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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290화 (291/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90화

조한율은 다리를 달달 떨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서 양태원이 그걸 보고 한마디 던졌다.

“누나, 그렇게 다리 떨면 복 나가요.”

“네가 이야기하니까 정말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농담이 아니니까요. 다리 한 번 떨 때마다 복권 5등 당첨될 운이 무효로 사라진다고요.”

“지금 그깟 5000원짜리 당첨 운이 문제가 아니야!”

시스템이 열린 후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갑부가 된 조한율은 5000원 따위의 복을 잃은 것에 굴하지 않고, 여전히 다리를 달달 떨었다.

순식간에 오십만 원쯤 되는 운이 사라졌지만 그런 건 알 바 아니었다.

“연락이 끊긴 지 벌써 일주일도 넘었다고.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예나 씨…….”

그랬다.

강예나는 약 일주일 전, 타르토스로 가서 던전을 공략하다 클리어에 실패했다.

하지만 본래대로라면 클리어에 실패하더라도 현재는 대한민국 소속 플레이어이니만큼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저쪽의 운영자가 강예나를 차원의 틈새 속으로 밀어 버렸다는 것.

그렇게 되니 한국으로 돌아오기는커녕, 한국 운영자인 조한율이 아무리 메시지를 보내고 권리를 행사해 보아도 그것이 유효하기는커녕 연락조차 되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게 강예나가 실종된 지 이미 일주일이 넘어가고 있었다.

조한율은 이미 피가 나기 시작한 손톱을 한 번 더 물어뜯었다.

“예나 씨, 이대로 영원히 차원의 틈새 속에서 미아가 되면 어떡하지?”

아직 미숙한 운영자에 속했지만 그렇더라도 조한율 또한 세계 간에 존재하는 틈새가 어떤 곳인지는 알고 있었다.

인간이 맨몸으로 던져져서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심지어 시간조차 절대적인 개념이 아닌 공간인 것이다.

“근데 괜찮대요, 예나 누나.”

그런 조한율에 비해, 양태원 쪽은 태평한 편이었다.

양태원은 상처에 붙이는 밴드를 건네며 조한율을 위로했다.

“제 점 결과 보셨잖아요.”

그랬다.

강예나가 실종된 후 연락이 닿지 않자 조한율은 고민 끝에 양태원에게 연락했다.

양태원은 현재 시점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무당인 데다 강예나와도 친분이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양태원은 강예나가 던전 클리어 중에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주도에서 날 듯이 달려왔고, 그 후 정식으로 제를 올려 강예나의 운명을 점쳤다.

그 결과.

“넉넉잡아 이번 달 안에는 돌아온다고 했어요.”

다행히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시간은 조금 걸리지만 결국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점이 나온 것이다.

그 덕에 조한율과 달리 양태원은 제법 태평하게 지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 자신의 몸을 칭칭 감아 보호하듯 안고 있는 청룡이 느긋하니 낮잠을 즐기고 있기도 했고.

‘청룡 님은 예나 누나를 꽤 아끼시니까…….’

만약 정말로 위급한 상황이라면 청룡이 저렇게 평온할 리가 없는 것이다.

다만 양태원과는 달리 청룡이 보이지 않는 조한율은 점 결과를 듣고도 안심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사지 멀쩡할지는 모른다면서?!”

그건 그랬다.

양태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으음, 근데 예나 누나니까요.”

강예나는 던전에 들어가기만 하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하기 일쑤였다. 아무래도 검을 쓰는 물공 타입인 데다 다른 이들을 지키려고 앞장서는 편이라 어쩔 수가 없다.

멸망한 서울 던전 공략 때도 심장 한복판이 꿰뚫리지 않았던가.

그런 성격을 감안했을 때 사지가 멀쩡한 것까지 바라면 과욕이라며 청룡 님이 꼬리로 때릴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완전 만신창이가 된 상태면 어떻게 하지? 도울 방법도 없는데!”

조한율은 급기야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강예나가 따로 설명해 주지는 않았지만 조한율 또한 계속 던전 공략을 지켜보고 있었던 만큼, 상황이 어떻게 굴러갔는지는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아리아드네라고 불렀던 여자가 강예나를 차원의 틈새로 밀어 버렸을 때.

