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가 즐비한 무덤가 소나무 숲에 산다 하여, 도래솔이라 부른다. 벙어리 부모 아래서 태어나 말하는 법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어린 솔. 먼저 손을 내민 스승 연아정과 함께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던 어느 날, 이상하리만치 컴컴한 동굴 속으로 굴러떨어진다. 한 줌의 빛도 들지 않는 곳. 어둡기만 한 암흑 속에서 번득인 짐승의 눈. “그 입에 재갈이라도 물리면 조용해질까?” 선인을 연상시키는 새하얀 머리칼과 푸른 눈동자. 사내는 자신을 묘, 라 소개한다. 스승의 오랜 친구라는 신비로운 그의 체온에 기대어 저를 찾는 이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사이, 그들은 어느덧 서로의 곁에 머무르기를 바라게 되는데……. * 묘는 서슴없이 도래솔을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꽤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할 말 있어.” 평소와는 조금 다른 목소리였다. 아주 약간 더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그는 진지한 얼굴로 도래솔을 향해 말했다. 천천히 아주 신중하게. 꾹꾹 눌러 말하는 목소리가 도래솔의 신경을 잡아챘다. “한 번, 단 한 번만 용서해. 아주 큰 잘못이라도 단 한 번만 용서하겠다고 약속해.” 묘한 기분에 도래솔은 고개를 들어 묘를 쳐다보았다. 푸른 눈이 도래솔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