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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43화 (244/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43화

설득?

설득이라니.

드디어 선행 조건을 충족해서 클리어 조건이 뜬 것까지는 좋았는데 조건이 왜 저 모양이란 말인가.

나는 문틈으로 들어온 시스템 메시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뭘 설득하라는 거야?’

무엇을 설득하라는 것인지 제대로 된 조건이 명시되지 않았다.

그리고 내 경험상 이렇게 애매한 조건문은…… 여러모로 X될 가능성이 높았다.

해석의 여지가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뭘 해야 클리어 조건을 채울 수 있는지 정확히 모르는데 주어진 시간은 72시간뿐이라니.

‘이거 빨리 움직여야겠는데.’

내가 문밖으로 시선을 두고 있자 일리아스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모자 쓴 해골을 향해 손짓을 했다.

그러자 해골이 달그락거리며 문을 닫았다.

그와 동시에 시스템 메시지도 사라졌다.

“……음?”

이게 뭐지?

내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였다.

일리아스가 내 어깨를 눌러 자리에 도로 앉혔다. 테이블에 놓인 빈 찻잔에 새로운 홍차를 따라 주는 것은 덤이었다.

“레나, 앉아 있어. 굳이 손님의 손을 빌릴 것까지도 없으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일리아스, 이 공간 말인데.”

“아, 혹시 문틈으로 시스템 메시지가 보인 건가?”

일리아스의 말에 뜨끔했다.

마침 방금 전 일리아스를 설득하라는 클리어 조건이 뜨지 않았던가.

‘비밀로…… 해야겠지?’

뭔지는 몰라도 일리아스를 설득하라는 클리어 조건이 뜬 이상, 이 조건을 일리아스에게 낱낱이 밝히는 것은 꺼려졌다.

일리아스를 속이는 것 같아서 찜찜하지만 이 던전 클리어에 대륙의 멸망 여부가 걸린 상황이다.

신중해서 나쁠 건 없었다.

일리아스가 내 얼굴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맞나 보네. 흠…… 궁금해할 것 같아서 말해 주자면, 이 마법진 자체가 시스템을 무효화시킨 공간이야. 그래서 운영자가 볼 수 없는 공간이 된 거지.”

“어, 그러면…….”

“맞아. 이 집 안에서는 시스템창 자체가 뜨지 않을 거야. 능력도, 스킬도 사용 불가.”

그 말에 나는 내 손을 괜히 쥐었다, 폈다 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일리아스가 이 마법진을 발동해 운영자의 시야를 차단했을 때부터 어쩐지 사지에 힘이 별로 들어가지 않는다 싶었다.

의자에 앉아 계속 이야기만 하다 보니 힘이 약화된 것을 느낄 새가 없어서 그렇지.

“뭔가 일반인이 된 느낌이야.”

“걱정하지 마. 이 공간에 있을 때만 그런 거야. 본래는 레벨이 높은 죄수를 가둘 때 쓰는 마법진인데 좀 응용해 본거지.”

듣기만 해도 아득해지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일리아스가 제 무릎을 콩콩 두드렸다.

관절이 쑤시기라도 하는 건가.

“그럼 난 잠시 나갔다 올게. 여기서 쉬고 있어.”

“아니, 잠시만. 나도…….”

나는 일리아스를 따라나서려고 했다.

그도 그럴 게, 클리어 조건이 이렇게 떠오른 이상 나에게는 이곳에 머물 시간이 72시간밖에 없었다.

게다가 현재로서는 일리아스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 그를 설득하려면 최대한 옆에 붙어 있으면서 일리아스의 목적을 파악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안 돼.”

그런데, 그때 다시 한번 일리아스가 내 어깨를 눌러 자리에 앉혔다.

부드러운 힘이었지만 내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였다.

내 어깨를 누르는 힘이 문제가 아니라, 그 태도에 깜짝 놀라 일리아스를 올려다보자 그는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여기에 있으면 안전해. 알지?”

“일리아스……?”

“네 이야기대로라면 레나 네가 이 대륙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짧잖아. 나는 그동안 네가 편하게 쉬었으면 좋겠어.”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클리어 조건을 달성해야 너희를…….”

“레나, 말을 못 알아듣는구나.”

일리아스의 표정은 어디까지나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것은 내게 보여 주는 일면일 뿐.

내 어깨를 누르는 손은 단호했다.

“이게 미쳤나…… 왜 이래?”

아무리 시스템이 없어 힘이 빠졌다고는 해도 그간 단련을 한 내 근력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힘으로 뿌리치자면 못 할 것도 없었지만, 내가 손을 쳐 내기 전에 일리아스가 이렇게 말했다.

