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의 트라우마로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조차 숨기고 사는 프로 짝사랑 포기러 임재민에게 어떻게 해도 포기할 수가 없는, 잘생긴 것뿐만 아니라 다정하고 상냥하기까지 한 후배 서테오를 짝사랑하게 된 일은 재난에 가까웠다. 마음을 접는데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테오는 재민을 자꾸 착각하게끔 한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 이야기를 해 주고, 취한 자신에게 목을 깨물리면서도 집까지 안전히 데려다주며, 심지어 하늘의 별을 볼 때마다 자신에게 전화하라고 한다. “아, 맞다. 그러기로 했었죠. 미안해요. 형. 섭섭했죠?” 자신이 그에게 어느 정도는 특별하고 소중할 거라고 믿던 착각이 보기 좋게 깨진 순간, 재민은 생애 처음으로 고백한다. “하나도 안 괜찮아… 차라리 섭섭함이면, 끄윽, 좋았을 것 같아.” 그러니 더는 그를 짝사랑할 수 없다고. [발췌] 재민을 만나려 테오는 하키 스틱을 버리고 이곳에 왔다. 경기장에서 나선 그는 보호구를 벗어 던진 맨몸이다. 더는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장치가 없다. 그래서 어떠한 보호구도 없는 자신의 공간에 재민이 파고든 순간에야 테오는 알았다. 이 모든 건 형을 만나기 위해서였던 거야. 행위의 본질은 본능이다. 재민에게 한 테오의 모든 행위가 본능에서 유래했다. 본능적으로 그를 사랑해서 한 행위를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몰라 헤맸다. 그를 닮은 것들에만 마음이 머물렀다. 사랑이 불어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테오의 안에서 재민이 점점 더 커졌다. 일상에서 재민을 떠올리는 게 아니라, 재민을 떠올리는 게 그의 일상이 되었다. 재민이 없는 곳이 없었다. 행위의 본질은 사랑이었다. 그 말고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까만 밤하늘이었고, 눈을 뗄 수 없던 도로 위 표지판이었으며, 내내 연락을 기다리던 알 수 없는 이름이었으며. 자유니, 연합이니, 자비니 하는 것들은 타오르는 사랑 앞에서는 힘을 잃고 뭉개질 뿐이다. 테오는 까만 잿더미들 사이에서 살아남은 하나의 불씨가 제 안을 서서히 불태우는 것을 본다. 그 불씨를 꺼트리지 않고 전달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 사람처럼 빠르게 뛰었다. “형.” 재민을 붙잡고 그에게 말하기 위해서. “내일이요.” “…어?” “여기 올게요.” 이러려고 한국어를 배웠던 거야. 사랑을 시작한다는 말은 당신의 모국어로 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