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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209화 (210/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09화

추측이 맞아떨어졌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플레이어명이 같다고 해서 시스템이 그 둘을 동일 인물로 취급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와 저 ‘강예나’는 동일 인물이지 않은가.

그래서 시험해 보았던 것이다.

내가 플레이어명을 저 녀석과 같은 것으로 바꾸면 시스템상으로 혼란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단순히 클리어 조건을 공유하는 걸로 끝나면 안 되기에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다음 메시지를 기다렸다.

그리고, 곧이어.

- 플레이어, ‘강예나’를 인식하였습니다.

- 상태창이 갱신됩니다.

플레이어명 : 강예나

LV.79

특성 : 관철하는 아귀

클래스 : 용사

체력 : 3020

근력 : 2515

민첩 : 1782

마력 : 850

스킬 :멸혼의 불꽃 lv.max 기사회생 lv. max 불굴의 의지-on

나는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됐다!”

미쳤다.

그러기를 바라고 벌인 짓이기는 했지만 설마 정말로 여기까지 내 추측이 맞아 들어갈 줄이야.

조한율 : 와, 이게 진짜 먹히네…….

운영자인 조한율조차 감탄하는 메시지를 띄웠다.

그래.

처음 내가 플레이어명을 바꿈으로써 시스템을 혼란에 빠트린다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능력치의 갱신.

타르토스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시스템이 내 능력치를 제한해 버렸던 것은, 한국의 평균 수준보다 너무 높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쪽의 시스템은 만렙이 나올 정도로 한계치가 높아진 상황.

그렇기에 플레이어명을 ‘강예나’로 바꾸어 새롭게 나를 인식하게 만듦으로써, 내 본래 능력치를 돌려받을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 희망에 가까운 추측이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오랜만에 용사를 기리는 망토 없이도 온몸에 넘쳐흐르는 힘이 느껴져서 기절이라도 하고 싶은 지경이었다.

이게 대체 얼마 만이지?

하지만 내 흥분에 찬물이라도 끼얹듯, 조한율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조한율 : 하지만 이건 일시적인 조치일 뿐이에요. 저쪽 시스템도 아직 로딩 중인 것뿐이고, 얼마 있지 않아 제대로 두 사람을 인식할 거라서요.

조한율 : 그리고 그쪽 시스템에서 벗어나 한국 시스템으로 돌아오시면 현재 능력치로 돌아갈 거예요…….

그쯤이야 나도 알고 있으니까 흥을 깨는 건 그만둬 주길 바란다.

일시적인 조치라는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잠깐이라도 이 능력치를 쓸 수 있다면 어찌 됐든 나에게는 이득이다.

그것도 저 악마 놈들이 모두 몰려오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너, 너,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묘지기 녀석이 입을 떡 벌렸다.

시스템이 나와 동일 인물로 착각하고 있는 만큼 내가 보고 있는 메시지가 저 녀석에게도 떠오른 모양이다.

황당해하고 있는 녀석을 향해 나는 입꼬리를 씩 올려 보였다.

그도 그럴 게 지금 아주 기분이 좋았으니까.

“뭐긴 뭐야. 너처럼 나도 꼼수를 쓴 거지.”

이런 식으로 이 방법을 시험하게 될 줄은 몰랐다만 어쨌든 시스템도, 저 밉살맞은 용사에게도 한 방 먹인 것 같아서 매우 통쾌했다.

“그러니까 그런 짓을 대체 왜 하는데!”

“그걸 물어볼 필요가 있나?”

“윽…….”

그러자 저쪽 용사가 입을 딱 다물었다.

나는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묘지기를 쳐다보았다.

그야 본인도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면 알겠지.

나와 다른 한국 헌터들을 살리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런 말도 안 되는 짓까지 벌였는데, 내가 룰루랄라 콧노래라도 부르면서 발을 쏙 뺄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거야 말로 자기 객관화가 안 됐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바보라는 소리를 들어도 한 말 없지.

결국, 얼마 있지 않아 저쪽 강예나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아주 골치가 아파 보이는 포즈였다.

“와, 설마 이렇게까지 멍청할 줄이야.”

누가 할 소리를.

나는 코웃음을 쳤다.

“그렇게 욕해 봤자 본인 얼굴에 침 뱉는 짓이라는 건 알고 있지?”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까지 멍청했었나? 내가 이 한 몸 바쳐 살려 준다는데 대체 왜 이러는데…….”

“양심 있어?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

조한율 : 그건 제가 하고 싶은 말인데요…… 대체 용사란 뭘까…….

뭐긴 뭐야. 용사란 건 결국 모기랑 뱀파이어처럼 멍청이를 약간 멋지게 포장한 명칭에 불과하다.

나는 힘이 돌아온 손으로 검자루를 꽉 쥐었다.

“그래도 멍청이가 둘이라면 저 악마 새끼들 상대로도 해볼 만하겠지. 같이 죽어라 달려 보자고.”

저 녀석 말마따나, 이제야 좀 재미있어지기 시작했으니까.