“부탁할게. 여기에 있어 줘.”

그리고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일리아스가 이러는 이유를 깨닫고 말았다.

일리아스의 진의(眞意).

일리아스는 내가 클리어 조건을 달성하러 이 집을 나서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즉…….

탁!

나는 내 어깨를 누르고 있는 일리아스의 손을 뿌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싫어.”

일리아스가 나를 어딘지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혹은, 무척이나 지쳐 보이기도 했다.

“레나.”

“내가 위험할까 봐 그러는 거야?”

그래, 물론 위험할 수도 있겠지.

나도 아픈 게 싫고, 죽는 건 무섭다.

나는 아직도 맨 처음 이 대륙에 홀로 떨어졌을 때를 기억한다.

상태창에 표시된 기본 능력치는 10이고, 손에 쥐어진 것은 뾰족한 돌멩이와 하찮은 나뭇가지뿐이었다. 한국에서 신고 있었던 신발이 거친 숲을 헤매느라 다 해져서 발에는 피가 났고,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가 고파 현기증이 일었다.

그런 상태로 숲을 헤매다 처음으로 몬스터를 만났을 땐 온몸이 긴장으로 떨렸다. 지금은 손가락 하나로도 처치 가능한 몬스터가 그때는 태산보다 커 보였다.

그전까지는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악취를 풍기는 몬스터를 만났을 때 나는 생각했다. 몬스터가 나를 먹이로 생각하며 침을 질질 흘리는 것을 보면서, 한낱 사냥감으로 전락하면서 생각했다.

살고 싶었다.

그건 설명이 필요 없는 본능이었다.

그 본능이 나를 여기까지 살아남도록 했다.

그럼에도, 내게는 그런 인간의 본능보다도 훨씬 더 두려운 것이 있었다.

“네가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지금 여기서 움직이지 않으면 이 세계는 멸망해.”

이 세계가 멸망하는 것.

“그럼 너뿐만이 아니라 알리시아도, 루카스도, 아리아드네도 다 죽는단 말이야.”

나는 일리아스의 팔을 붙잡았다.

내가 죽는 것이 두려운 만큼, 네가 죽는 게 싫다.

너희들이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옵타티오를 해치운 다음 우리들에게 약속되었던 해피엔딩은 거짓말이었다. 삶에는 해피엔딩이 없다. 그저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아가다가 어느 날 힘이 다한 순간 숨을 거두게 되겠지.

삶은 게임이 아니니까, 살아 있는 이상 계속해서 살아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비록 행복하지 않더라도.

그러니까, 아무리 힘들더라도 살아 있는 편이 좋잖아.

살아 있으면 지금은 힘들더라도 언젠가는 행복해질 수도 있겠지.

비록 사는 세계가 다를지라도 언젠가 기적이 일어난다면 이렇게 다시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설령 영영 만나지 못하게 될지라도 너희들이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나는 떼를 쓰듯 말했다.

“난 네가 죽는 거 싫어, 일리아스. 너는 내…….”

“가족이지. 알아.”

그러나, 일리아스의 눈빛은 여전히 침잠해 있었다.

“그래서 이 마법진을 사용할 일이 없기를 바랐어.”

“뭐?”

그 순간이었다.

파앗!

일리아스의 피로 그려진 검붉은 마법진이 밝게 빛났다.

그와 동시에…….

“뭐야, 이건……?”

나는 의자에 도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사지에서 힘이 모두 빠져나가 도저히 내 다리를 지탱하고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야, 너 뭐 하는 거야?”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내 자세를 좀 더 편안하게 고쳐 주며 일리아스가 부연 설명을 했다.

“말했잖아. 본래 죄수를 가둘 때 쓰는 마법진이라고. 신체 능력을 약화시키는 기능이 있어야 탈옥을 막을 수 있지. 우리도 예전에 몇 번 갇힌 적 있으니까. 기억나지 않아?”

“그걸 몰라서 묻는 게 아니야, 이 미친놈아! 왜 이런 짓을 하냐고 묻는 거잖아!”

너무 열이 받고 황당해서 나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일리아스의 머리채부터 그러쥐고 마구 흔들었다.

하지만 일리아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 근력이 정말로 일반인만큼이나 약화된 탓이었다.

“내 머리카락 뽑아 봤자 소용없어.”

일리아스는 내게 머리채를 잡힌 채로 미소를 지었다.

