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5. 당신이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105/110)


105. 당신이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2022.04.03.


대답을 못 하는 세희에게 강준이 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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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프러포즈만큼은 담백하게 하고 싶었어요.”

그러곤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화려한 이벤트에 자신의 진심이 가려지는 게 싫었다고. 그냥 이렇게 조용히 진심만을 전하고 싶었다고.

그리고 정말 그랬다. 화려한 이벤트가 없는 프러포즈 덕에 강준의 진심만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으니까.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 난다고 했는데. 그게 조금 걱정이 되지만 세희는 웃으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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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후에 빌겠다는 소원이 이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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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프러포즈고 소원은 따로 있는데. 설마 둘 다 들어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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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개도 들어줄 수 있거든요?”

뭐든 말만 해요. 진지한 세희의 눈빛에 강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소원을 지금 빌까 말까 가늠하는 눈빛이었다.

그 눈을 지그시 바라봐주자 강준이 싱겁게 웃으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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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없으면, 내일 혼인신고 먼저 하러 가든지.”

싱거운 미소와 담담한 말투에도 세희는 짙게 느껴졌다.

나처럼 당신의 가슴 안에도 사라지지 않는 좁쌀만 한 불안함이, 내가 또 마음을 바꿀까 봐 어쩔 줄 몰라 하는 그 간절함이.

이젠 자신의 차례였다.

강준의 가슴 안에 꽁꽁 숨어 있는 그 좁쌀을 사라지게 해주고 간절함을 이루어줄 때.

당신에게 확신을 줄 수 있다면, 내 진심을 전할 수 있다면, 뭐든 못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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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별일 없어요.”

수줍게 대답한 세희는 강준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얼굴도 모자라 귀까지 잘생긴 남자에게 달콤하게 속삭여주었다.

당신과 결혼도 하고 혼인신고도 할 거라고. 당신이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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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아침, 유 회장이 영국을 본가로 호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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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회장직은 이만 내려놓고 이노기획 전무 자리 맡아. 이노 계열사 광고만 맡아도 무난히 돌아갈 테니 네가 딱히 뭘 안 해도 될 거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부회장직은 동생에게 넘기고 그저 그런 광고회사, 그것도 사장이 아닌 전무를 맡으라니.

영국은 유 회장 발 아래 무릎 꿇고 싹싹 빌었다. 부회장직 유지는 아니더라도 이노 기획 대표직은 맡아야 체면이 서지 않겠냐고.

하지만 되려 불호령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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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 관리 하나 못 하는 못난 놈이 무슨 회사 대표를 하겠다고 그래! 네 놈 부부 때문에 한신과 사이가 틀어질 뻔한 걸 생각하면 내쫓아도 성이 안 차!’

거친 숨을 씨근덕거리던 유 회장이 컵을 내던질 듯하더니 이내 손을 격하게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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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도 한신가 며느리 때문에 보전해준 거니 그리 알고 썩 나가!’

아버지의 성격을 알기에 영국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와 이틀을 머리 싸매고 고민했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3일 만에 집을 나온 영국이 무작정 향한 곳은 바로 이노패션이었다.

지금 자신에게 유일한 황금 동아줄을 만날 수 있는 곳.

일주일 내내 언론사에서 쏟아내는 기사는 영국마저도 피해갈 수 없었다.

조 여사에 대해 탈탈 털고 나자 다음 타깃은 영국이었다.

과거사가 모두 까발려진 것도 모자라 부회장으로서의 무능함까지 낱낱이 들추어졌다.

그 덕에 영국의 이미지는 추락할 대로 추락한 상태였다.

무책임한 아빠, 뭣 같은 남편, 재활용도 안 되는 인간쓰레기 말종, 무능력한 부회장 등등.

특히 자신의 잘못으로 태어난 딸을 최소한의 책임도 지지 않고 본처가 괴롭힌 것까지 묵인한 영국을 국민들이 죄다 욕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사장실 로비에 앉아 세희를 기다리는 영국을 바라보는 비서들의 눈초리가 곱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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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한테 해준 게 뭐 있다고 뻔뻔하게 여길 찾아왔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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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하니까 그런 몹쓸 짓도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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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장님은 너무 착하다니까? 저런 아빠도 아빠라고 만나주겠다니.”

속닥거리는 건지, 일부러 들으라는 건지. 비서팀이 대놓고 하는 비난이 고스란히 귀에 들렸다.

자존심도 상하고 화도 나지만, 영국은 못 들은 척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눈과 귀가 먼 척 얼마나 로비 소파에 앉아서 기다렸을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드디어 황금 동아줄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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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희야!”

영국을 보고도 세희는 딱히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반기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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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차 두 잔 부탁해요.”

비서팀에게 지시를 내린 세희가 집무실의 문을 열고 영국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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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세요.”

