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오월의 우울한 실루엣

“까딱하면 사기 결혼을 당할 뻔했군요.”

“그, 뭐…. 그렇게 거창하게 받아들일 이유가 있습니까. 요즈음에는 대리 오메가를 들이는 추세이니 그렇게 하시는 편이….”



아까 전부터 느껴졌던 기묘한 감각이 찌르르 등골을 타고 올랐다. 집안사람들이 남자에게 묘하게 쩔쩔매는 분위기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잘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보다 한참 어린 남자를 앞에 두고 좌불안석인 걸 보니 기분이 미묘했다.



“그럼.”



남자가 붉은 포도주를 머금었다가 짧게 삼켰다.

그 찰나의 시간, 모두가 그에게 집중했다. 남자에게는 그런 힘이 있었다.



“제 씨받이는 이미 정해진 것 같은데요.”



남자가 나를 바라봤다.



* * *



“아이를 낳고 나면 저는 어떻게 돼요?”

남자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무슨 말이죠?”

“그러니까 아이를 낳아서, 제 본분을 다 마치게 되면….”

“…….”

“저는 이 집을 나가게 되나요?”

내 물음에 남자는 잠시 어안이 벙벙한 것 같았다. 그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요….”

“…….”

“내가 몸을 풀 틈도 없이 괴롭힐 수도 있다는 건 생각 못 해 봤어요?”

“…네?”

“한시도 쉬지 못하게, 체명 씨 배를 내내 부르게 할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

여전히 고상한 목소리였지만 내뱉는 말의 뜻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부른 배가 몇 년간 꺼지지 않을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니 울대가 콱 막혀버렸다. 싱그럽게 웃는 남자의 얼굴이 잔인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찰랑거리는 얼그레이 찻물 위에 엉망으로 일그러진 내 얼굴이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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