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73화
메시지를 보니 이제 완전히 기억이 났다.
라인하르트.
유령성에서 내게 일대일로 승부를 걸어온 황제의 후계자.
단숨에 붙잡아 저 녀석을 이용해 적진에 침입, 황제 암습 루트까지 곧장 도달했었다. 덕분에 더 이상의 피해 없이 유령성 던전 공략에 성공했었지.
당시 도중에 배신하지 못하도록 ‘금석맹약의 서’라는 아이템을 활용해 금제를 걸어 놓았었는데…….
‘문제는 이게 대체 왜 되느냐, 인데.’
나는 시스템 메시지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당시의 유령성 던전은…… 이미 일어난 과거, 페트라가 알고 있던 원(原)역사를 던전의 형태로서 재현한 것에 불과한 게 아니었나?
말하자면 실체 없는 메아리 같은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다.
즉 내가 맺었던 금석맹약의 서는 지금 여기에 있는 이 건방져 보이는 꼬맹이가 아니라, 다른 차원의 애송이와 맺었을 터인데 어째서 지금 이런 메시지가…….
“여기는 위험합니다, 라인하르트 공자. 소란은 저희가 정리할 테니 방으로 돌아가십시오.”
내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고 끝이 났다. 근위대장이 라인하르트를 보며 엄격하게 말했기 때문이다.
명령이나 다름없는 말을 들은 라인하르트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하, 하지만 뭔가 이상한 글자가…….”
“어서!”
그 어조를 들으며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 거슬리는군.
‘뭐지? 라인하르트는 나름대로 황제의 후계자 아니었나? 아직은 후계자가 아니라 그런가.’
라인하르트가 아직 어리다고는 해도 이곳은 아직 신분제가 남아 있는 사회. 신분제가 있는 곳은 나이고 뭐고 신분이 깡패다. 아무리 왕궁의 근위대장이라고 해도 귀족에게 저런 식으로 구는 건 다소 도를 지나치는 행위였다.
심지어 근위대장이 저런 식으로 구는데도 라인하르트 뒤에 따라붙은 시종들은 그저 시선을 내리깔고 있을 뿐, 딱히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뭔가 복잡한 사정이 있는 모양이다.
“나, 나는 그냥…….”
근위대장쯤 되는 강자가 저렇게 윽박지르듯 말한 탓에 라인하르트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기가 죽어 보이면서도 자리를 떠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라인하르트의 창백한 시선이 허공과 나를 훑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 라인하르트에게는 내게 보이는 것과 같은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을 것이다.
까딱하다간 본인이 맺은 적도 없는 이상한 아이템 때문에 죽게 생겼는데 여기서 오도 가도 못 하고 붙잡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뭘 하고 있느냐! 공자님을 방으로 모시도록!”
그걸 알 리 없는 근위대장이 가만히 서 있는 시종들을 한 번 더 윽박질렀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쾅!
콰지직!
“으어억!”
나는 발로 복도 바닥에 부서져 널브러진 판자 하나를 근위대장을 향해 차 버렸다.
라인하르트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던 근위대장은 내가 던진 쓰레기를 머리에 그대로 맞고야 말았다.
“허억!”
“대, 대장님!”
병사들은 물론이고 시종들조차 숨을 집어삼켰다.
왕성에서의 유혈 사태이니 그럴 만도 했다.
딱히 힘을 주진 않았기에 기절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갑작스럽게 공격을 받은 근위대장이 분노하며 검집에 손을 올렸다.
이마에서 주륵, 피가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페트라 경, 이게 무슨 짓인가!”
아차, 지금 나 가면도 쓰지 않은 상태였지. 페트라의 몸을 빌릴 때마다 가면을 쓰고 깽판을 놓곤 해서 지금 얼굴이 훤히 보인다는 것을 까맣게 잊었다.
나는 속으로 페트라와 페트라의 사회적 체면에게 사과했다.
‘루카스가 어떻게든 해결해 주겠지, 뭐…….’
왕자님에게 혼나는 미래가 보인 것 같지만 뭐 어쩌겠는가. 루카스도 친구를 오냐오냐 키운 죗값을 치러야지.
게다가 해당 인물로서 행동하라는 주의 경고가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페트라가 하기에 딱히 이상한 행동도 아닌 것 같고.
나는 팔짱을 끼고 근위대장을 바라보았다.
하여간 지금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를 모으는 게 우선이다.
“아직 이야기는 안 끝난 것 같습니다만. 그렇죠?”
