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죄가 모두 거짓이라 말하고 싶다면 죽음으로라도 증명해봐, 힐라.” 오랜 약혼자였던 카시스는 결국 나를 믿어주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만큼은 나를 믿어주리라 생각했지만 그건 헛된 기대였다. 그의 여동생인 아이셸을 독살하려 했다는 누명을 썼다. 모두에게 비난받아도 한 명 쯤은 나를 믿어주리라 여겼지만 결국 카시스 마저 나에게서 등을 돌렸다. 죽어서라도 무죄를 증명하라니. 차갑게 돌아선 그의 뒷모습을 보며 다짐했다. 카시스에게, 나를 버린 모든 이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게 만들어 주겠다고. “카시스, 네가 그랬지. 죽음으로라도 증명하라고. 그 증명, 지금 해볼게.” 복수를 다짐한 그날, 내 죄의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열린 재판에서 나는 독을 삼켰다. *** “그때 네 말을 믿었어. 하지만, 아이셸이 연관된 일이라 내 판단이 흐려진 거야. 그때 내가 그런 건…….” 만약 이 말을 그때 들었다면 카시스를 받아줬을 지도 모른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카시스를 사랑했고, 어쩌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고 먼저 손을 내밀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카시스를 사랑하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품은 마음은 원망뿐이었다. 그렇기에 카시스의 손을 다시 잡을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천천히 뻗어오는 카시스의 손을 차갑게 쳐냈다. 카시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아이셸은 네가 아끼는 여동생이니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카시스.” “…….” “네가 나를 믿었다고 말하기에는, 너는 이미 한번 나를 죽였어.” 카시스의 얼굴을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내 말을 잠시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던 그의 표정이 뒤늦게 아주 천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낯빛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내가 재판장에서 먹었던 독, 사실은 네가 준 거였잖아.” 카시스의 얼굴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걸 본 순간, 거대한 희열감이 나를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