진짜 미친놈 같아서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이미 말했잖아. 네가 여기서 안전하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러니까! 그렇게 되면 내가 클리어 조건을 채우지 못하잖아! 너 죽고 싶어? 이 대륙이 멸망한다니까! 아니, 이미 멸망했다고!”

“레나, 네가 뭔가 오해하는 게 있어.”

그렇게 말하며 일리아스가 머리채를 잡은 내 손을 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다시 잡으려 손을 뻗으려 했지만, 어느새 달그락거리는 뼛조각들이 달라붙어 내 손과 발을 의자에 묶어 두고 있었다.

내 사지는 완벽하게 봉인되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내게 이런 짓을 하는 것이 적이 아니라 일리아스라는 것이.

배신감에 찬 나를 바라보며 일리아스가 말했다.

“내가 아직까지 이 대륙을 멸망시키지 않은 건 네가 있어서야.”

아무렇지도 않게 던져진 말.

하지만 그 문장에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말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그저 입을 멍하니 벌린 채 멍청하게 일리아스의 말을 들었다.

“너, 방금 뭐라고 했어……?”

“네가 이 대륙 어딘가에 있을까 봐. 혹은 네게 갈 곳이 없어 이곳으로 돌아올까 봐…… 그런 생각을 했지. 그렇게 생각하니 도저히 마음이 내키지 않더라고. 그래서 계속 기다렸어.”

“야, 일리아스…….”

“하지만 네 이야기를 들은 이상, 이제 여기서 너를 기다릴 이유가 사라졌구나. 너에겐 다른, 돌아갈 장소가 생겼으니까.”

일리아스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는 말은 미친놈 같은데, 내 사지를 모두 묶어 놓은 주제에 나를 바라보는 눈길과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더 오싹했다.

이건…… 누구지?

이런 건 내가 아는 일리아스가 아니었다.

내가 아는 일리아스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항상 까칠하긴 했어도, 그렇기에 가끔 있는 선의나 친절을 발견하면 그곳에서 희망을 찾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어둠이 깊어도 한 줄기의 빛이 있다면 그것을 벗 삼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언젠가 그의 가족과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 믿으며.

낯선 이가 내게 말했다.

“레나, 너는 내 동생이야. 내 유일한…… 동생.”

……아.

일리아스가 그렇게 말한 순간에.

다른 부연 설명 따위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나는 일리아스의 말에 숨겨진 진실을 이해했다.

심장이 아주 낮은 곳으로, 저 깊은 곳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곳에 오는 동안 이미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일리아스가 이런 협곡에 홀로 사는 이유.

이 집에 일리아스 외 다른 사람의 흔적이 전혀 없는 이유.

그걸 본 순간부터 나는 어디선가 무의식중에는 깨닫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차마 물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 알리시아는 어디에 있는지.

내가 십 년 전 구했던, 구했다고 생각한 알리시아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지금도 그랬다.

추측이 현실이 되어 버릴까 봐 차마 내뱉지 못하는 말이 있었다.

인간의 본능을 앞서는 두려움.

“혹시…… 알리시아는…….”

일리아스는 그런 내 손을 한 번 꽉 잡은 후 놓아주었다.

“그래서 나는 네가 다치지 않고, 무리하지 말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다치지 말고, 무리하지 말고, 죽지 마. 행복하게 살아.”

빌어먹게도, 누가 남매 아니랄까 봐 둘은 너무도 비슷한 말을 한다.

일리아스는 그대로 일어서서 내게 등을 돌렸다.

나는 그 등 뒤에 대고 소리쳤다.

“가지 마, 일리아스!”

그 외침이 소용없을 거라는 걸 알았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외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네가 그 길을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를 보고 울 정도로 반가워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이 집에 홀로 앉아 불을 쏘삭이고 뜨개질을 하며 시간을 죽이는 일리아스의 지난 십 년이 상상되었다.

그저 내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 하나로, 이 집에서 혼자 버텨 왔을 사람.

그 한 줄기의 희망은 십 년을 버티기에는 너무 옅었던 것일까.

일리아스는 무척이나 지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안녕, 레나.”

일리아스는 나를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홀로 집을 나섰다.

그리고 나는 혼자 남겨진 채로 망연히, 닫힌 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손을 움직이려 하자 내 손과 발을 의자에 묶은 뼛조각들이 경쾌하게 달그락거렸다.

그 뼛조각을 보며 나는 그제야 이 상황을 파악했다.

그러니까, 내 친구이자 가족인 일리아스는…….

이 대륙을 멸망시키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72시간 안에 그를 설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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