어쩐지 약간 멍하니 서 있는 메이도 곧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페트라 경의 말이 맞습니다. 이제 어쩌실 겁니까? 우릴 체포해 가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메이의 저 말을 들으니 확실해졌다. 이 둘의 목적은 일부러 소란을 일으켜 체포되는 것
그 이유까지는 아직 모르겠다만.
그리고 사실 체포되어도 할 말 없는 짓을 하긴 했다.
왕성 복도에서 장식품이란 장식품은 죄다 부순 데다, 방금 전에는 근위대장에게 부상을 입히기까지 했으니.
둘의 목적은 손쉽게 이루어질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근위대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다소 무례하기는 하나, 이것도 그대의 말대로 젊은이의 치기겠지. 그대들의 실력과 미래를 보아 넘어가겠다. 자중하도록.”
근위대장의 얼굴은 경직되어 있었으나 말은 또렷하게 들렸다.
믿을 수 없는 말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미친 건가?”
이 정도로 소란을 피웠는데도 체포하는 게 아니라 주의 정도의 조치로 끝난다고?
말도 안 된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신분제가 명확한 세계라, 기사란 것들의 난폭함도 가관이었다.
특히 왕실 소속 기사쯤 되면 자존심도 하늘을 찔러서 그게 조금이나마 손상이 간다? 별거 아닌 일로 난리를 피우고 감옥에 가두네 마네, 그냥 넘어갈 수는 없네 하며 난리를 피우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대놓고 깽판을 피웠는데도 주의를 주는 수준의 훈방 조치라.
아무래도 비정상이었다.
과연,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지 메이의 얼굴이 굳었다.
“정말 이렇게 나올 겁니까?”
“…….”
“올리버 경!”
메이의 외침을 들으니 내 기억이 아닌, 페트라의 기억임이 분명한 것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페트라의 기억이었다.
메이가 지금 올리버 경이라 부른 근위대장에게 검을 배우는 기억.
그 기억에서 한 가지 사실이 유추되어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카데미 시절의 스승쯤 되는 건가.’
기사가 되려면 아카데미에서 필수적인 교육을 거쳐야 하는데, 아마 그 시절에 인연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올리버 경이 한숨을 내쉬었다.
“페트라 경, 엘리사 경. 한때의 인연으로 충고하지. 이대로 소란을 피워 보았자 그대들의 장래에 해가 될 뿐. 마음은 알겠다만 치기도 적당히 부려야 한다. 내 선에서 마무리할 수 있을 때 그만두어라.”
그 말에 메이가 입술을 깨무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참는 모양이었다.
여전히 상황을 절반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한 나만 고개를 기울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대체 뭐냐고.’
답답하기 짝이 없다.
“다들 손님을 방으로 모시도록.”
그리고 일부러 깽판을 부린 보람도 없게 근위대장이 병사에게 명령해 나와 메이를 방에 돌려보내도록 지시하며, 결국 상황은 그대로 종료되었다.
그냥 이대로 병사들도 전부 처치하고 이 상황을 타파해야 하나, 싶어서 메이를 곁눈질로 훑어보았지만 그럴 눈치는 아니었다.
나는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일단은 상황에 순응할까.’
바로 왕의 목을 따러 가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아직 이번 던전의 클리어 조건을 찾지 못했다.
그러니만큼 일단은 자중하는 게 나아보였다.
다만 한 가지.
보험을 들어 두는 것은 잊지 않았다.
나는 근위대에게 끌려가기 전 복도 한구석에 석상같이 굳어 있는 꼬맹이에게 낮게 속삭였다.
“이게 무슨 일인지 알고 싶으면 찾아와.”
“……윽!”
무슨 사정인지 보호 겸 감시를 받는 터라 나를 찾아오기 힘들 수도 있겠지만 그건 저 녀석이 알아서 꾀를 낼 일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큰 소란을 낸 게 무색하게도, 나와 메이는 결국 방으로 돌아왔다. 왕궁 외곽에 위치한, 호위기사가 쓸 법한 검소한 방이었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메이가 머리를 감쌌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안 되나…….”
나는 머리를 감싸 쥐고 있는 메이를 바라보았다.
그럴 상황은 아니다만 감회가 새로웠다. 지난번 던전에서도 성장해 알리시아를 구출하기까지 한 모습을 보았건만, 이렇게 가까이서 마주한 것은 처음이라.
‘진짜 잘 컸네.’
유령성 던전 때보다 훨씬 어려 보이기는 했으나, 당연하게도 열 살 남짓하던 꼬맹이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검을 다루기 좋게 발달한 사지와 늘씬한 키, 녹빛의 눈동자와 잔머리 하나 없이 묶어 올린 검은 머리카락까지.
