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룡산을 지키기 위해 하늘로 올라온 산신령 산영은 실수로 주인이 있는 과실을 따 먹고 만다. 호랑이 세 마리를 부려도 거뜬한 신력이 차올라 놀라는데. 옆에 서 있는 아름다운 사내가 나무를 지키는 이인가 보았다. "내가 갚습니다. 백 년이 걸려도 천 년이 걸려도 갚을 터이니 몹쓸 생각은 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나무 지기 사내와 하늘 나들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름을 잊어먹었다던 사내에게 이름도 지어주었다. 내리는 빗줄기처럼 잔잔하던 사내의 얼굴에 금이 갔다. “기쁘게 사례해 드리겠다는 뜻으로… 희, 사. 희사 어른? 희사 님?” 첫만남부터 표정이랄 게 없는 사내는 산영을 미워하는 건지, 싫지는 않은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의 감정을 헤아리기도 전에 입술이 초근초근한 무언가와 부딪혔다. “이게, 이것이 무슨…….” “싫어?” 싫을 리가. 희사 님과 맞붙어 있는 가슴께로 심장이 펄떡 뛰었다. 산영의 마음은 변덕스러운 소낙비처럼 설레다가도 이따금 제 주제를 알라는 듯 따끔거렸다. 땅으로 떨어지려는 빗줄기 같은 여인과 하늘 위 하늘에 사는 한 사내의 이야기, <술래의 눈이 먼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