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에는 명백한 갑과 을이 존재한다.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기획사로 손꼽히는 딜라이트의 대표 김우겸이 갑이라면, 오직 여친짤만이 생성되어 돌아다니는 무명의 신인 배우 이은재는 을이다. 그마저도 조건이 맞아야 생성될 수 있다는 갑을관계가 덜컥, 아주 우연한 기회로 맺어졌다! “전 스폰서도 없고 빽도 없어요. 그래도 딜라이트 덕분에 G사 원피스를 다 입어 봤네요. 감사합니다.” 은재는 작은 손으로 눈가를 닦아냈다. 화장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거침없는 손길에 곧게 뻗은 아이라인이 제멋대로 번졌다. 어차피 제가 망쳐버린 광고 촬영이 더 이상 진행될 리 만무했다. 우겸이 의도적으로 발소리를 냈다. 명품이 분명한 고가의 구두가 그의 구둣발 한 번에 예리한 스크래치를 끌어안게 됐다. 하지만 우겸은 태연했다. 윤기가 흐르는 검은 타이를 단 번에 풀어 낸 뒤, 그것을 깃 사이로 가뿐하게 빼냈다. 그리곤 느릿하게 시선을 올려 은재에게 되물었다. “스폰서도 없고 빽도 없다고?” 땅 끝까지 파고들 것처럼 아래를 향하고 있던 은재의 시선이 천천히 위로 올라왔다. 우겸과 눈이 마주쳤고, 그는 아주 명쾌하게 덧붙여 말했다. “그럼 그 스폰서, 그 빽 내가 해주죠.” 우겸은 아주 위험하고 은밀한 제안을 건네는 악마처럼 웃으며 종지부를 찍었다. “지금 있는 소속사 계약서 가지고 와요. 위약금이 얼마든 다 물고 데려와줄 테니까.” 단 한 번도 부끄러운 행동을 하고 산 적이 없었기에, 그랬기에 은재는 우겸의 손을 잡았다. 어쩌면 스폰서보다도 더 위험한 불장난 같은 관계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