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무심수 #책에빙의했수 #원래세계로돌아가고싶수 #병약(?)수 태성제……. 그 사람이 나를 집에 데려다줄 거야.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동생이 준 BL소설 속 인물, 서승원으로 빙의한 ‘나’. 빙의 후유증으로 툭하면 코피며 각혈을 하면서 온갖 고통에 시달린다. 평온함을 유지할수록 고통이 덜해진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필사적으로 생각을 비우고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원래 ‘나’의 기억이 사라져가자 견딜 수 없어 한다. 그러나 ‘나’는 이 끔찍한 곳으로부터 탈출해 현실로 돌아가기 위하여 소설의 끝을 목표로 잡고 희망을 놓치지 않는다. 소설 속 흐름대로 ‘태성제’의 연인이 되고, 버림받고, 끝내 자살을 꾸며내고자 한다. 오로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미리보기] 차가 지나칠 때마다 적나라한 폭력 현장이 눈에 환하게 들어왔다. 온몸의 혈관이 쪼그라든 기분이라, 급격히 차가워진 손을 꽉 쥐곤 천천히 뒷걸음질을 했다. 내가 제대로 움직이고 있는지 감이 안 잡혔다. 무섭다. 너무 무서워서 온몸이 다 떨렸다. 폭력이 두렵지 않은 인간이라도 여기선 공포를 느낄 것이다. 섬뜩한 폭력의 소리가 내 발목을 잡아채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눈앞이 절로 깜깜해졌다. 어디에서도 태성제 같이 독보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는 존재를 본 적이 없었던 탓에 생리적인 공포감이 몰려왔다. 그가 건들건들한 목소리로 남자를 뒤흔들며 대답을 종용했다. 대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곧 무료한 눈빛으로 남자의 입안에 담배를 짓이겨 끈다. 꺽꺽거리며 버둥거리던 남자가 활어처럼 펄떡거렸다. 순간 이게 진짜 내 눈앞에 벌어지는 일이 맞나 싶었다. 영화나 소설이 아닌 실제로 내 눈앞에 벌어지는 일이 정말 맞는지. 생각회로에 혼선이 왔다가, 차가운 공기와 쌩쌩 지나치는 자동차 소리로 느껴지는 현실감에 얼른 정신을 차렸다. 속이 메스꺼워 신물을 토해낼 것 같았다. 이게 진짜라면, 저런 남자랑 내가 뭘 해야 한다고 했지? 연애? 미쳤나. 그걸 어떻게 해. 짙은 낭패감에 절로 사색이 되었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 얼굴이 희게 질려 있을 것 같았다. 2부가 시작되면 저쪽에서 알아서 날 찾아와 꼬시려 할 테고, 우린 연인이 되겠지만……. 그러려면 내가 저 사람을 상대로 ‘사랑에 빠진 척’을 해야 한다. 사랑? 저 남자랑 내가 사랑? 미친 소리다. 못한다. 연기라도 절대 못한다! 글로 보고 상상했던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달랐다. 정말 달랐다. 저쪽도 속셈을 가지고 연기하는 거고 걸려도 별 상관없을 테지만, 내가 걸리면 상황이 달라진다. 태성제는 깡패와 건달 사이에서 큰 사람이다. 사람을 이용하고 협박하며 패는 것에 거부감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 만약 걸린다면……. 몰려오는 공포감에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서 식은땀이 미친 듯이 흘렀다. 태성제는 고작 우지민을 곤란하게 만들 목적으로 평범하게 잘 살고 있는 서승원을 이용했다. 그에게 서승원은 그저 장난감일 뿐이다. 장난감이 장난을 치는 걸 좋아할 리 없겠지. 손속이 잔인해 제 사람이라고 봐주는 법이 없는 사람인데, 장난감한테는 얼마나 혹독하게 굴까? 태성제는 제 부하, 독사의 충심을 시험하기 위해 멀쩡한 손가락을 자르라고 했던 남자였다. 그는 원체 정상인 사람이라면 하지 못할 일을 아무렇지 않게 명령하고 행동했다. 또 변덕이 죽 끓듯 해 한없이 가볍게 굴다가도, 갑자기 돌변해 살벌하게 몰아세워 사람들을 긴장시켰다. 작중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겁 없는 우지민마저 벌벌 떨었다. 태성제는 함부로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데, 그를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강무현을 만만치 않은 또라이 새끼라고 했던 우지민이 잘못 걸렸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는 급이 다른 미친놈이었는데. “…….” “…….” 넋 놓은 시간이 길었다. 멍청한 짓을 했다고 깨달은 건 태성제와 눈이 마주쳤을 때였다. 언제 날 발견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범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 기분이라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태성제는 먹잇감을 탐색하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며 담배 연기를 느긋하게 뱉어냈다. 순간 내가 들어온 곳이 느와르 소설이었나 헷갈리기 시작했다. 나는 분명 유리한 입장이었다. 미래를 알고, 그에 대해서도 잘 아는데, 그를 보고 있자니 다 부질없게 느껴졌다. 아름답지만 섬뜩하리만큼 기묘한 삼백안은 버릇인 양 집요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를 꼼짝도 못하게 만들었다. 나야 의도치 않게 시선을 피하지 못했지만, 태성제 쪽에서도 내게 눈을 떼지 않아 우리는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것은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이 시간을 움켜잡은 것 같았다. 그때 헤드라이트의 환한 빛이 우리 사이를 스치듯 쏘며 사라졌다. 태성제의 눈에 이채가 서리는 것 같았지만 너무 순식간이었던 터라 확신할 순 없었다. 식은땀으로 젖은 머리카락이 거슬렸지만 신경 쓸 수가 없었다. 힘이 빠지기 일보직전인 다리에 힘을 주고 이를 악물었다. 아, 씨 발. 토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