 겨우 졸업했지. 그렇게 헬스클럽에서 일하고 자격증도 따고 아줌마 아저씨들이랑 학벌로 말싸움해서 이기려고 식품영양학과 대학원도 나오고 또 자격증 따고 열심히 운동시키고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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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기오!
“아니 뭐야? 난 이런 알람 안했는데.”
얼굴을 만져보니 개기름이 번지르르하다. 자기 전에 제대로 씻지도 않았구나. 한숨을 쉬면서 이불? 소파에서 잤는데 이불? 뭐지? 정신이 나가서 몸을 만져봤는데 지방이 만져진다.
“으악?! 뭐야 이게!”
“나리! 궁에 가실 준비를 하십시오!”
“뭐야? 뭔데? 내 몸이 왜 이래? 지금 새벽녘인가? 나리? 또 뭐야?”
몰래카메라인가? 창문으로 달려가서 급하게 문고리를 풀고 문을 열었다. 눈앞의 광경은 설마. 이건 아니지. 설마 이건 아니지!
“설마 아니겠지. 내가 꿈을 꾸는 거겠지. 이게 대체 뭐야.”
창문을 여니 마당에서 일하던 하녀가 꾸벅 인사를 했다.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어떠한 기억이 떠올랐다. 아바마마께서 부르시니 궁에 가야한다고? 원래의 몸 주인이 남긴 정보가 있나?
“세종대왕”
아버지의 존함은 이 도. 올해 재위하신지 18년이 되는 분이다. 내 이름은 이 유이고 19세. 그러면 나는 수양대군이고 지금은 1435년이라는 소리야? 나이가 불명확하니 1436년인가? 그렇게 멍하니 있자 복식을 차려입은 여인이 와서 인사를 건넨다.
“기침하셨습니까.”
내 몸의 주인인 수양대군. 그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럴 때 아내에게 그렇다고 말을 했던가. 일단 광인으로 찍힐 수는 없으니 적당히 답하자.
“그렇소.”
“어째 안색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어디 편찮으십니까?”
“이상한 꿈을 꾸었소. 정녕 세상의 일이 아닌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소이다.”
수양대군의 기억이 남아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아내는 그저 악몽을 꾼 것 같다고 생각하고 넘어갔으니까. 앞으로 당분간은 수양대군의 기억을 따라서 행동해야겠다.
“그러시다면 어떤 꿈이었습니까?”
“그런 허황된 이야기는 하는 것이 아니오. 나는 궁에 다녀올 것이니 염려 마시구려.”
아내는 무사히 넘겼는데 세종대왕님은 과연 넘어갈 수 있을까. 수양대군의 기억은 완전히 남아있으니 철저히 수양대군 아니 진양대군을 연기하자. 그렇게 죽인지 밥인지도 모르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가마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