강예나는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하지 않았다.

평소의 강예나라면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행동.

그것이야말로 아리아드네와 강예나와 친밀한 사이였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강예나는 배신당한 거고.

그러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사지가 멀쩡할지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도 정신이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강예나쯤 되는 사람이면 육체적인 손상보다도 정신적인 상처가 더 무서운 법이다.

강예나의 클래스는 용사.

그 불굴의 의지를 진정한 힘으로 활용하는 사람이니까.

“그래도 그 와중에 할 일은 다 하시네요, 누나.”

머리를 쥐어뜯으면서도 모니터링을 멈추지 않고 있는 조한율에게 양태원이 약간 감탄하며 말했다.

조한율은 괴로워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당연하지.”

이번에 양태원을 소환하면서 조한율은 자신이 운영자라는 것을 밝혔더랬다.

앞으로 통합 서버가 될 것에 대비해 믿을 만한 플레이어들에게는 정보 공유를 하는 편이 좋을 것이라는 판단하에서였다.

그런 의미에서 양태원이라는 플레이어는 무당이라는 특수 클래스에, 능력치의 성장세도 좋고, 무엇보다 강예나와 이우연과 친한 사이라는 것이 장점이었다.

주위에 사람 두는 것으로는 까다롭기 그지없는 두 사람이 곁에 두는 아이 아닌가.

인격적으로는 이미 합격점이다.

심지어 강예나가 백록담에서 손에 넣은 청동검을 넘겨주기까지 했으니 신뢰해도 나쁘지 않으리라.

나이가 어린 것이 흠이라면 흠이지만, 차세대를 키운다는 목적에서라면 더욱더 나쁠 게 없고.

“할 일은 해야지, 뭐.”

그리고 조한율은 차세대의 에이스에게 직장인의 괴로움을 설파했다.

직장인이란 그렇다.

드라마 속에서야 실연 한 번에 울면서 일주일은 침대 속에 처박힐 수 있지만, 현실의 직장인은 실연을 하건 친구가 걱정되건 울면서도 지하철에 몸을 싣고 출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조한율도 별다를 바가 없었다.

강예나를 걱정하는 것과 별개로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을 게을리할 수는 없었다. 심지어 자신의 어깨에는 월급이 아니라 오천만쯤 되는 국민의 목숨이 걸려 있었으니.

그렇게 생각하던 조한율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근데 난 정년이 언제지?”

죽어야 운영자 자리를 넘길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어라?

이필연 : 야, 조한율. 집중하고 있는 거 맞아?

그때 잠깐 딴청을 피운 것이 발각되었는지 조한율에게만 보이는 모니터 속에서 이우연이 불퉁하게 쏘아 댔다.

조한율도 짜증이 나서 키보드를 두드렸다.

조한율 : 아, 한다고. 하고 있다고. 너나 집중해.

이필연 : 웃기고 있네. 지금 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 내가 집중을 안 하고 있을 것 같아?

그건 그랬다.

현재 이우연은 강예나의 동료 자격으로 마지막 ‘운명의 씨앗’ 이 걸린 던전에 도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상이 보상인지라 강예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기도 했지만, 한국 플레이어들이 폭렙을 할 기회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아쉽게 파티에 참가하지 못한 양태원이 입술을 삐죽였다.

“에잉, 나도 참가하면 좋았을 텐데.”

“어쩔 수 없어. 이번에 넌 참석 안 하는 게 나았으니까.”

이번 공략에 참가한 파티원들은 모두 안정적인 고정 멤버였다.

이우연부터 시작해서 김숙자, 이선, 류세연이나 김성연 같은 인물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 라고는 하지만.’

지난번에 돌입했던, 멸망한 서울을 배경으로 한 던전에서 유망한 랭커들을 한꺼번에 잃을 뻔했던지라 조심에 조심을 더하는 게 맞긴 했다.

그럼에도 저들을 동시에 투입한 이유는.

- 이필연 : 진짜 내가 눈앞에 있는 것 같아 기분 더러운데!

‘거울 속의 그림자’라는 이명을 가진 몬스터, 도플갱어가 등장한다는 분석이 나와서다.

