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주제도 모르고 누가 누굴 동정해.” 약혼자에게 라린느는 개보다 못한 존재였다. 지옥 같은 현실에서 도망치려는 라린느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드디어 이렇게 귀하를 만나는군요. 뵙고 싶었습니다, 몹시.” 타국의 사신, 리베히 윈터드. 나른한 몸짓으로 다가와 사냥감을 한입에 삼켜 버리는 새카만 뱀을 닮은 남자에게서 자꾸만 옛 연인이 겹쳐 보인다. 그럴 리가 없는데. 너는 분명히 죽었다 했는데. 드디어 미치기라도 한 걸까. “치료는 매일 밤, 자정. 귀하의 침실로 찾아가겠습니다.” 혼란스러워하는 그녀에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 쏟아졌다. “이리도 무방비해서야. 확 삼켜 버리고 싶게.” 그러던 어느 날, 발톱을 숨기고 온순히 굴던 짐승의 눈빛이…… 변했다. “누구의 아이입니까.” 그녀가 딴 남자의 아이를 품었다는 소문을 들은 이후로, 두 사람의 관계는 조금씩 달라졌다. “험한 꼴 겪고 싶으신 거 아니면 더 참고 기다리라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지금도 예의를 갖추려고 충분히 노력하고 있는 거니까.” 마침내 양의 탈을 벗은 짐승이 사냥을 시작했다. “자꾸만 갈증이 납니다. 우리 관계에 안달 난 건 나뿐인 것 같아서. 그게 나를 미치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