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그가 다시 없을 유일한 구원자라고 여겼다.
그녀의 주인이 지금껏 내준 호의는 그 누구도 보여준 적 없는 것이었으며,
지금처럼 웃고 떠들게 된 것 또한 그가 그녀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절…… 애정하신다고 하셨잖아요.”
“난 대답하지 않았어.”
그렇다면 서로에게 섞여들었던 수많은 밤은 전부 무엇이었단 말인가.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았고.”
그가 보인 호의, 배려 그 모든 것에 부여된 의미 같은 건 없었다.
둘 사이에 끊어낼 만한 건 애초에 아무것도 없다.
“고작 거둬준다는 그 말만 믿고, 감히 공작 부인이 될 꿈이라도 꿨나?”
신뢰는 깨져버렸다.
비로소 그를 떠나야 한다는 마음이 완벽히 굳어졌다.
***
성벽 난간 끝에 아슬하게 선 그녀의 발 뒤로 모래가 푸스스 떨어졌다.
“젠장. 일단 내려와서 얘기해.”
“더는 주인님 곁에 있을 이유가 없어요.”
그 즉시 검을 버린 플로라가 두 팔을 넓게 들어 보였다.
조심스럽게 접근하려던 남자의 발이 일순간 그 자리에 못 박혔다.
“당신은 더 이상 나의 주인이 아니니까.”
다음 순간, 플로라의 작은 몸이 뒤로 기울기 시작했다.
들고 있던 검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친 클로드가 절박하게 뛰쳐나간 것과 동시였다.
“플로라!”
오만하신 나의 주인에게.
오늘부로 난 당신을 버리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