릴리스.

그 녀석에게는 갚아 줄 빚이 있다.

*   *   *

한발 늦게 김숙자 교수를 비롯한 다른 헌터 일행들과 합류한 이선은 눈살을 찌푸렸다.

“방랑하는 구도자 헌터가 뒤에 홀로 남은 것은 저도 확인했습니다만…….”

“그냥 간단하게 방구라고 해, 방구라고.”

옆에서 끼어든 류세연은 무시하기로 했다.

저러다 예나 씨한테 한 방 크게 얻어맞았으면 좋겠다.

“설마 이우연 헌터에 양태원 헌터까지 단독 행동을 벌일 줄이야. 아무도 막을 생각을 하지 않으셨던 건가요?”

그렇게 말하며 사실상 다른 헌터들을 통솔하는 두 헌터를 바라보자, 그중 한 명인 김숙자 교수는 어깨를 으쓱였다.

“단독 행동이기는 하지만 하는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즉 이쪽은 막지 않았다, 에 가깝고.

다른 한 명인 김성연 헌터는 은근히 시선을 피하며 이렇게 말했다.

“……상대가 이우연 헌터이지 않나. 단독으로 움직여도 괜찮을 거라고 판단했네.”

이쪽은 막지 못한 것 같군.

이선은 사회생활로 단련된 눈치를 발휘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사람들 간의 미묘한 역학 관계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모든 헌터들이 합심해서 이겨 나가도 모자랄 판국에, 핵심 멤버라고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제멋대로 빠져 버렸다는 것이다.

강예나, 이우연…… 심지어 양태원까지.

이선은 복부를 움켜쥐었다.

‘위, 위가 아파…….’

그들과 사적으로 친한 것은 별개로, 던전에 같이 들어왔을 때 정신 건강에는 좋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게 막는다고 막아질 인간이냐? 갑자기 푸드덕대더니 꼬맹이 데리고 날아갔다고.”

그리고 역시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 인간인 류세연이 본인의 죄는 뒤로하고 툴툴댔다.

“꼬맹이라기엔 너보다 훨씬 크던데…….”

그 와중에 김하현이 조용히 중얼거리는 것을 무시하며, 이선은 일단 한 번 더 인원을 체크해 보았다.

천만다행으로 보스 강예나와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헌터는 없었다.

“그럼 이제 작전대로 아이템을 설치하면서 퇴각하죠. 1차 대피 지점은…….”

그런데, 그때였다.

이선을 중심으로 서 있던 헌터들 중, 외곽에 서 있던 헌터 몇이 웅성대는 소리를 냈다.

“어, 어라……? 잠깐 이거 좀 봐봐.”

“뭔데…… 어?”

다시 한번 아까 세운 작전을 설명하는 중이라 처음에는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그러기에는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사람들이 영 집중하는 것 같지 않자 이선이 결국 목소리를 높였다.

“무슨 일인가요? 급한 일이 아니라면 나중에…….”

“어, 그게…….”

헌터 한 명이 손을 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는 것이, 어쩐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이선은 눈살을 찌푸린 채 그 헌터를 지목했다.

“의견이 있다면 말씀하세요.”

“그, 의견은 아닌데요…… 제가 습관적으로 시스템창에 한국 헌터 랭킹이 보이는 페이지를 항상 열어 두는데…… 뭐가 좀, 바뀌어서.”

한국 헌터 랭킹.

이선은 눈살을 찌푸렸다.

시스템이 업적치를 기준으로 쓸데없이 순위 따위를 매긴 걸 말하는 것이겠지.

“그게 왜요?”

하지만 랭킹 순위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랭킹이 바뀌었다니. 그거 어차피 한 달마다 갱신되는 거 아니던가? 물론 아직 갱신될 시기가 아니기는 했지만…….

“지금 그게 무슨 상관이죠?”

어쨌든, 설령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목숨을 걸고 던전을 공략하고 있는 상황에서 꺼낼 말은 아니었다.

이선은 물론이고, 무슨 일인가 들어 보려던 김숙자 교수마저 얼굴을 찡그렸다. 명목상 리더인 이선보다 훨씬 무게감 있는 시선이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린가? 쓸데없는 소리는 자제하지.”

“그, 그렇지만…….”

김숙자 교수의 질책을 받은 헌터가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랭킹 1위의 이름이 ‘강예나’로 바뀌어 있습니다!”

“…….”

그 발언에 일순간 침묵이 흘렀다.

이선조차도 잠시 할 말을 잊고 눈을 깜박였다.

‘방금 대체 뭐라고……?’

하지만 침묵도 잠시.

곧이어 헌터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이 터져 나왔다.

“뭐? 헉, 진짜다!”

“뭐야. 방랑하는 구도자 본명이 강예나야?”

“왜 갑자기 플레이어명을 바꿨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가 랭킹 페이지를 열어 본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제껏 ‘방랑하는 구도자’라고 표시되어 있던 이름이 정말로 바뀌어 있었다.

랭킹 1위 : 강예나

강예나.

