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백송의 꽃말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및 지명, 배경과 사건은 모두 실제와 무관함을 밝힙니다. 상주 목을 주름잡는 최 대감 댁의 장남이지만 호로자여서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하고, 인적 없는 별당에서 노비보다 못한 삶을 사는 연호. 그의 소원은 단 하나, 몰래 도망쳐서 아무도 그를 모르는 곳에서 농사지으며 사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 내고 있던 연호의 앞에 상주 목에 새로 온 수령 김재한이 나타난다. 그리고 재한은 난생처음으로 연호에게 따스함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다. “저를 소인배로 만들지 않으면서 불편하지 않게 만들 방법이 있긴 한데, 그러면 영랑께서 이 사람을 도와주셔야 합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물, 물론 괜찮습니다! 제가 어찌해야 합니까?” “영랑의 파정을 도와드렸던 것처럼 영랑께서도 저를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춥고 또 춥기만 하던 연호의 인생에 처음 찾아온 따스함. 잠시 자신을 덥혀 줄 뿐인 따뜻함에 이리 쉽게 적응하면 안 되지만, 그래도 그 온기를 잃고 싶지 않았기에. 연호는 재한이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 달빛이 스민 얼굴이 재한을 향했다. “사또께서는…, 감을 좋아하십니까?” “좋아합니다, 아주.” “저희 상주 목은 감이 유명합니다. 말라비틀어진 나무를 보고도 감나무라는 것을 아신 걸 보니 감을 좋아하시는 듯싶어….” 눈앞의 미남자가 빙긋이 웃었다. “영랑의 나무에 과실이 열리면 먹으러 와도 됩니까?” “드리고 싶지만, 저 나무는 과실을 맺지 못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래요? 참 아쉽군요. 여기서 감을 먹으면 한양의 사가에서 먹는 맛일 것 같은데….” 잠시 생각을 하던 재한이 묘수를 떠올린 듯 명랑하게 말했다. “그러면 다음에 제가 감을 가지고 올 테니 여기서 함께 먹으면 되겠군요.” 연호는 당황했다. 제 별당은 누군가가 오는 곳이 아니다. 그가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에 대해 모르는 게 분명했다. 호로자라는 소문을 듣게 되면 다른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 보이는 약간의 호기심도 거둘 것이다. “네, 언제든 오셔도 좋습니다.” 연호가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그는 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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