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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45화 (246/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45화

와, 죽을 뻔했다.

나는 불에 데인 등을 잊으려 애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앉아 있던 의자는 일리아스가 손수 만든 것이었는지 어쨌는지 다행히 불에는 잘 탔다. 한 번 불에 타면서 구조가 약해지자 일반인 근력으로도 부수는 것도 나름대로 가능했고.

뭐 그럴 때까지 좀 아픈 꼴을 보긴 했는데……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시스템만 열면 포션 먹으면 돼. 괜찮아!’

의자를 부순 탓에 일리아스가 불러낸 뼛조각들이 바닥에 달그락거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내가 난리를 치느라 테이블에서 떨어진 루카스의 편지가 보였다.

저건 타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결국 읽지도 않았군.’

나는 허리를 굽혀 편지를 주워 들었다.

하기야 일리아스 쟤가 지금 편지 따윌 읽을 정신이 있겠는가. 세계를 멸망시키겠다고 나섰는데.

‘일단…… 내가 읽어 볼까.’

그래도 페트라가 목숨을 걸고 가져온 편지인데 이대로 놔두기는 뭣했다. 뭔가 도움이 되는 내용이 적혀 있을지도 모르고.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편지를 뜯었다.

봉인된 밀랍이 뜯겨 나갔다.

튀어나온 것은 짧은 편지지였다. 그리고 익숙한 루카스의 필체.

한동안 말없이 편지를 읽어 나간 나는, 편지를 다 읽은 후 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었다.

“……젠장.”

편지의 내용은 짧았다.

항상 미사여구로 장식하는 걸 좋아하는 왕자님답지 않게 용건만 전달한 간결한 내용.

그러나 읽어 보니 왜 전서구가 아니라 굳이 페트라를 통해 일리아스에게 전달했는지 알 법했다.

그리고 페트라가 그 눈밭에 홀로 쓰러져 있었던 이유도.

또, 일리아스가 굳이 편지를 읽지 않은 이유 또한.

마음이 더욱 급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빠르게 집의 문고리를 잡아 열어 보았다.

덜컥!

물론 당연하게도 잠겨 있었다.

하지만 문이 잠겨 있다고 해서 나가지 못할 내가 아니었다.

나는 아까 전 불에 태워 잔해만 남은 의자의 큰 부품을 집어 들고 힘을 주어 문고리를 세게 내리쳤다.

쾅!

마법진 때문에 근력이 빠진 상태라 한 방에 부수지는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내리치자 결국 문고리가 부서졌다.

문이 열려 바깥의 차가운 바람이 들어오는 동시에 시스템의 힘이 나를 휘감는 것이 느껴졌다.

- 메인 퀘스트 클리어 조건 : ‘일리아스’를 설득하시오.

- 남은 시간 69:02:58

시간부터 확인하니, 일리아스가 이 집을 떠난 지는 이미 3시간이 흐른 상태였다.

나는 힘이 돌아온 주먹을 꽉 쥐었다.

‘이미 상당히 멀리 갔겠는데.’

언제쯤 따라잡을 수 있을까.

내가 머리로 시간을 계산하고 있을 때 시야에 무언가 희끄무레한 것이 들어왔다.

달그락.

아까 전 보았던 모자 쓴 해골이었다. 일리아스가 일부러 남겨 두고 간 것인지 해골은 여전히 문가를 지키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 품에는 여전히 천으로 감싸져 있는 내 성검이 들려 있었다. 텅 빈 시선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이리 줘.”

내가 팔을 뻗자 모자 해골이 고개를 저으며 뒤로 물러섰다. 자신에게 주어진 명령만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모습이었다.

시스템의 힘도 돌아왔겠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부술 수 있는 존재였지만…….

나는 약간 복잡한 심정으로 해골의 반질반질한 머리 위에 씌워진 어설픈 모자를 바라보았다.

일리아스의 집 테이블 위에 뜨개질 바구니가 있었다. 아마 홀로 있는 고독한 시간을 뜨개질이라도 하면서 보낸 것이겠지.

