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끝난 겨울, 아무런 전조도 없이 3년 전으로 회귀했다. 게다가 인소 속에 빙의한 것 같은데 도무지 어떤 소설인지 알 수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진학할 고등학교가 상고도, 공고도 아니라는 것. 일진 만날 일은 없겠지 안심하는 것도 잠시, 입학 전부터 하빈은 사대천왕 중 한 명인 권도진과 얽히게 된다. “나 몰라?” “……모르죠?” “이건 신선한데. 서열 2위 권도진, 정말 몰라?” 도진은 겁먹은 듯하면서도 할 말 다하는 하빈에게 호기심을 느낀다. 그리고 등교 첫날, 교실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 플래그를 꽂았다며 절망하는 하빈의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도진이 나지막이 속삭인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이 있던데-.” 이 정도면 운명인가? 서열 2위 권도진. 이 새끼가 뭐만 해도 난리 나는 반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 “거짓말.” 내 책상을 손으로 짚은 권도진이 몸을 살짝 숙였다. 덮치듯이 다가와 내 영역을 멋대로 침범하는 그를 흔들리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빈아, 난 거짓말을 제일 싫어해.”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이 새끼야……. 커다란 손이 볼을 감싸듯이 쥐었다. 그러고는 엄지를 움직여 느리게 쓰다듬는 행태에 안 그래도 흔들리는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이 움직였다. 당혹스러운 내 심정과 다르게 주변에선 권도진에 대한 새로운 정보 입력과 황홀한 감탄을 흘렸다. 지금 얘 얼굴이 관능적이긴 한데, 그렇긴 한데-! “대답, 해야지?” “미친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