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친구랑 잤다. 아니, 했다. 술기운에 핑핑 도는 머리를 짚고 몸을 일으켰을 땐 이미 모든 게 끝장나 있었다. 뒤집어지는 속이 혈관에 남은 술 때문인지, 십년지기 친구랑 관계가 끝장날지도 모른다는 심란함 때문인지 아니면 밑에서 끝장 나게 괴롭혀진 게 저놈, 안예준이 아니라 현지호 자신이라는 점 때문인지. 지호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젯밤에 너랑 나랑…… 잔 거 말이야. 너는 진짜 아무 생각이 없냐?” “생각? 있지. 어젯밤에 좋았다는 생각.” 와중에도 속을 뒤집다 못해 돌게 만드는 건 저 빌어먹을 알파 놈한테는 도무지 후회란 게 없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친구라는 관계가 무너질까 걱정하는 전 나뿐인가, 싶어 잠깐 우울하다가도 알파인 주제에 왜 멀쩡한 오메가는 내버려 두고 베타인 저한테 치근대나, 싶어 혼란스럽고. 변하기 시작한 관계를 붙든 지호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예준은 끊임없이 그 미묘한 경계선을 건드리며 다가오는데……. “나 어제가 첫 경험이었거든.” “……뭐?” “그러니까 네가 책임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