감옥에 갇혀 하루하루 말라 죽어 가던, 희게 머리가 센 아이의 모습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도 없었다.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한 젊은이다운 얼굴이다.
“페트라, 이제 어떻게 하지? 이렇게 된 이상 루카스 전하를 구출할 다른 방도를 생각해 내야 해.”
뭐?
가만히 메이의 말을 듣고 있던 나는 뜻밖의 정보에 입을 벌렸다.
그야 메이와 페트라가 왕성에 있는 만큼 루카스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다만…….
“구출? 대체 무슨…….”
- 당신은 해당 인물로서 행동해야 합니다.
……왜 안 뜨나 했다.
이놈의 경고문.
타인이 먼저 눈치채는 것까지는 괜찮아도 먼저 정체를 밝힐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나는 결국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런 나를 메이가 미심쩍게 바라보았다.
“왜 그래, 페트라?”
다행히도 일리아스는 내 정체를 곧장 알아차렸지만, 메이까지 그럴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일리아스야 어쨌든 십 년 정도 동고동락한 가족이라 내게 익숙하고, 메이는 그래 봤자 고작 며칠간의 인연이었으니 내 정체를 알아차릴 수는…….
“설마 또 용사님의 영혼이 들어오기라도 했나?”
“…….”
“…….”
나는 메이의 흔들리는 동공에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아니…… 그렇게 티가 나?
메이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페트라보다 살짝 키가 큰 걸까. 일어난 메이가 내 멱살을 잡고 마구 흔들었다.
거의 흥분의 도가니였다.
“저, 정말로 용사님……? 용사님인가요?!”
“……숨 막힌다, 메이야.”
“바, 방금 뭐라고 했어요? 메이라고요?!”
내 멱살을 사정없이 잡고 흔들던 메이의 눈가에 어느새 약간의 물기가 어렸다.
제법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울음을 참는 모습을 보니 또 어릴 때의 모습 그대로인 것처럼 보여서,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이 아이를 만난 것은 그저 우연이었고, 그것도 내 일을 해결하느라 끝까지 도와주지도 못했는데.
아니, 오히려 내가 도움을 받았는데도.
“용사님……! 흐어어어엉!”
나를 와락 껴안는 팔에 담긴 힘만큼 마음이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이럴 땐 그저 전해지는 온기만으로도 충분한 법이라 나는 말없이 메이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 * *
그렇게 감격의 재회가 끝난 후.
메이는 퉁퉁 부은 눈을 비비며 소파에 앉았다. 심지어는 콧물까지 훌쩍거리는 모습이, 유령성 때 그렇게 늠름하고 멋지던 부관은 어디로 갔나 싶다.
“페트라하고도 혹시 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이야기하곤 했어요.”
“그럼 페트라도 내가 자기 몸을 빌린다는 건 아는 거야?”
“어릴 때는 몰랐대요. 루카스 전하도 아이에게 혼란이 될 수 있다고 하셔서 그냥 덮으신 것도 있고요. 페트라 스스로 이상을 자각한 건 두 번째…… 그러니까 일리아스 님을 만났던 때라고 했어요.”
이야기를 들어 보면 평소 페트라에게서는 딱히 이상한 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했다. 지난번 빙의 이후에도 어째서 그런 현상이 일어났는지는 통 모르겠다고 하고.
그건 즉…….
‘아리아드네의 말처럼 과거로 거슬러 오면서 갖고 있던 기억도 잊은 건가…….’
아리아드네의 힘을 빌어 과거로 회귀를 하기는 했으되, 사실상 아무런 기억도 가지고 돌아오지 못한 만큼 딱히 페트라에게 회귀자의 이점은 생기지 않은 셈이다.
나만 제외하고.
여러모로 기묘한 일이었다.
왜 하필이면 내가, 그것도 페트라의 몸을 빌려 운명을 바꿀 수 있게 되었는지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문이었다.
“그럼 이제…… 사정을 설명드릴게요.”
언제 울었냐는 듯.
아직 눈가가 벌건 메이가 등을 꼿꼿이 펴고 소파에 앉았다.
그 모습은 무척이나 믿음직스러웠다.
“지금은 추기경이 폭주해 몬스터가 되었던 사건 이후로 3개월 정도 흐른 상태입니다.”
그리고 엘리사 메이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추기경이 운영자의 권한으로 보스 몬스터가 되었고,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던 일.
그 사건은 당시 루카스의 성에 있던 신관들을 통해 왕의 귀에 들어갔다.
덕분에 루카스가 추기경을 음해, 살해했다는 죄를 뒤집어썼다.