“이거 진짜 좋은 단련 기회란 말이지.”

도플갱어는 상대방의 그림자에 숨어들어 능력치를 복제하는 특이한 몬스터였다.

즉 관점에 따라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스파링 상대였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자기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만큼 더욱 그랬다.

놓치기에는 아까운 기회이기에 아끼던 랭커들을 모두 투입한다는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

그런 조한율의 결정에 이우연 또한 동의했다.

“강예나가 돌아왔을 때 선물 하나는 준비해 둬야지.”

그게 이별 선물에 가깝다는 것을 모를 녀석도 아닌데, 저렇게 보면 이우연도 어울리지 않게 참 순정이다.

이필연 : 근데 류세연은 왜 끼워 넣었어? 김성연이랑 부딪치면 나만 귀찮잖아. 마법사는 굳이 필요도 없는데.

조한율 : 레벨 조금만 더 올라가면 진언을 깨우칠 수도 있잖아. 진언 마법사 한 명만 늘리면 얼마나 편하겠어!

이필연 : 글쎄, 성질이 급해서 진언이고 뭐고 몬스터만 보면 공격 마법부터 날리는데 깨달음을 얻을 수는 있으려나…….

아주 냉철한 평가였다.

“카하하학! 죽어라!”

그렇지 않아도 모니터 속에서 몬스터를 발견한 류세연이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그리고 류세연의 능력치를 복제한 몬스터도 마찬가지로 사방에 공격 마법을 난사하고 있었고.

저러다 던전을 클리어하기 전에 그냥 던전이 망가질 판이었다.

“…….”

얄미운 것이랑은 별개로 이우연이 사람을 잘 보는 것은 인정하고 있었기에 조한율도 그냥 한숨을 내쉬었다.

뭐, 모든 게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었다.

게임도 아니고 현실 사람인 플레이어들의 육성이 쉬울 리가 있겠는가.

‘어찌 됐든 빨리 한국 플레이어들의 실력을 키워야 해.’

지난번에 멸망한 서울의 모습을 보았을 때도 그렇고, 운영자 입장에서는 앞으로 한국이 맞이할 미래를 생각하면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번 해에 검사 클래스를 지원하는 플레이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름만이 밝혀졌을 뿐 여전히 신비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랭킹 1위 플레이어 덕분이었다.

강예나와 타국의 검사 플레이어를 비교하는 영상은 여전히 인기 있는 콘텐츠였고.

그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검사 붐이 일어난 것에 더해, 이번에 조한율이 새로 만들어 낸 검사 클래스 훈련용 VR에 랭킹 1위께서 참여하셨다는 사실이 화룡점정을 찍었다.

정부가 운영하는 헌터 아카데미 검사과 경쟁률이 개교 이래 처음으로 100:1을 돌파했을 때, 조한율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래서 선례가 될 롤 모델이 중요하다는 거지.’

물론 이후에 강예나만큼 성장할 플레이어가 나올지는 미지수이기는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안심한 것도 잠시, 조한율은 강예나 걱정에 다시 손톱을 깨물기 시작했다.

‘진짜 괜찮을까, 예나 씨.’

사감을 빼놓고 생각하더라도 강예나는 조한율이 손에 쥐고 있는 조커라고 할 법한 존재였다.

이제껏 강예나가 해결해 준 한국의 위기가 몇 번이던가.

그리고 만일 강예나가 나서 준다면, 앞으로도 해결하지 못할 위기는 없겠지만…….

‘아니, 이대로는 안 돼.’

조한율은 자꾸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아무리 강예나가 강하다고는 해도 언제까지고 강예나 한 사람에게만 의지할 수는 없다. 언젠가는 다른 세계로 떠날 사람이라서가 아니었다.

만일 강예나가 한국에 계속 머무른다고 하더라도 조한율은 같은 초조함을 느꼈을 것이다.

‘어느 한 사람에게만 의지해서 굴러가는 세계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운영자라는 중압감을 홀로 견디고 있는 조한율이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기도 했다.

단 한 사람이 세상의 명운을 짊어져서는 안 된다.

