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무제

내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말아야겠다.
사랑이라고 하면 자괴가 따라붙고, 증오라기엔 안타까우니 결국 나만 피곤하지 않나.

***

지율은 어머니의 자살 후 생기를 잃고 집에 틀어박혀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새로운 정원사 차선태가 그녀의 집 마당에 발을 들이기 전까지는.

“그 오빠가 안 내키면 이 오빠는 어때?”

그는 가볍고 유쾌하게 지율의 시선을 빼앗고, 일상을 흔들어 오는데….

***

“근데 왜 그런 말 했어?”
“…….”
“아무리 생각해도 의도를 모르겠어.”

잠시간 말없이 나를 응시하던 그가 머리를 대강 털었다. 이마에 붙은 앞머리가 뒤로 불규칙하게 넘어갔다.

“까놓고 말해 줘?”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의미의 호기심 충족을 원했다.

“너 꼴린 거 보고 나도 꼴렸어.”
“…뭐?”
“볼 때마다 새침하게 있던 애가 그런 얼굴 하니까 궁금하잖아.”
“…….”
“제대로 자극하면 어떻게 될지.”

기대 이상으로 다 까놓은 날것의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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