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도서의 경우, 호불호가 나뉘는 내용(강압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소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용에 참고 부탁드립니다. 부상을 입고 절벽에서 추락한 기사를 구한 스완. 그러나 눈을 뜬 그는 기억을 잃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마을과 떨어져 오랫동안 혼자 살아온 스완은 조금씩 그를 사랑하게 되고 어느 날 욕정에 사로잡힌 그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시간이 흘러 스완은 아이를 갖게 되고 그의 정체 또한 드러나게 되는데…. *** “저, 저를 버리신 줄 알고….” 그녀를 내려다보는 시선이 납처럼 차가웠다. “들어가십시오. 빗물이 차갑습니다.” 한참 만에 그의 입술이 떨어졌다. 그를 사랑하는 게 불행처럼 여겨졌다. 어쩌면 그녀의 생에 찾아든 불행 중 가장 큰 불행일지도 몰랐다. “이, 임신한 거 같아요.” 뭉쳐 구겨 놓았던 고백이 터져 나왔다. 그를 바라보고 말할 수 없어서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다, 달거리를 하지 않, 않은 지 오래돼서…. 아기를 가진 거 같은데….” 두서없이 주절거리는 속삭임이 너저분했다.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완은 섧게 눈 밑을 닦으며 그의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아, 아내로 맞아 주세요. 흐윽, 흐으으흑….” 스완이 대답 없는 남자의 손을 잡았다. 버리지 말아 달라는 구걸을 듣는 남자의 얼굴은 여느 때와 같았다. 스완은 감각 없는 남자의 목을 안고 정신없이 반복했다. “제발, 제발 좋은 아내가 될 테니까. 무엇이든지 할 테니까….”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그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기다란 팔이 그녀를 안는 일도 없었다. *** “테오도르와 혼인했나? 짐과 한 것처럼.” 황제가 담배 연기를 뿜었다. 발끝이 저릴 정도로 시린 감각이 스완을 덮쳤다. 일러스트: 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