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세우細雨

#현대물 #소꿉친구물 #캠퍼스물 #일공일수 #오해 #성장 #눈새공 #무심공 #동정공 #다정공 #대물공 #떡대공 #체대생공 #벤츠공 #직진공 #헌신공 #사랑꾼공 #일편단심공 #공처돌이수 #엄친아수 #질투의화신수 #재벌수 #집착수 #동정수 #순정짝사랑수 “너랑 나랑은 징하다.” “말 진짜 예쁘게 하네.” 아홉 살, 우연한 인연으로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된 강지호와 이선우. 가끔씩 선우가 상식에 어긋나는 짓을 해도 제일 친한 친구라는 미명하에 외면해 오던 게 벌써 십 년이다. 흠잡을 데 없는 도련님 이선우는 친구로도 완벽하다. 그러나 그는 기묘하게도 지호의 연애사에 번번이 얽혀 들어가 파탄을 내는데…. 의도한 건 아니겠거니 생각하며 무던히 넘어가던 와중, 지호는 선우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를 듣는다. “뭐? 너 다른 사람하고 착각한 거 아냐?” “응?” “걔가 순진하고 착해 빠졌다고?” 공부밖에 모르던 놈이 세상 문란해졌단다. 아무래도 순진한 도련님이 나쁜 물이 든 것 같다. 어쩐지 책임감을 느끼며 그를 지켜보던 중, 지호는 선우와 홀리듯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이후 둘 사이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 * * “혹시 번호 좀 알려 주시면 안 돼요?” “예. 안 됩니다.” “왜요?” “임자 있어서요.” “그런데요?” 남산 위의 소나무처럼 철갑을 두르고 모든 가능성을 차단했지만 그녀는 어째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나는 눈을 감고 미간 사이를 눌렀다. “아, 저 좀 살려 주십쇼…. 이러는 거 걸리면 저 진짜 뒤집니다.” “…….” 더 돌려 말해 봤자 말만 길어질 게 뻔해서 못을 박자 여자는 기분 상한 표정으로 떠났다. 나는 또다시 비통한 호객 행위를 근근이 이어 나갔다. 이후로도 번호를 묻거나 합석을 권하는 일이 많아 좋게 거절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선배님.” “왜. 뭐.” 축구 풀타임으로 뛴 것보다 피곤해져서 대답도 하는 둥 마는 둥 하자 장민석이 내 바지를 조심스럽게 가리켰다. “전화 오시는 것 같습니다.” 액정을 확인해 보니 이선우였다. 나는 빛의 속도로 전화를 받았다. ―지호야. “응.” ―어디야? “나? 지금 학교. 왜.”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상하게 긴장되고 침이 넘어갔다. ―학교 어디. “그… 주점.” 거짓말하기 싫어서 일단 실토했다.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 말할 생각은 없었다. 할 일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있을 텐데 마음 쓰게 하기 싫었다. 이선우 성격에 호객질 하는 걸 넘어갈 리도 없고. ―주점? “응. 선배들이 일 도우라고 해서 그거 하는 중이야.” ―무슨 일 하는데? “뭐, 시키는 대로 이것저것 하는 거지.” ―이것저것 뭐. “…….” 왜 인생은 내가 원하는 정반대로만 되는가. 눈치 빠른 놈이 감 잡은 것 같다. 나는 계속되는 추궁에 눈앞이 캄캄해져서 고개를 젖히고 얼굴을 감쌌다. 아, 또 왜 이러는데. “선우야.” ―응. “내가 지금 너무 바빠서 그런데 이따 전화하면 안 될까?” ―……. 더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둘러대는 데 한계점을 맞이한 나는 이선우에게 빌었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한동안 불편한 침묵이 계속되었다. ―알았어. “응. 끝나고 전화할게. 공부 열심히 해라.” 한참이 흐르자 이선우는 체념한 듯 중얼거렸고 나는 그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나는 무사히 전화를 끊고 긴장이 풀린 다리를 두드리다가 주저앉았다. 그렇게 잘 마무리되는 줄 알았다. “그러게….” 이선우가 주점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처음엔 내가 헛것을 보나 했다. 하지만 눈앞의 쌔끈하게 잘빠진 남자는 누가 봐도 이선우였다. 이제 막, 사람들에게 맛있는 거 많고 재밌으니까 오시라고 말하던 입이 얼어붙었다. “정말 이것저것 다 하고 있네.” 말에 뼈가 있었다. 밤바람에 식은 살갗에 땀이 송골송골 배어나기 시작했다. “재밌어 보인다.” 차분한 미소를 띤 얼굴이 미끈하게 웃었다. 나는 절망했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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