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서 도망치는 겁니까?” “주인에게서요.” 해강의 대답에 우진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그도 느낀 것이다. 제 입에서 나온 말이 가지고 있는 무게감을. “내가 있던 곳이 다른 이들에겐 로망일 수도 있지만, 내겐 그저 짐승우리처럼 느껴졌어요. 그곳은,” 해강은 차오르는 감정에 말과 말 사이 텀을 두었다. 그녀에게 거긴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차라리 두 다리를 잘라내고 말지, 제 발로는 절대. “그곳은 사람을 사육하는 곳과 다름없었거든요.” 그렇다고 당장 갈 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디든 '그'의 눈길이 닿아 있을 테니. 앞길이 막막한 해강에게 우진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해왔다. “나와 결혼합시다. 그럼 내가 새로운 신분을 만들어주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