물론 그냥 소일거리 삼아 뜬 것이겠지만, 어쨌든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게 모자를 떠서 씌워 주지는 않을 것 아닌가.

그 숱한 해골 병사 중에서도 저런 모자를 쓰고 있는 건 이 한 놈뿐이었다.

그걸 생각하니 어쩐지 공격하기가 꺼려졌다.

내가 곁에 없는 동안 이 해골만이 일리아스의 옆을 지키고 있었을 테니.

“……진짜 짜증나네.”

나라고 해서 곁에 있기 싫어서 없어졌던 것이 아니란 말이다.

타르토스가 아니라 한국에서 태어난 게 내 탓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아무리 좋게 검만 빼앗으려고 해도, 주인의 명령을 절대적으로 따르는 해골은 검을 껴안고 계속 내 손을 피할 뿐이었다.

그때였다.

우우웅!

해골에게 안겨 있던 에이펙스의 광검이 답답하다는 듯 울었다.

그 바람에 광검을 감싸고 있던 천이 흐트러져 성검의 빛이 새어 나왔고…….

콰직!

검을 안고 있던 해골의 팔이 단번에 부서져 내렸다.

해골이 텅 빈 안구로 바닥에 떨어진 검을 다시 주우려고 했지만, 이미 광검의 빛에 팔이 부서진 터라 어깨뼈만이 달그락대며 움직일 뿐이었다.

“……에휴.”

나는 한숨을 쉬며 떨어진 검을 주워들었다.

“너는 왜 애 팔을 부수고그래.”

그러자 어이없다는 듯 광검이 몸을 떨었지만, 검을 든 나를 향해 없는 팔을 뻗고 있는 해골을 보면 우리 집 애보다는 남의 집 애 편이 좀 더 들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에서 시간을 더 지체할 수도 없는 상황.

나는 계속해서 남은 어깨뼈만 달그락대고 있는 해골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네 주인이 돌아오면 고쳐달라고 해.”

그러기 위해서 나도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   *   *

팟!

님페의 바람이 몰아치면서 눈발이 흩날렸다.

협곡을 나오면서 관찰한 결과, 내가 들어올 때 보았던 해골 병사들과 아이스 골렘은 이미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아마도 일리아스가 끌고 간 것이겠지.

그리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일리아스가 말한 ‘손님’도 발견했다.

수십 명의 병사와 기사들로 구성된 추살대였다.

마지막 마을에서 들은 대로 일리아스를 쫓기 위해 보내진 집단인 듯했다.

하지만 정보를 캐물어 볼 수는 없었다. 그들은 이미 절명한 채로 눈밭에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상대는 분명 일리아스였을 것이다.

그것만 보아도 지금 일리아스가 얼마나 굳은 결심을 한 것인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일리아스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파지직!

그때였다.

눈앞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시스템의 메시지 알람이었다.

조한율 : 예나 씨!

몇 시간 동안 차단되어 있었던 조한율의 메시지가 떠오른 것이다. 계속 눈밭을 달리고 있는지라 가상 키보드를 꺼낼 여유가 없어 육성으로 대답했다.

“무슨 일이야?”

조한율 : 그쪽 던전을 좀 뜯어 봤어요. 자세한 건 말할 수 없지만…… 이번에도 엄청나게 어려운 던전에 들어가셨더라고요.

“……그러게 말이야.”

조한율 : 그래서 말인데, 예나 씨가 괜찮으시다면 지원군을 좀 보낼까 해요.

“지원군?”

갑작스러운 소리였다. 이 던전은 운명의 씨앗이라는 아이템으로 만들어진 특수한 던전이라, 나 말고 다른 사람은 들어올 수 없을 텐데?

조한율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조한율 : 일반 플레이어라면 아무리 던전이 세팅된 상황이라도 무리지만, 약간 특수한 입장의 플레이어라면 입장시킬 수 있어요.

그 메시지에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설마…….”

조한율 : 네, 이우연이요. 이우연이라면 예나 씨가 있는 던전에도 들어갈 수 있어요. 약간의 꼼수는 필요하지만…… 지금 당장은 던전 공략 중인데, 아마 하루 정도면 끝날 것 같더라고요. 그 이후에는 지원 가능해요.

