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 남주들과 여주가 꽁냥거리는 달달한 로맨스 소설에 빙의했다. 하지만 그러면 뭐 해. 난 여주가 아닌데.
현실은 악마들이 판치는 꿈도 희망도 없는 세계에서 어쩌다 성기사가 되었다. 남주들이고 나발이고 나한텐 퇴치해야 할 악마들일 뿐이다.
근데 뭔가 잘못되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승리했어야 할 교황청은 패배하고, 악마들은 여전히 기세등등하다.
눈앞이 아득해졌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놈들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어쩐지 장르가 바뀐 것 같다. 원작은 전체이용가 아니었어?!
“마력을 받아들이는 가장 빠른 방법은 성관계다.”
뭐가 제일 빠르다고? 머릿속이 하얘져있는 사이 목 끝까지 옥죄이던 셔츠를 느슨하게 풀어내는, 폭군이란 별명을 가진 분노의 악마부터.
“…우는 거 존나게 예쁘네.”
초면에 죽일듯 굴더니. 침대에선 제 이름을 불러보라고 애원하듯 중얼거리는 성질머리 더러운 질투의 악마에.
“아쉽게도 난 마차에서 하는 취향은 아니라서.”
잠깐만, 너무, 가까운데. 당혹스러움에 조금씩 뒤로 몸을 물리자, 그 거리만큼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속삭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는 냉혈의 악마와.
“…귀여워서.”
너무 예뻐서, 죽이고 싶지 않아. 계속 이렇게 안고 싶어. 상처가 많아 보이는 변덕의 악마까지.
분명히 난 적당하게 이용해 먹고 빠질 생각이었는데. 이상하게 악마들이 집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