당장 자신만 해도 이러니저러니 아옹다옹하지만 모든 사정을 알고 서로 협력하는 이우연과 짐을 나눠 지고 있기에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운영자라는 정체를 모르더라도 조한율의 대의를 이해하고 함께하는 ‘선율공방’의 길드원들과, 위험한 몬스터가 나타나면 발 벗고 나서는 플레이어들까지.

그 모든 이들이 이 대한민국이라는 세계를 받치는 기둥이었다.

그래서 조한율은 강예나의 짐 또한 그렇게 덜어 주고 싶었다.

혼자 힘내지 않아도 괜찮다고.

만일 돌아왔을 때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괜찮다고.

설령 어딘가 다른 세계로 떠나게 되더라도 안심하라고.

당신을 도울 사람들이 여기에 있으니까…….

파직!

파지직!

그때였다.

조한율이 보고 있던 모니터 안에서 거대한 스파크가 일었다.

조한율은 화들짝 놀라며 키보드에서 손을 떼어 냈다.

“이건 뭐야?!”

혹시라도 던전 안에 들어간 플레이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싶어 놀라 모니터 안을 들여다보려고 했을 때였다.

“악!”

갑작스레 머리에 두통이 엄습했다.

“누나, 괜찮아요?!”

옆에 있던 양태원이 기겁하며 달려와 부축했지만 그걸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게 뭐야?”

머릿속에 기억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잊혔던, 아니, 자신이 잊은 줄도 몰랐던 몇 년 전의 기억이었다.

- ‘기억의 오류’ 제거까지 필요한 조건을 모두 충족하였습니다.

- 모든 플레이어의 ‘기억의 오류’ 가 수정됩니다.

그 메시지와 함께 어떤 풍경이 떠올랐다.

맨 처음 시스템이 열렸을 때의 일산 호수 공원.

호수에 나타났던 괴물.

절망적으로만 보였던 상황.

그런데, 그 괴물을 향해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두른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조한율은 그 사람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조한율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아니, 내가 이걸 왜 잊고 있었지……?”

그리고 그런 조한율을 지켜보던 양태원도 눈살을 찌푸렸다.

혼백을 보는 귀안(鬼眼)에 기이한 것이 잡혔기 때문이다.

“인연의 실들이 갑자기 이렇게…… 왜죠?”

세상에 얽혀 있던, 사람 간의 연.

그것이 갑자기 복잡하고, 더욱 단단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이상한 것은…….

“이우연한테 얽힌…… 저건 뭐지?”

보통 사람들과는 보이는 시야가 완전히 다른 양태원의 눈에는 마치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이우연의 모습이 생생하게 보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우연을 감싸고 있는 인연의 실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었다.

방금 전 갑작스레 조한율에게 이어진 인연의 실 또한 기이한 일이기는 했지만 이우연의 경우,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기묘할 정도로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가 이우연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같이 풀기 어려울 정도로 꼬이고 얽힌 인연의 실들이었다.

도저히, 하나의 생에 존재한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연들.

그 인연들의 굴레 속에 이우연의 존재가 그림자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우연 또한 혼란스러운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기억의 오류가 수정된다는 메시지와 함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온 기억.

자신이 잊고 있었던, 그러나 혼이 기억하고 있던 과거의 모습이 파도처럼 흘러들어왔다.

그 기억의 장막을 여는 것은 어느 여자의 목소리였다.

“정말로 그런 불확실한 도박을 하실 건가요?”

한때 친우라고 불렀던 사람의.

* * *

잠깐의 휴식 시간이 끝난 후.

- 3차 몬스터 웨이브 활성화 시간 00:00:00

- 3차 몬스터 웨이브에는 ‘보스 몬스터’가 출현합니다.

- 보스 몬스터가 해당 구역을 벗어나기 전까지 플레이어는 해당 구역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나는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를 보고 납득했다.

“과연.”

이게 시스템이 열리자마자 처음으로 나타난 돌발성 던전 웨이브라, 이건가.

이 정도 난도라면 지금 이 호수 공원에 갇혀 있는 플레이어들이 클리어 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만했다.

