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당신 것도! 아니면서!!” 감당하기 힘든 비밀을 지고 일생을 불행하게 산 휘서는 그것으로부터의 해방을 목전에 두고 다른 사건에 얽혀 미국으로 납치를 당하고 만다. 휘서를 납치한 사람은 세계 권력의 최중심에 있는 무운. 한국인이라는 동질감과 도도하지만 처연한 휘서의 분위기에 동한 무운은 그에게 비밀을 대가로 새로운 제안을 하고, 비밀을 위해서라면 하찮은 목숨 따위는 버려도 상관없었던 휘서는 무운이 제시하는 불공평한 협상을 받아들인다. 지키는 휘서와 가져야만 하는 무운. 시작은 분명했으나 둘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이 그 지반을 세차게 흔든다. *** “잠, 잠시! 저기, 잠, 잠시만!” 자신에 비해 확연히 굵은 손가락 하나가 뒤를 비집고 들어오려고 하자 휘서는 경기를 일으키며 몸부림을 쳤다. “제발, 제발, 무서워요. 무섭단 말이에요…….” 결국 참지 못한 눈물이 방울져 떨어졌다. 극한의 공포였다. 몇 년이 흘렀어도 느낌이 생생했다. 성기를 억지로 만져 절정에 이르는 거 말고는 고통밖에 없었다. 그때의 기억에 잠식당한 휘서는 팔을 무운의 목에 두르며 애원했다. “상, 상냥하게 대해 주세요. 주제 넘는 건 알지만, 그래도, 피하지 않을 테니까.” 자존심 같은 건 생각나지도 않았다. “조금만, 조금만, 상냥하게 대해 주세요……, 제발…….” “윤휘서.” 휘서는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며 몸을 일으켰다. “……네.” 치켜뜬 눈으로 앙칼지게 소리칠 때는 언제고 바로 고분고분해지자 무운은 퍽 만족스러웠다. “성공하면.” 톡, 톡, 톡. 무운의 손가락이 다시 작은 소음을 일으켰다. “돌려줄게, 네 것. 네가 그렇게 지키고 싶어 하는 그 두 장.” 휘서는 눈을 질끈 감았다. 원하는 답이었다. 아주 다행스런 결과였다. 이로써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택해야 할 것을 결국 지켜 냈다. 다만 지금까지는 자신도 어떻게든 살아 보려 아등바등했다면, 오늘로써 죽음은 필연이 되었다. 휘서는 가끔 제 존재 가치의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무엇을 위해 삶을 사는가. 무엇을 위해 끝없이 움직이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 굳이 살아 있는가. 오늘따라 유독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이 머리를 스쳤다. 모든 것은 비밀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