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 차별적 표현, 강압적 관계, 각 인물의 성격에 따른 자기합리화를 비롯한 각종 올바르지 못한 사상이 묘사됩니다. 그 누구보다 알파다운 소년, 애쉬포드 크로울리. 당연히 알파라고 믿었던 자신이 2차 발현 결과에서 오메가로 나오자 심한 충격을 받아 소꿉친구인 극우성 알파인 알레이스터 렉싱턴을 멀리한다. 그 뒤 오메가라는 사실을 감추고 베타로 위장을 하며 지내던 애쉬포드는 인위적으로 억제한 호르몬 때문에 몸이 망가지고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게 되는데,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알파의 페로몬 샤워. 그는 페로몬 샤워를 위해 다른 알파와 계약결혼을 진행하려고 하고, 예전부터 애쉬포드를 짝사랑하며 주변을 돌던 알레이스터 렉싱턴은 불같이 분노하는데……. * * * “내가 언제 좋아해달라고 한 적 있어? 아니잖아. 그런데 왜 내 탓을 하지? 날 좋아하는 멍청이들을 모조리 책임지기라도 하라는 거야?” 알레이스터는 말을 이어나갈수록 차분해지는 화려한 낯짝을 거의 신기해하는 것 같은 눈으로 쳐다봤다. “애셔, 너는 내가 널 숭배하는 걸 즐겼잖아.” 그 말에는, 천하의 애쉬포드도 왈칵 표정을 구겼다. “결국 발현 못 한 뒤에는 나랑 같이 있으면 계속 알파인 것처럼 굴 수 있는 걸 만족스러워했지. 그런 걸 싫어하고 성가셔하는 시늉을 하면 마치 네가 더 우월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굴면서. 이 세상에 네 자존심보다 중요한 것 같은 건 없으니까. 너한텐 그런 쓰레기 같은 행동이 늘 당연한 거였겠지만…….” 알레이스터는 제 살 깎아먹는 미친 소리를 계속해서 지껄여댔다. “넌 기분 나쁠 때마다 나한테 화풀이하고,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말을 끝없이 들려주는 걸로 희열을 느끼고, 언제든 널 잃을 수 있다는 걸 주지시키면서 내가 두려워하는 걸 구경했잖아. 그게 옛날부터 지금까지 네가 제일 즐거워하는 취미 아니었어?” 줄줄 이어지는 알레이스터의 목소리가 너무도 평온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자신의 발밑에 무릎 꿇고 기어 들어오길 꺼리지 않았던 녀석이. 갑자기 두 다리로 우뚝 서 빳빳하게 고갤 든 것만 같이 이상했다. 웃기는 감상이었지만. 애쉬포드는 꼭 믿었던 브루투스에게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나는 네가 그런 인간이라도 잘 견뎠어. 그래도 상관없었으니까. 너는 어차피 내 앞에서만 쓰레기처럼 구니까, 그걸로 만족하려고 했단 말이야.” 애쉬포드의 낯이 수치심에 붉어졌다가 새파랗게 질리길 반복했다. 발가벗고 타임 스퀘어 한복판에 서 있어도 이보다 쪽팔리진 않을 것 같았다. 자신의 가장 음침한 본성이 까발려진 것만 같이. 그렇게 창피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저런 쓸모없는 걸로 갈아타려는 거야?” 그러거나 말거나, 알레이스터는 빌어먹을 주둥이를 닥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네가 그랬지. 알파 같은 게 널 좋아해봤자 역겹고 끔찍하기만 하다고. 나는 납득했어. 넌 원래 그런 새끼였으니까. 남의 마음 같은 건 길거리에 뒹구는 돌덩이보다 못한 거니까, 너한텐 늘 얼마든지 함부로 대해도 되는 거였어.” 알레이스터는 상처 받은 기색 하나 없이 무덤덤했다. 너무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와서 이젠 그런 취급을 받아도 생채기조차 나지 않는다는 것처럼. 혹은, 더 이상 새로운 상처를 새길 자리조차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지친 것처럼. “네가 발현 못 했다는 거 말해줬을 때 기억나? 그날, 나 집에 가서 혼자 샴페인까지 터트렸어. 네가 알파가 아니라 베타라서. 베타인 넌 운 좋게 오메가로 태어난 녀석들한테 눈길도 안 줄 테니까. 그까짓 게, 나한테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기쁜 일이었어.” 애쉬포드는 차라리 제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왜 하필이면 알파를 고른 거야? 왜 여기에 데리고 왔어? 넌 날 어디까지 떨어뜨리고 싶어? 차라리 그냥 말로 해주면 안 돼? 그럼 내가 너 보고 싶은 거 다 보여 줄게. 여기까지 와서 못 할 게 뭐가 있겠어? 난 네가 시키면 네 발로 기면서 네 구둣발에 키스할 수도 있는 새낀데.” 그는 꼭 슬픔에 잠기기라도 한 것 같은 목소리로 애쉬포드를 몰아 붙였다. “나는 네가 바라는 건 웬만하면 다 들어줄 거야. 내 다리를 부러뜨리고 내장을 뜯어가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좋아. 내가 괴로워하는 걸 구경하는 게 네 최고의 즐거움이라면 얼마든지 괴롭게 만들어도 괜찮았어.” 녀석의 말은 이제 거의 자학처럼 들릴 지경이었다. 어째서 자신이 이런 모욕을 듣고 있어야 하는 걸까?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는데, 그게 분노인지 굴욕감인지 명확히 구분 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물을게.” 알레이스터는 애쉬포드로부터 정확히 한 발짝 반 정도 떨어진 거리에 서 있었다. “저 알파 새끼한테 감정이 생겼어?” 뒤에 있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알레이스터의 지시로 올라왔을 호텔 직원 몇이 우르르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이 몹시 프로페셔널하게 정신을 잃고 널브러져버린 피투성이 로니를 수습했다. “아니면, 나한테 질려서 나 대신 짓밟고 가지고 놀 새 알파가 필요하셨나?” 그 물음엔 채 숨기지 못한 감정의 잔재가 질척거렸다. 이 와중에도, 결국 그 머저리 같은 감정으로 회귀하다니. “멍청한 새끼.” 바짝 독이 오른 애쉬포드가 성마르게 웃었다. “넌 가지고 노는 재미도 없는 급 떨어지는 새끼였는데, 누가 누구 대신이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