경험치 정산은 업적에 따라 분배되는데, 당연히 난도가 높은 던전일수록 경험치가 많이 쌓이고, 하위 몬스터에만 손을 댔다고 하더라도 레벨 1 초보 입장에서는 까마득히 높은 경험치일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레벨 하위권의 이야기.

여기에 있던 사람들이 이후 랭커로 성장하게 된 것은 이 기회를 진짜로 만들 만한 능력과 근성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겠지.

나는 잠시, 두려워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뒤로 물리고 전위에 나섰던 세 사람을 떠올렸다.

재능도 재능이겠지만, 시스템상 랭킹을 매기는 기준은 업적치다.

그건 단순히 능력의 강함을 말하는 게 아니라, 얼마나 몬스터 처치를 많이 했느냐다.

업적치는 목숨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장선 횟수를 뜻한다.

그렇게 앞장서다 보니 자연스럽게 강해진 것일 뿐이다.

‘처음에는 왜 하필 업적치냐, 싶었지만.’

현재 한국의 랭커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아서일까.

단순히 강함으로 랭킹을 매기는 것보다 이쪽이 이 나라에는 잘 어울리는 방식일지도.

“그나저나 보스 몬스터라…….”

최소한 S급에서 SS급 몬스터가 출현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단순히 중앙의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오지는 않으므로 호수 공원 전체를 시야에 넣고 움직여야 한다.

‘아까 생존자들을 체크할 때 보니 부상자가 생각보다 많았지.’

그들이 빨리 처치를 받게 하려면 최대한 빠르게 보스 몬스터를 찾아내 처리해야 한다. 그렇다면 일단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시야 확보를 한 후, 정확히 어디에 보스 몬스터가 나타났는지 파악을 해야…….

철썩!

물이 소용돌이치는 소리가 났다.

나는 반사적으로 호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발견했다.

- SS급 몬스터 : 대양의 지배자

심해에나 잠들어 있어야 할 것 같은, 고층 빌딩만 한 크기의 문어가 빨판을 날름대며 호수 속에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크라켄이라고 해야 하나.

몸에 맞지 않은 작은 욕조에 들어간 것처럼 호숫가의 물이 마구 범람하고 있었다.

다행히 호수의 물이 그리 많지 않은 덕분에 발목이 찰박거리는 선에서 그치긴 했지만, 문어가 움직일 때마다 범람하는 물길이 제법 세다.

“아니, 이건 뭐…….”

나는 호수 중앙에서 거대한 몸을 일으키기 시작한 몬스터를 보며 중얼거렸다.

“찾을 필요가 없네?”

뭐, 다행이긴 했다.

심지어 바다가 아닌 호수에 나와서 그런가,

인공 호수치고는 제법 넓다고는 해도 이 호수 공원은 몬스터가 몸을 담기에는 너무도 작아 보였다.

“문어 숙회 해 먹기 딱 좋겠군.”

그나저나 히든 클리어를 했다더니 저게 보스 몹이었나.

“그런 것치곤 쉬운데.”

그야 등급 자체야 SS급이지만, 사실 저런 해양 몬스터가 무서운 것은 저걸 처치하려면 바다 한가운데까지 배를 몰고 나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배 위에서 바다 한가운데 잠들어 있는 거대한 문어 몬스터와 싸우려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배를 지키는 동시에 선원도 보호해야 하고, 바다에 한 번 빠지기라도 하면 저 흡착력 좋은 다리에 감겨서 그대로 꼴까닥이다.

그에 비해 호수에 몸이 채 반도 들어가지 않는 저 문어 몬스터는 쉽다 못해, 그냥 식탁 위에 올라온 산낙지 정도로 보였다.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곧 납득했다.

“하기야 한 번쯤은 쉬운 적도 있어야지.”

이제까지 쉬운 적이 있었나? 한 번쯤은 쉬운 보스 몬스터가 나타날 때도 됐다.

그럼, 뭐.

이대로 해치워 볼까.

내가 그렇게 마음을 먹고 검을 잡은 순간이었다.

“저게 그 보스 몬스터란 건가?”

풀이 바스락대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접근하는 기척이 들렸다.

나는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아니, 대체 누가 겁도 없이…….”

그러나 말을 끝까지 이을 수는 없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나타난 인물이 김숙자 교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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