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악녀와 바람난 남주를 버렸더니

남자 친구가 내 머리에 벽돌을 내리쳤다. 눈을 떠 보니 힐링 로판 속 여주인공이 된 것도 어이가 없는데, 쌍방 구원 서사의 남자 주인공이 느닷없이 악녀를 주워 와서는 파혼을 선언했다. “그녀를 사랑하게 됐어.” 그래? 오히려 좋아. 그렇게 평화로운 독립생활을 즐기던 어느 날, 으슥한 옆집에 다정한 너드남이 이사를 왔다. “……안녕, 이본느. 위에서 내려다보는 당신은…… 오랜만이네요.” 휘어지는 입꼬리가 흐드러지는 버드나무처럼 청량해, 나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본느는 봄을 닮았어요. ……내게서 긴 겨울을 몰아냈거든요.” 말수도 없고 소심하고 유순하고. 갓 태어난 병아리처럼 나만 졸졸 따라다니는데 이 사람이 뭐가 껄끄럽다는 거야? *** “찾았다.” 이본느는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 자리에 있기로 나랑 약속했잖아요, 이본느.” “……릭스, 손에 그거 뭐예요?” 두꺼운 안경을 벗어 던진 릭스의 보라색 안광이 섬뜩하게 빛났다. “날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면서…….” 맹수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차원이 다른 긴장감, 이 아찔한 충동.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왜 얌전하고 싶은 날 못되게 만들지, 내 주인님은.” ……그러고 보니, 피에 미친 전쟁귀라는 황태자가 딱 저런 눈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찰칵, 족쇄가 채워지는 느낌이 서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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