조한율의 설명을 들으니 납득이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이우연은 한국에서도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취급이니, 이레귤러 상황인 이 던전에도 침투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 듯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 없어.”

조한율 : 예?! 왜요?!

“이우연이 끼어들 일이 아니야.”

이우연의 전력을 무시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 타르토스를 구하는 것은, 내 친구들을 구하는 것은 내가 할 일이었다.

다른 사람더러 나처럼 목숨을 걸라고 할 순 없었다.

그것도 제 한 몸 살아남기 바쁜 녀석이라면 더욱.

게다가 지금도 이미 내가 모아야 할 운명의 씨앗을 대신 모아 주기 위해 던전에 들어간 상황 아닌가. 여기서 더 도움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이번 던전은 단순히 적을 빠르게 해치워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메인 클리어 조건은 어디까지나 일리아스를 설득하라는 것.

이우연이 도움이 될 일은 없다.

“조한율, 그쪽도 타르토스 운영자가 무리하게 간섭할 때가 아니라면 굳이 참견하지 않아도 돼. 한국 일도 바쁘잖아.”

지난번 며칠간 조한율과 지내면서 더욱 뼈저리게 알게 된 것이었지만, 조한율은 바빴다.

사실상 한 인간이 해낼 수 있는 업무를 넘어선 느낌이었다. 운영자인 만큼 책임도 막중할 뿐더러 사실상 출근이니 퇴근이니 하는 개념도 없이 24시간 내내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조한율에게 나를 더 도와 달라고 말할 염치는 없었다.

조한율 : 아니, 예나 씨! 그렇지만 이대로라면…….

“이제 메시지 끈다. 이우연한테도 절대 참견하지 말라고 해.”

그 말과 함께 나는 정말 메시지 창을 껐다.

이렇게 예의 없이 다짜고짜 메시지를 끊어 버렸으니 조한율도 도와주려다가도 싫어졌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거면 됐다.

이 세계는 내 몫이니까.

‘……이번에는 도움을 받을 순 없어.’

솔직히 이 던전의 클리어에 성공할지, 나는 도통 자신이 없었다.

차라리 SS급 몬스터와 싸우라면 그렇게 하겠다.

릴리스가 다시 눈앞에 나타났을 때도 이렇게 막막하진 않았다. 내 손에는 검이 들려 있고 그걸 적을 향해 휘두르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내가 대체 무슨 수로 일리아스를 설득할 수 있지?

소중한 것을 모두 잃고 인간에게 배반당해 울부짖고 있는 일리아스를 대체 무슨 수로 말린단 말인가.

그야 당장 일리아스의 뒤통수를 후려치거나 팔다리를 부러트려서 잠깐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건 가능하겠지.

그러나 그것도 일시적인 방법일 뿐, 제한 시간이 끝나고 내가 한국으로 돌아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변하지 않는다.

이 세상은 일리아스를 악으로 규정했고, 일리아스는 그 제멋대로인 정의(定意)에 반항하고 있을 뿐이다.

“…………”

문득 내가 저 깊은 호수 밑바닥에 가라앉힌 몬스터가 떠올랐다.

무엇도 뚫을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한 외피를 둘렀으나 속은 텅 비어 물속으로 깊숙이 가라앉았던…… 알버트.

세상이 자신을 외면하고 버렸다는 것에 분노했고, 그 분노를 또다시 다른 약자들에게 쏟으며 괴물이 되어 버린 자였다.

그러나 그 시작은 분명 일리아스와 같았다.

먼저 인간에게 배신당한 건 버려지고 실험을 당한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일리아스 또한 알버트처럼 세상에 분노했고.

마침내 세상을 멸망시키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과정에서 아무런 죄 없는 이들이 죽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도 아닐 터.

당장 이 설원에서 이어지는 마지막 마을에는, 나라에서 쫓겨나 제 삶을 일구어 가는 이들이 살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 손에 들려 있는 용사의 검은 대체 누굴 향해 휘둘러야 하는 것인가.