집무실 소파에 앉자마자 초조한 표정으로 영국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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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모가 병원에서도 그런 짓을 할 줄 정말 몰랐다. 너도 알지? 내가 너한테 해될 짓은 절대 안 하는 거.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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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요, 저한테 해될 짓 절대 안 하실 거.”

영국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순간, 세희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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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해될 짓을 당해도 말리는 대신 방관하셨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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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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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유영국 씨 특기잖아요. 방치, 방관, 무관심. 나 몰라라.”

당황한 것도 잠시뿐, 영국은 비굴뻔뻔 모드로 돌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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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희야, 내가 다 잘못했다. 와이프 관리 잘못한 거 백 번 천 번 후회해. 하지만 세희야, 그렇다고 너까지 이 아비를 모른척하면 안 되지. 배 속에 있는 아기가 뭘 보고 배우겠어.”

영국이 회사까지 찾아왔다는 비서팀의 보고에 세희는 기다리게 하라고 했다.

그냥 궁금했다. 유영국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어떤 말을 할지.

하지만 세희의 예상대로 영국은 지난날의 과오에 대한 사과나 반성을 하러 온 게 아니었다.

그저 자기 혼자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사정하러 찾아온 거라니. 이래서 인간말종은 고쳐 쓰는 게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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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제가 뭘 어떻게 해드리길 바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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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염치가 있어서 부회장직까진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체면은 차려야 하니 대표직은 맡아야 하지 않을까? 이노기획 같은 비상장 회사 말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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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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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전체가 내가 니 아비라는 걸 알아. 처음이야 가엽다고 네 편을 들겠지만 그게 언제까지 갈 것 같으냐? 결국엔 너도 그 아비에 그 딸이라고 똑같은 취급당할 거다. 내가 아니라 한신가의 며느리가 될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영국의 뻔뻔함에 웃음이 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참은 세희가 빤히 바라보자, 영국이 얼른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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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네 이모랑은 당장 이혼할 생각이다!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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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하지 마세요.”

더는 뻔뻔함을 보기 싫어서 세희는 차분하게 영국의 말을 가로챘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듯 바라보는 영국에게 세희는 싱긋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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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천생연분이신데, 헤어지시면 절대 안 되죠.”

누구 좋으라고 이혼을 시켜.

지금은 세상에서 서로를 가장 증오하는 부부가 당신들인데.

평생 부부로 살며 죽을 때까지 서로를 향한 증오와 분노를 불태워.

그렇게 평생 불행하게 사는 걸 볼 건데, 내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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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두 분은 부부로 사셔야 해요. 그 대가로 이노 기획 전무 자리도 꿰찬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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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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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회장님 성격에 쓸모없는 아들을 왜 호적에서 파지 않았겠어요? 물론 아내 관리를 또 제대로 못 하면 그 자리도 내놓으셔야 하겠지만.”

굳이 뒷말까지 하지 않았지만, 멍청한 영국도 이번만큼은 제대로 알아들었다. 그 자리라도 유지하고 싶으면 평생 부부로 지내면서 아내 관리 잘하라는 마지막 경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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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해드릴 수 있는 마지막 배려예요. 그러니까 이제 그만 나가주세요.”

소파에서 일어나는 세희의 발 아래 갑자기 영국이 무릎을 꿇었다.

젖은 눈으로 올려다보며 두 손 모아 싹싹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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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희야! 제발 이러지 마라, 응? 몇 번을 말해, 난 널 방치한 게 아니라 하는 수 없이 지켜본 거라고! 내가 널 조금이라도 신경 쓰면 영희가 널 더 괴롭힐 게 뻔한데 내가 널 어떻게 챙기겠냐.”

세희는 영국을 내려다보며 원망하듯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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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는 날 때리지만 않았을 뿐 온갖 방법으로 괴롭혔어요. 그런데도 그냥 두고 보셨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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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말대로 때리진 않았잖니. 너한테 손찌검만 안 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그땐 그게 최선이었어. 그리고 내가 뭘 할 수 있었겠냐. 경제권까지 다 네 이모가 쥐고 있었는데.”

잔뜩 억울한 표정의 영국에게 세희는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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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를 처음 만난 9살 때부터 지금까지, 이모는 만날 때마다 내게 손찌검을 했어요. 조금이라도 날 지켜봤다면 몰랐을 리가 없을 텐데. 정말 절 지켜보시긴 하셨어요?”

세희의 반박에 영국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거짓말을 하려면 똑바로 해야지. 누굴 얼렁뚱땅 속이려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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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 나가주세요. 그리고 다신 찾아오지 마세요.”

털썩,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은 영국이 이젠 막무가내로 버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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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대로 절대 못 간다! 부모가 자식은 외면해도 자식이 부모를 외면하는 법은 없다! 천벌 받을 짓이야!”

