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미등록자

임해언은 사물을 자를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커터(cutter)이나, 능력을 신고하지 않은 ‘미등록자’ 신분으로 세상의 사각지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홀로 부양하며 힘겹게 대학을 다니던 중 한 문화 재단으로부터 자신이 지원한 적 없는 장학생 자리에 선발되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의구심보다 궁핍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간절함이 앞서 장학금 수여식에 참석한 해언은 그곳에서 만난 하명현 대표로부터 뜻밖의 위험한 제안을 듣게 되고, ‘임해언 씨를 읽었습니다.’ ‘힘으로 장난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합니까.’ ‘사람을 한 명 죽이고 싶습니다.’ 죽음과 고독보다 돈이 더 두려워진 순간 마침내 결심을 내린 해언은 지난 삶의 그림자를 하나씩 벗어던지며 하명현 대표에게 이끌리게 되는데…. *** “무릎 꿇으세요.” “대표님….” 피부가 모두 심장이 된 듯 두근거렸다. 경험은 없지만 나도 나이가 있는데 그가 무슨 일을 하려는지 눈치를 못 챌 만큼 어리숙하진 않았다. 무릎을 꿇으라는 명령을 단번에 거절해야 했는데, 그가 준 많은 것들이 떠올라 주춤하고 말았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내 머리카락을 움켜쥔 뒤 침대 아래로 끌어내렸고, 나는 바닥에 떨리는 무릎을 댔다. “대표님, 저는 이런 것까지는 생각을….” “임해언 씨.” 하명현 이사는 침대에 앉으며 내 말을 잘랐다. 그는 허리를 숙여 무릎을 꿇고 있는 내 얼굴을 쥐어 잡고 자신을 올려다보게 만들었다. 안 그래도 나보다 훨씬 키가 큰 사람인데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고, 그는 높이가 있는 침대에 앉아 있어서 더 위압적으로 보였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임해언 씨는 분명히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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