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김건호는 신체가 강화된 채 23세기로 타임 워프했다. 미래에서 50년간 고통스레 헌신하여 종말을 막고 현재인 열아홉 때로 돌아온다. 위험한 미래는 사라졌고, 아무도 그가 겪은 고통을 알지 못한다. 아무도 모르는 영웅은 그만 편히 쉬고 싶다. 영웅은 죽고 싶다. 강화된 체내 세포를 완전히 죽이는 데 필요한 시간은 백 일. 죽기 전 주어진 백 일의 유예기간을 무료하고 평화롭게 보내고자 마음먹은 김건호 앞에, 그가 미래로 가기 전 짝사랑했던 남자애가 나타난다. 여해정, 영웅의 열아홉 시절 첫사랑이. [본문 발췌] “누가 계속 생각나고 궁금하고 그 사람이 너무 어렵게 느껴져서 힘들면, 그게 좋아한다는 증거라더라.” “…….” “그 가정에 따르면 내가 널 좋아하는 거거든.” 심장이. 멈출 것 같다. “조금 혼란스럽기는 해. 남자한테 이런 적은 처음이라. 넌 어때. 남자는 싫어?” “…….” “아니다. 다시 물어볼게. 나 싫어?” 싫을 리가 없다. 그렇지만 도망치고 싶었다. 여해정이 나를 좋아한다니. 내가 그와의 관계에서 가장 걱정했던 것은, 내 마음을 들킬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뿐이었다. 이건 예상 밖의 에러 상황이다. 김건호는 여해정을 좋아한다. 그게 맞다. 그 역방향은 통하지 않는다. 통하지 않아야 했다. 도망치고 싶다. 날 특별하게 여기려는 저 감정에서. 무형의 눈빛이 나를 찍어 누르는 것만 같다. 나는 사라질 사람이고, 여해정은 남는 사람이다. 내가 내 감정을 끌어안고 사그라지면 별문제 없이 매듭지어질 관계였는데. 어째서. “건호야….” 왜. 네가, 나를. “나 싫어?” 나를 네 안에 끌어들이려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