그런 영국을 본체만체하며 돌아선 세희는 전화기를 들어 보안팀을 호출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노크 소리와 함께 체격이 건장한 보안요원 두 명이 들어왔다.

싸늘한 시선으로 바닥에 앉아 버티고 있는 영국을 보며 세희는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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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끌고 나가요, 그래도 난동 부리면 경찰 부르고.”

결국 영국은 보안요원들에게 질질 끌려 추방되었다.

집무실이 아닌 세희의 인생에서 영원히.

***

하루를 마무리하는 늦은 밤.

세희는 오늘도 테라스의 벤치에 강준과 나란히 앉아 오늘 있었던 일을 조곤조곤 털어놓았다. 통쾌함 대신 씁쓸함이 남았던 영국과의 마지막 만남을.

늘 그렇듯 강준은 진지한 표정으로 오늘도 조용히 들어주는 역할이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복두장이 외쳤던 대나무 숲처럼.

세희 또한 조용한 걸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데, 언제부터인가 강준에게만은 수다쟁이가 되어 있었다.

늘 다정한 검은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면 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처음엔 매혹적으로 홀리더니, 이젠 마법을 부리는 것처럼 사람을 홀려.

요물은 아무래도 자신이 아닌 강준 같았다. 나도 몰랐던 내 안의 또 다른 주세희를 강준이 자꾸만 끄집어내니까.

수다쟁이 주세희, 어리광쟁이 주세희, 투덜쟁이 주세희를. 어떤 모습이든 사랑스럽게 바라봐주니 어떤 모습인들 보이지 못할까.

늘 그렇지만 날 향한 당신의 사랑은 너무 과해.

하지만 이젠 강준의 그 과한 사랑이 버겁긴커녕 행복한 세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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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이 결혼식 플랜A, 플랜B를 가져왔어요. 둘 중 하나 고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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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가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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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결혼식 장소와 하객 수 차이 정도?”

결론은 화려하냐 더 화려하냐, 성대하냐 더 성대하냐의 미세한 차이였다.

세희가 결정을 내리는 순간, 청첩장을 찍는 것부터 결혼식 준비가 착착 진행될 것이다.

너무 과해서 부담스럽다고 말하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프레가 혼수이니 몸만 오면 된다며 진짜 딸처럼 아껴주는 연숙에게 미안해서. 결혼식 준비를 대신해주던 연숙이 너무 신나 보여서.

그 마음을 읽은 강준이 담담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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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희 씬 플랜A와 B가 둘 다 마음에 안 드나 보네.”

아니라고 시치미를 떼려다가 세희는 그냥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강준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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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너무 과한 것 같아요. 난 아직 무섭고 두렵고 좀 그렇거든요.”

이 세상에 완벽한 건 없다, 그저 완벽에 가까울 뿐이지.

강준이 사태를 완벽에 가깝게 수습했지만 그래도 100%는 아니었다. 대부분이 세희를 응원하지만 욕하는 이들도 아직 꽤 많았다.

쌍둥이 언니의 남편을 사랑하고 아이까지 낳은 여동생.

그 여동생이 낳은 딸이 또 쌍둥이 언니 딸의 남편까지 빼앗았다는 불변의 진실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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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존재가 당신과 프레에게 약점이 되고 치부가 될까 봐 걱정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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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일은 없어요. 설사 있다 해도 내가 그렇게 두지 않을 거고.”

간혹씩 이렇게 세희가 두려워할 때면 강준은 늘 한결같았다.

강준만의 당당함과 오만함을 한껏 장착한 후, 세희에게 믿음을 준다.

날 믿으라고, 내가 너랑 아이를 지켜주겠다고. 네가 원하는 건 뭐든 들어줄 테니, 넌 내 울타리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주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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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간소하고 평범하게 치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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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엔 이미 늦었는걸요.”

이제 와서 말을 바꾸는 건 연숙에게 못 할 짓이었다.

이건 모두 재벌가 중에서도 탑 클래스인 한신가의 스케일을 자신이 간과한 탓이었다.

하객 수만 무려 오천 명에 모든 공중파 방송을 통해 결혼식을 생중계하겠다고 할 줄은 정말 몰랐으니까.

딱 하나, 축의금을 모두 기부하겠다는 것만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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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늦었다고 생각해요?”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은 강준의 말에 세희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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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어머니한테 결혼식 준비 다 뒤집으라고 할 생각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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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뭐 어때서.”

무슨 상관이냐는 듯 강준이 태연하게 대답하자 세희는 기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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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지 마요. 그럼 저 진짜 어머니 못 봐요. 은혜를 원수로 갚는 거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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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기분 조금도 상하지 않게 결혼식 뒤집겠다고 약속할게요.”

도대체 어떻게요?

눈빛으로 묻는 세희의 반듯한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춘 강준이 웃음기 어린 음성으로 속삭였다.

우리에겐 프레라는 프리패스 방패가 있는데 뭘 걱정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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