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이 세계를 멸망시키는 소설 속에서 환생했다. 나는 나와 가족들을 위해 무시무시한 악역을 막아야만 했다. 그렇게 내 나이 열한 살, 악역의 집에 들어가게 되는데……. 막상 마주한 어린 시절의 그는. “나…… 애 아닌데. 키도 크고 손발도 남들보다 커. 당근 같은 채소도 잘 먹고, 혼자 마물도 잡아 봤어.” 부드럽게 접히는 눈매와, 통통한 분홍빛 볼, 유려하게 올라가는 입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좀 많이 귀여운 것 같다? *** 악역에게 사랑과 평화를 알려 주며 우쭈쭈, 부둥부둥 예쁘고 곱게 잘 키워냈다. 그렇게 9년 후 다시 만났을 땐. “유리아는 진도가 빠른 게 좋다고 했었지.” 그거… 함께 읽던 책 전개 속도에 대한 이야기였잖아……. 그는 뻔뻔하게도 내게 사기를 치며 말했다. “나 정말 많이 공부했어.” “어떻게든 유리아의 마음을 다시 얻으려고. 노력하고…… 한편으론 참았지.” 반으로 곱게 접히는 눈매가 마치 어렸을 적 나들이를 가던 날 보았던 얼굴과 똑 닮아 있었다. 하지만 열기가 어린 눈빛만큼은 귀여운 소꿉친구가 아닌, 악역 로지엘 에벨리안의 것이었다. “그래서 묻고 싶어. 유리아. 손잡기 다음 진도는 어디까지 가능해?” …뽀짝했던 내 소꿉친구는 어디로 갔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