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읽었던 로판 속 남주 에반의 소꿉친구 '리에트'라는 인물에 빙의해버렸다.
문제는 원작 여주가 나타나면, 리에트는 에반에게 환승이별 당하고 헌신짝처럼 버려진다는 것이다.
'에반, 이 나쁜 놈.'
남주와 사랑에 빠지면 비참해진다는 결말을 알고 있다 보니, 에반과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앙숙이자 라이벌이 되어 있었다.
결국 예상했던 것처럼 여주가 등장했고, 이제 이 지겨운 관계도 끝일 줄 알았는데…….
음모에 휘말려 망명 온 곳에서 우연히 에반을 만났다.
"참 우리 인연도 질기다. 그치, 에반?"
"질기지."
"서로 으르렁거리는 거, 너도 지긋지긋했을 거야."
"응, 지겨워."
"그러니까 이제 그만 끝내자, 이런 인연."
"아니."
또다시 '응'이라고 할 줄 알았던 에반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왠지 오늘따라 에반의 눈동자가 처연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너는…….”
“…….”
“정말 오늘 우리가 우연히 만났다고 생각하는 거야?”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