그 이름 석 자가 랭킹 페이지 최상단에 또렷하게 박혀 있었다.

‘맙소사.’

헌터들이 공략 중임에도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레비아탄을 처리하는 녹화 영상과, 홍대 입구 역에서 이무기를 처치할 때의 영상이 매스컴에 노출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얼굴과 이름 등의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던 상태였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정체불명의 랭킹 1위.

그동안 여러 추측이 난무했었다.

실력이야 어느 정도 증명되었다지만 이렇게까지 정체를 숨기는 것을 보니 전과가 있는 범죄자라든가, 얼굴이 말도 못 하게 흉하다든가 하는 식의 폄하하는 말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악의 어린 소문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강예나는 침묵을 지켜 왔다.

그런데 그렇게 비밀스럽게 지켜지고 있던 정체를, 단순히 이름만이라고는 해도 밝혀 버린 것이다.

이선은 혀를 찼다.

‘밖에서도 난리가 났겠군.’

랭킹 페이지는 시스템을 개방하기만 하면 누구나 볼 수 있기에, 호사가들은 항상 랭킹 페이지를 펼쳐 놓고 이러쿵저러쿵 떠들기가 일쑤였다.

아마 다들 실시간으로 이 갱신된 랭킹 페이지를 보고 있을 것이다.

밖으로 나가면 얼마나 많은 인터뷰 요청에 휩싸일지, 이선은 상상만으로도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여기서 나가도 한동안은 또 야근이겠군…….

“아니, 잠깐만…… 강예나라고? 그거 혹시…….”

게다가, 왜 하필이면 이 타이밍이란 말인가.

“에이, 그냥 동명이인이겠지. 흔한 이름이잖아.”

“그건 그렇지만, 생각해 보니 둘 다 검사고…….”

헌터 중 누군가가 말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이선은 반사적으로 다시 위장이 아파 오는 것을 느꼈다.

아무래도 위염이 도진 것 같다.

어째 위내시경도 받아 봐야 할 것 같은데.

김숙자 교수도 옆에서 혀를 찼다.

“왜 하필이면 이때…….”

“제 말이 그 말입니다…….”

그야 정체를 밝히고 말고는 본인의 자유였고, 이선도 당연히 강예나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이 던전이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던전인지는 몰라도, 한국의 서울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이 던전의 보스 몬스터는 분명 ‘강예나’였다.

‘지금은 아이템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으니까 당장은 괜찮겠지만…….’

만일 나중에 강예나의 얼굴이 공개되기라도 하면, 이 두 사람의 정체와 관련해 여러모로 말은 나올 것이다.

특히나 김성연처럼 강예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인물도 있는 판국에.

“강예나라…… 이름은 내가 더 멋있지 않냐?”

이선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한참 고민하고 있는 와중에도, 류세연은 한가하게 헛소리나 지껄이고 있었다.

저 자식은 속편해서 좋겠네, 그렇게 한마디 하려고 했을 때였다.

휙!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 이선은 저 멀리서 날아오는 인영을 발견했다.

거대한 흰 날개를 펼친 채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인물은…….

“이우연 헌터!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이선은 그를 발견하자마자 그렇게 외쳤다.

그도 그럴 것이, 무슨 짐짝처럼 양태원을 한 손에 달랑달랑 들고 있었던 것이다.

애한테 도대체 무슨 짓이냐, 이선이 그렇게 이우연을 혼내려던 찰나.

“으악!”

쿠당탕!

이우연이 양태원을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져 버린 후, 정작 본인은 땅으로 우아하게 내려앉았다.

천사 같은 자태에, 그렇지 못한 태도가 정말이지 이우연답다.

“다들 모였습니까?”

그는 한눈에 뒤숭숭한 헌터들의 상태를 알아차린 듯했지만, 전부 무시하고서 제 할 말부터 꺼냈다.

“이 방어막 외부에서 대규모의 몬스터들이 침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뭐라고요?”

그리고, 그럴 만했다.

이우연이 가져온 정보에 이선은 깜짝 놀라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방어막을 바라보았다.

지대가 높지 않은 데다, 건물로 가려져 있어 여기서는 아무리 애를 써도 몬스터 무리는 보이지 않았지만…….

“어, 어……?”

“저거 혹시 금이 간 건가요?”

이우연의 말을 듣고 나니, 정말로 머리 위쪽을 두르고 있는 방어막에 희미한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 보였다.

더불어, 무언가 방어막에 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도.

김숙자 교수가 이마를 짚었다.

“설마 정말 이 방어막 너머의 적도 상대해야 하는 건가…… 몬스터의 종류는 파악했나?”

“……네, 악귀입니다.”

김숙자 교수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이우연이 아니라 양태원이었다.

헌터들 중 가장 어린데도 불구하고, 그 목소리에는 어쩐지 무시할 수 없는 힘이 담겨 있었다.

“언제고 이 세상을 좀먹으려고 드는.”

그렇게 말하는 무당의 손에 들린 청동검이 찬란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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