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기로 소문난 북쪽 귈러 공국의 대공과 결혼이 결정된 날. 에스텔은 절규했다. “싫어! 난 첫사랑도 아직이란 말이야!” 무뚝뚝하고 딱딱한데다 보수적이라는 북부 남자들. 심지어 결혼 상대인 귈러 대공은 성격도 차갑고 싸늘하며 피 없이는 못 산다는 무서운 남자다. 추운 건 싫어! 무서운 건 더 싫어! 하지만 그렇다고 이미 정해진 결혼을 무를 순 없는 일이었다. 결국 무서운 북부 대공과 결혼하기 위한 준비를 꾸역꾸역 억지로 하던 어느 날, 에스텔은 햇살같이 따뜻하고 다정한 미남을 만났다. 잘생긴 얼굴, 서글서글한 성격. 남부의 햇볕이 진하게 키스한 듯 갈색으로 태운 피부. 낭만이라는 단어가 사람이 된다면 이런 얼굴일 것이다. ‘이런 남자와 결혼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남자와 헤어진 후에는 또 얼굴도 모르는, 무서운 대공의 부인이 되기 위한 결혼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때마침 그녀를 보고 있던 남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남자는 다정한 까만 눈으로 그녀를 향해 장난스레 웃어 보였다. 화들짝 놀란 에스텔은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숙였다. 황급히 그에게 질문할 거리가 없나, 머릿속을 뒤지다 생각난 것을 빠르게 끄집어냈다. “그러고 보니 수도에는 어쩐 일로 오셨어요?” 그는 잠시 입을 닫고 볼을 살짝 부풀렸다. 웃음을 참는 듯했다. “곧 결혼해서요. 제 아내가 될 분에게 드릴 반지를 사러 왔습니다.” 왜일까. 별것도 아닌 그 말에 뎅, 하고 뭔가에 머리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