고작 이 한 자루의 검을 휘두르는 것으로, 나는 대체 누구를 구할 수 있을까.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 에이펙스의 광검이 당신의 선택을 지켜봅니다.

그 메시지를 보는 순간 속에서 무언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선택?”

용사의 검은 부정한 것을 멸하고 악을 단죄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렇다면, 내 검이 일리아스를 막기 위해 움직인다면 일리아스는 부정한 것이란 말인가?

일리아스도 그저 살아남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 일리아스를 먼저 외면하고, 그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삶을 부정한 것은 이 세상이지 않은가.

그런데 일리아스가 대체 왜 이런 꼴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그런 건 너무 불공평했다.

나는 이를 꽉 깨물었다. 너무도 억울했고, 안타까웠고, 화가 났다.

세상이 먼저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를 외면했다면.

그를 외면한 세상이야말로…….

콰드득!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내가 눈밭에 쓰러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고통은 뒤늦게 찾아왔다.

온몸의 근육이 뒤틀려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차가운 눈이 피부를 아프게 찌르고 있었다.

그러한 고통과는 별개로 나는 이 상황을 이해했다.

시야에 시스템 메시지만이 빛을 내뿜으며 떠올라 있었다.

- 플레이어, ‘강예나’의 클래스 적합 심사가 시작되었습니다.

- 현재 당신의 클래스는 ‘용사’입니다.

현 시스템 하에서 기본적으로 클래스는 플레이어의 타고난 특성에 따라 개화한다.

그러나 용사 같은 히든 클래스는 시스템이 플레이어가 그간 쌓았던 업적 따위를 분석해 제멋대로 개화시키곤 한다.

나 또한 어느샌가 용사가 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마도…… 이제 시스템상 나는 용사라는 클래스에 ‘부적합’하다고 판단된 모양이었다.

‘그도 그런가.’

이제껏 나는 인간을 위해 몬스터와 싸워왔다. 옵타티오라는 최후의 용을 쓰러트리면 비로소 사람들이 안전해질 것이라고 믿으면서.

하지만 지금 내가 싸워야 하는 것은 몬스터가 아니었다.

일리아스든, 세상이든.

그건 결코 흑백으로 선악을 가릴 수 없는, 살아 있는 인간들이었다.

용사의 검은 결코 그를 단죄할 수 없다.

아니, 나는 일리아스를 벨 수 없다.

심마(心魔)는 선도 악도 아니니까.

“컥…….”

목구멍에서 뜨거운 피가 치솟아 올랐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찬찬히 생각해 보니 이해가 되었다.

이제껏 내가 시스템 상에서 쌓아 올렸던 체근민 수치는 용사 클래스로서 용사다운 행동을 했기에 받아 낸 보상이었다.

그런데 만일 지금 그 용사 클래스가 다른 클래스로 변모하려고 한다면, 지금껏 쌓아 왔던 내 능력치 또한 사라지는 것이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럼 클래스 확정 전에 죽을지도 모르겠는데.’

끝도 없이 펼쳐진 눈밭.

시스템의 도움이 없다면 이대로 동사하더라도 이상할 것 없는 날씨였다.

나는 눈밭에 엎어진 채 몇 번 심호흡을 했다.

칼 같은 추위와 얼어붙은 숨이 폐부를 찔렀고, 내가 뱉은 피가 눈 위에 다시 식어 가고 있었다.

어쩌면 정말, 이번에야말로 죽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애써 몸을 돌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그래도 땅바닥보다는 하늘을 보며 죽고 싶다고 생각했으니까.

어느새 해가 떠올라 밝아진 하늘은 인간 하나가 죽어 가고 있든 말든 그저 무심하게 밝았다.

그래도 이 세계의 태양 아래에서 죽어 간다면 언젠가 루카스나 아리아드네가 나를 발견해 주려나.

서서히 숨이 옅어지고 의식이 멀어져갔다.

문득, 녹빛의 황홀한 눈동자를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 그러게, 모른 채 살라고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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