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존재조차 될 수 없다면,
차라리 아무것도 아닌 편이 나았다.
내 곁에 있으면서도 쉽게 다른 생각에 빠지고,
무슨 말을 해도 그저 공허한 눈길만 던지고 마는 그녀.
그럼에도 이미 내 머릿속에 얽혀 들어온,
자꾸만 신경 쓰이는 ‘아내’라는 이름의 타인.
밥을 먹고 TV를 보는 것처럼,
그녀의 완벽한 무관심과
건조하기 그지없는 무심한 시선을
별스럽지 않게 받아들이려고 했고,
그렇게 되어 가는 듯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실상, 그 메마른 허무함에 질식된 나의 내면은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비틀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뒤틀림은 점차 위험한 열熱로 변모해 갔다.
금세 형체를 갖춰 버린 열기.
마침내 그 뜨거움이 온몸을 관통하는 순간,
태연을 가장하고 있던 내 비겁한 욕망이 껍질을 벗고
제 본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지막 남은 이성마저 전부 놓아 버렸던 바로 그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