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다른 이를 바라보며 살아온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게 되기까지, 첫사랑을 떠나보내고 만나는 두 번째 사랑 이야기 서원영 씨. 그렇게 부르려고 했을 때였다. 날개를 접으며 나뭇가지 위에 앉는 새처럼, 원영의 하얀 손이 테이블 위에 놓인 진녹색 화이트 와인병을 소리 없이 잡았다. 아직 내용물이 남아 있는지 햇빛에 비친 병 속의 찰랑대는 그림자가 현욱에게까지 보였다. 병을 그대로 입가로 가져가더니 고개를 뒤로 기울인다. 그는 현욱의 시야에서 살짝 비낀 각도로 서 있는 데다 앞머리가 흐트러져 있어, 옆모습을 드러냈으면서도 그 표정까지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꿀꺽꿀꺽, 와인으로 병나발을 부는 남자의 목울대가 바쁘게 오르내리는 모양은 얼추 눈에 들어왔다. “하아.” 그는 한참 술을 들이켜다가 한숨을 쉬며 병을 든 손을 내렸다. 급하게 마신 술이 버거웠는지 가쁜 숨을 토하고 콜록콜록, 몇 번 작게 기침까지 하다가 고개를 살짝 숙여 제 발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그 자리에 천천히 주저앉았다. 여전히 술병을 손에 든 채로. 힘없이 허물어져 맨땅에 앉는 남자를, 현욱은 뭐라 말도 걸지 못하고 바라보았다. “흑, 흐윽…….” “…….” “읏, 흐으윽, 으윽, 흐…….” 그리고 이어지는, 화창한 여름 하늘에 어울리지 않는 오뉴월 서리 같은 소리. …뭐야? 지금 설마… 우는 건가?! 피리처럼 서러운 울음소리를 내고 있는 사람은 분명 눈앞에 털썩 주저앉은 원영이었다. 아무 탈 없이 결혼식을 무사히 마쳐 놓고, 뒤늦게 대뜸 흐느끼기 시작하는 남자를 훔쳐보던 현욱은 마른침을 삼켰다. 무슨 사정인지 모르지만 상당히 난감한 상황을 목도하게 되었다. 지금이라도 몰래 뒷걸음질을 쳐 자리를 벗어나야 할 것 같은데, 왠지 발이 쉬이 움직이지 않아 꼼짝 못 하고 우뚝 서 있던 그때였다. “흐윽, 민석아아…….” 울먹이며 그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난처한 기분이 훅 증발되고 뒤통수를 맞은 듯 머릿속이 울렸다. 놀랍고 황당한 감정을 실은 혼잣말이 마치 추임새처럼, 저도 모르게 현욱의 입 밖으로 툭 튀어나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