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비, 현우(玄雨)......! 그가 온다. 죽어야 할 사람에겐 언제나 그가 방문한다. 염라대왕의 명부에 등재되면 어김없이 죽어야 하듯 현우가 오면 누구나 죽는다. 최고의 무벌살수인 그의 목적은 언제나 하나다.
- 잘 가게!
아름대운 삶을 살 수만 있다면 모든 걸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 사나이. 과연 그렇게 살 수 있을까? 해답을 찾기 위해 오늘도 죽어야 할 자들을 향해 진혼가를 부른다.
<맛보기>
* 서장(序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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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나 신화, 혹은 고사(古史) 등 인간사가 엮어지면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개중에는 더러 황당무계한 것도 있기는 하지만 사서(史書)에 기록이 될 정도로 사실적인 이야기도 다수 있다. 무맥혈책(武脈血冊). 기실 이런 이름의 책자가 있다는 것은 사람들 대부분이 알지도 못한다. 그 책은 극히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읽혀져 왔으며 사본(寫本)도 없이 단권(單卷)으로 전해지고 있다. 어쨌든 무맥혈책을 펼쳐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 하늘아래 가장 강한 기운을 양(陽)이라 하며 가장 부드러운 기운을 음(陰)이라 한다. 그 둘은 서로 부딪치며 얽히고, 때로는 도와가며 우주만물(宇宙萬物)을 창조했다. 인간 중에서는 양기(陽氣)를 남자라 하며 음기(陰氣)를 여자라 일컫는다.>
대략 그와 같은 내용을 서두로 하는 무맥혈책에는 심상치 않은 예시(豫示)가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장차의 무림뿐만 아니라 천하 억조창생의 안녕에 대한 우려의 표명이었다.
<...... 본시 음과 양은 우주를 창조하신 대천신(大天神)의 양 팔이되, 그 둘은 상상을 절하는 무서운 힘을 지녔다. 즉 대천신의 의도에 의해 각각 그 기운을 나눈 것이라고 보면 되는데 한 가지 염려스러운 바는 만에 하나라도 그 두 가지 기운을 동시에 타고 태어나는 인간이 있다면 그는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다행히도 그러한 예는 이제까지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지만 혹여 그런 경우가 있다면.......>
무맥혈책을 누가 저술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또한 기저에 깔린 의도도 알 수 없는 가운데 가정은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 예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맥(脈)이 하나 있으니 그것을 일러 혈왕맥(血王脈)이라 한다. 대저 인간은 하나의 기운을 타고 나게 되어 있고 설혹 두 가지 기운을 함께 소지하고 있다 해도 힘의 배분상 어차피 하나의 힘을 위주로 살아가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천지간의 유일무이한 부류로서 혈왕맥을 타고 난 인간은 난세(亂世)를 평정할 대영웅(大英雄)이나 제왕(帝王)의 운명을 지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