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오누이처럼 함께 자라온 윤환은 연우의 전부였다. 식물이 빛을 갈구하듯, 짓궂으면서도 다정한 오빠는 당연한 존재였다. 그래서 윤환이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받을 때도 그저 재미없는 농담으로 치부했다. “연우야, 그런 놈들은… 겉으로는 순한 양처럼 굴어. 양 떼들 사이에 껴 있으려면 본색을 감춰야 하니까. 그리고 때가 되면 반드시 역겨운 본성을 드러내. 그 순간이 되면 넌 뭘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가려진 그의 이중성을 알게 된 순간, “넌 결국 발버둥 치면서, 울부짖으면서 그렇게 날 찾고 부르겠지. 네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겨우 그따위 것뿐이니까!” 거울 속 얼굴이 갑자기 타인을 보듯 낯선 것처럼 이제껏 보아온 다정하기만 하던 윤환의 얼굴이 달라 보였다. “말했지. 내가 본성을 드러내도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그리고 어느새 윤환의 경고 대상은 자신으로 바뀌어 있었다. 처음 보는 오빠의 낯선 모습이 남자라는 존재로 연우를 압박했다. “말해. 어딜, 어떻게 해 줄까.” 마치 사탕이라도 줄 듯 윤환이 물었다. 추락하는 듯한 아찔함에 연우는 윤환의 등에 팔을 감고 안기듯 끌어안았다. 성난 파도에 떠밀리듯 흔들렸다. 여전히 다정한 윤환과 낯선 남자가 구분 없이 뒤섞여 흘러들어왔다. “오빠….” 윤환의 말대로 그를 부르는 것 외에 연우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