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작품에는 강압적인 관계, 폭력적인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구매에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처음 네 얼굴을 봤을 때 말이야, 난 결심했다. 너와 네 아비란 새끼를 송두리째 들어내 지옥불 아래 처박고 무엇 하나 남기지 못하도록 불살라 버리겠다고.” 죽음 끝까지 서로를 몰아가는 검투사. 그것은 밑바닥 인생의 숙명이었다. 질컥한 피비린내로 안도하는 삶. 누군가의 죽음은, 오늘 내가 살아남았다는 증거니까. 자신의 구원 같던 여자가 세상에서 사라진 그날. 파베르는 미치광이가 되어 다시금 칼을 잡았다. 복수로 얼룩진 칼끝에서 마주한 여자. 오로지 복수의 대상이어만 하는 네게 매달리고 나서야 깨달았어. 묵직한 외로움 속에서 혼자이고 싶지 않아 발버둥 치던 나를. * * * 노예로 살아온 노예, 에오델의 삶은 나름대로 평범했다. 순응하고 복종하며 체념한 채로 주어진 일을 순탄히 해내면 되니까. 한낱 짐승처럼 짖으라면 짖고 핥으라면 핥는다. 그런 주인을 만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파베르의 손아귀에 떨어지기 전까지는. 꿋꿋이 버텨온 삶은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했던 것뿐. “하늘은 끝이 없는데 바닥은 끝이 있지. 우리는 그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고 말 거야.” 그래도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나가 아니라 우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