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사람은 가끔 반대 방향으로 달린다

#서양풍 #판타지물 #회귀물 #사건물 #능글공 #다정공 #능욕공 #황제공 #미인수 #무심수 #상처수 #능력수 #나이차이 #신분차이 #왕족 #수시점 #공시점 #짝사랑 #추리 #감금 “왜 이 얼굴로 암살자 따위나 하고 있어?” 푸줏간 주인이자 암살자인 인레이는 정신이 들 때마다 닭의 목을 자르고 있다. 열두 번째로 잡는 닭이었다. 누군가가 어떤 목적으로 시간을 계속 되돌리고 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것에 말려들고 말았다. 그러나 반쯤 체념한 채 반복하던 일상이 어느 날 크게 변화한다. 평소와 같이 암살을 지시하러 온 스승이자 고용주가 지금까지와 다른 사람을 대상으로 든 것이다. 이제까지와 비교도 안 될 만큼 어려운 대상, 제국의 2황자. 인레이는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받아들이지만 당연하게도 번번이 실패하고 그때마다 시간은 다시 돌아간다. 하지만 죽고 고문당하고 또 죽는 것을 반복하면서도 왜인지 2황자에게 계속해서 마음이 끌리고 마는데……. * * * 가죽과 내장을 밀쳐 두고 칼을 바꿔 들었다. 거의 내 허벅지만 한 크기의 네모난 도축용 칼이다. 흠……. 슬슬 시간이 됐는데. 칼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자 소가 반으로 갈라졌고, 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소가 갈라지면서 트인 시야에 사람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예상하던 바였기 때문에 놀라진 않았다. 턱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며 쳐다보자 그가 피식 웃었다. “놀라지도 않는군.” “놀랐습니다.” 설마 소 뒤에서 나올 줄은 몰랐거든. 이 사람의 등장은 늘 이런 식이다. 열두 번 내내 등장하는 장소가 달랐다. 같은 것은 내가 소를 잡고 있을 때 나타난다는 것뿐. “무슨 일이세요?” 물론 용건은 잘 알고 있지만 예의상 질문했다. “귀여운 인레이, 내가 널 찾아오는 이유가 또 있을까?” “아, 그렇죠.” 그의 이름은 레셀라 에이렌. 사실 나처럼 하찮은 푸줏간 주인은 평생 얼굴 한번 마주칠 일이 없는 귀하신 몸이며, 내게 막대한 부수입을 안겨 주는 사람이다. “하면서도 들을 수 있으니까 말씀하세요.” “집중력이 좋군.” “네, 거기서는 좀 비켜 주시구요.” 굳이 소랑 같이 반으로 잘리고 싶은 거라면 말리진 않겠지만. “이번에는 좀 어려운 일이 될 거야.” “언제는 안 어려웠나요?” “정말로 어려울걸. 왜냐하면 네가 가야 할 곳이 황궁이거든.” 탕! 마지막 칼질과 함께 소의 살덩어리가 완전히 반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뭐라고요?” * * * 2황자는 내 턱을 붙잡고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점점 웃기네. 왜 이 얼굴로 암살자 따위나 하고 있어?” 푸줏간 주인이었다고 하면 너무 놀라서 기절하는 거 아니야? 날 요리조리 보고 있는 2황자를 몹시도 불안하게 쳐다보던 기사가 다가와서 머뭇거렸다. “눈동자 색도 특이하고.” 2황자는 물끄러미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내 눈으로 말하자면 특이하지만 특별하진 않다. 특별한 건 지금 내 앞에 있는 이런 눈일 것이다. 티끌 한 점 없이 깨끗한 녹색 눈동자. 아주 잠깐 침묵이 흐르고 옆에 있던 기사가 조심스레 말했다. “저어, 전하. 설마 이자를 침실로 들이라거나…… 그런 말씀은 안 하실 거죠?” “뭐? 너 소설책을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야?” 2황자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핀잔을 주자 기사는 안도했다. 그렇지, 소설책 중엔 이런 이야기도 많지. 암살자로 들어왔다가 얼굴로 왕, 왕비, 왕녀, 왕자 등등을 꼬드겨 궁에 눌러앉는……. 물론 현실엔 없다. 암살자를 기다리는 건 살벌한 고문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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