나는 이마를 짚었다.
“대체 그게 왜 그렇게 되냐…….”
“신전 입장에서야 절대 인정해선 안 되는 일이니까요.”
“목격자 증언은?”
“모두 루카스 전하의 사람들이라며, 신빙성이 없다고 일축당했습니다.”
아, 진짜 미친 새끼들 같으니라고.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는 감이 잡혔다.
신전이야 운영자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도, 또 그 운영자가 자신들의 수장인 교황이라는 것도 숨겨야 한다. 이게 세간에 알려지면 신전의 위상과 신성은 더없이 추락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신전이 루카스의 신병을 요구했고, 왕은 신전의 말을 듣고 루카스에게 수도로 올라와 소명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루카스는 그 요청에 응했다.
“그 왕자님은 또 왜 그래?! 미친 거 아냐? 걔가 그 말을 들었어?”
메이의 얼굴도 어두웠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왕명은 절대적인 것. 불복종으로 만일 전쟁이라도 일어난다면 성민들의 피해가 막심할 테니까요. 차라리 내 목숨 하나로 갈음할 수 있다면, 전하는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그 멍청한 왕자 자식이.”
내가 이를 갈자 주군의 욕을 들은 엘리사가 움찔했다.
하지만 나와 루카스의 관계를 알고 있어서인지 딱히 무어라 하지는 않았다.
아니, 그런데 정말 멍청한 놈 아닌가.
자기 목숨 하나로 갈음할 수 있다면 뭐, 죽어 주기라도 하겠다는 거냐?
‘웃기고 있네.’
내가 지금 뭣 땜에 이 개고생을 하고 있는데.
게다가 이건 루카스 목숨 하나로 끝날 사태도 아니다.
내가 알고 있던 원역사에서도 루카스 하나의 목숨으로는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황제는 루카스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의 죽음을 원했으니.
하여간 그런 연유로 루카스는 도착하자마자 억류되었다고 했다. 호위로 따라온 기사들도 왕성 여기저기에 떨어져 배치되었고.
여러모로 답답한 상황이었다.
“알리시아나 일리아스는 그걸 또 두고 보고 있었나?”
“물론 말리셨습니다. 다만, 두 분 다 겉으로 드러내 놓고 활동할 수는 없는 신분이라서요. 게다가 전하도 간언을 듣지 않으셨고요.”
“……진짜 처맞아야 정신을 차릴까, 우리 왕자님은…….”
“그래도 두 분 모두 중간까지는 동행했으나, 어느샌가 모습을 감추셔서…… 주군께서는 별말씀 없으셨습니다만.”
즉 그 두 사람은 별개의 행동을 하고 있다, 이건가.
알리시아 혼자라면 모를까, 일리아스가 붙어 있다면 나름대로 무언가 계획을 세우고 행동하고 있을 터다.
그렇다면 그 두 사람은 걱정할 필요가 없고…….
“그럼 아까 소란을 피운 건?”
“아, 소란을 피우면 저와 페트라도 잡아 가야 할 테니까요. 그렇게 되면 루카스 전하가 억류되어 있는 곳으로 보낼 거라 예상했습니다. 레벨이 높은 경우 그게 가능한 시설은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시스템상의 힘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마법진은 존재하지만 그게 평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나 레벨이 높다면 더더욱.
그러니까 나나 메이가 소란을 피우면 최소한 루카스 근처에 억류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근위대장 입장에서는 우리 둘을 루카스 근처에 두는 것이 꺼림칙하기에,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가두는 대신 훈방 조치를 한 것이고.
“그리고 올리버 경은 저와 페트라의 실력을 높이 사고 있습니다. 미래를 생각했다는 말은 진심일 겁니다.”
“본인 아래로 들어오란 건가?”
“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요.”
메이가 추측을 늘어놓았다.
“어쨌든, 기사들을 모두 왕성에 묶어 둔 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전하는 대신전에 계실 확률이 높습니다. 그곳이라면 전하 정도 되는 실력자를 억류할 수 있을 테니까요.
“대신전이라…….”
“차라리 왕성이라면 쉽겠지만, 그곳에 계신다면 침입이 더욱 어렵습니다. 공개 기도일 외 대신전에 발을 들일 수 있는 것은 백작위 이상의 귀족뿐이라…….”
메이가 시선을 내리깔았다.
“하지만 수도의 대귀족 중에는 우리를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백작위 이상의 귀족.
그 말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네.”
“예?”
마침, 그때였다.
방문을 두드리는 연약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나의 계약자께서 오셨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