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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171화 (172/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71화

흙이 몸 주위로 흩어져 내렸다.

알버트가 땅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두 사람은 시야 밖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래도 상관없어.’

- 시스템 경고

- 상태 ■상 : 변이

- 몬■터 등급 : SS급

- ‘눈이 먼 외눈박이’의 칭호를 받았습니다.

- 현재 정■적인 상태■ 아닙니다. 운영자와의 ■촉 종■를 권고■■

붉게 떠올라 있는 경고창을 무시하며 알버트는 시야 한구석으로 시선을 떨어트렸다.

- 이미 사냥감을 지정한 상태입니다.

- 사냥감의 위치를 확인하시겠습니까?

본능이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충분히 쫓아갈 수 있었다.

알버트는 태연하게 왼쪽 손목을 탈탈 털었다. 그러자 손목의 관절 사이에서 흙이 튀어나왔다. 흙 속에 깊숙이 파묻혀 있는 동안 몸속으로 흙이 들어간 탓이다.

‘생각보다 불편하긴 한데.’

알버트는 제 몸속에 얼마나 많은 흙이 들어갔을지 생각해 보다가 그만두었다.

뭐, 그래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어쨌든 그 검을 그대로 받아 냈던 외피에는 어떤 상처도 없었으니까.

물론 이전에도 신체를 개량하기는 했다만, 몬스터로 변이하면서 외피가 강철처럼 변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아무런 상처 없이 끝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알버트는 방금 전까지 자신을 몰아붙였던 성검을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살벌했지.’

솔직히 능력치 자체는 그렇게 대단하지 않았다. 플레이어로서의 객관적인 수치만을 따지자면 이제 겨우 네 자릿수를 넘겼을까.

물론 그 정도도 충분히 대단한 것이긴 했지만, 현재 SS급 몬스터로 판정된 알버트에게 크게 위협적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살기와 위압감.

공격 하나하나가 모두 위협적이었으며, 또 효율적이었다.

자기 방어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상대방을 죽이겠다는 집념으로 가득 찬 검. 당장 제 목이 베이는 한이 있더라도 적을 처치하고야 말겠다는 끈질김.

능력치를 넘어서 무언가 섬뜩함이 느껴졌다.

분명 정상은 아니었다.

알버트 본인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귀찮긴 해. 어디서 그딴 게 튀어나와서.’

알버트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알리시아를 쫓아가 이번에야말로 죽이는 것.

그리고 그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꼬맹이가 목표를 방해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럼 죽여야지.

알버트는 발을 디뎠다.

크게 다리를 뻗어 땅을 박차는 순간 바람이 주위를 스쳐 지나갔다.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힘이 몸에 흘러넘치는 것이 느껴졌다.

우지끈!

알버트의 몸에 부딪힌 나무가 커다란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하지만 알버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지금 그가 가지고 있는 거대하고 강한 몸에 장애물이라는 건 있을 수 없었다. 나무는 풀처럼 느껴졌고, 바위는 진흙보다 무르게 부서졌다.

알버트는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마구 잡아 던지며 나아갔다.

“하, 으하하하하!”

알버트의 웃음이 숲 사이를 퍼져 나갔다.

그리고 알버트는 이 숲이 공포감에 질려 떨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급한 몬스터들은 알버트의 접근을 느끼고 놀라서 모든 것을 버리고 달아나고 있었고, 숲속에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 강한 몬스터들조차 알버트의 등장에 놀라 숨죽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감히 상상해 본 적도 없었던 전능감이 몸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처음으로 신체를 개조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모든 것이 자신의 힘에 짓눌리고는 바닥에 엎드려 덜덜 떨고 있었다.

그래, 모든 것이 자신의 발아래에 있었다!

“알리시아아아아!”

알버트는 평생 자신을 짓눌러 온 그 이름을 불렀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만난 그 순간부터 알리시아는 언제나 알버트의 이름 위에 있었다.

알버트는 강했지만, 알리시아가 훨씬 더 강했다.

둘 다 신체 개조에서 살아남았지만, 알버트보다 알리시아가 가치 있었다.

알버트는 실패했지만, 알리시아는 성공했다.

알버트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건 변하지 않았다. 아무도 알버트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어디 있어, 알리시아!”

하지만 알버트의 몸을 실험한 연금술사는 달랐다. 왜냐하면 알버트는 알리시아보다 가치는 떨어질지라도, 아주 귀중한 성공작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알리시아가 도망친 이후로 알버트는 그들의 유일한 성공작이었다.

그리고 알버트는 미래로 이어질 희망이기도 했다.

또 다른 성공작을 만들어 낼 기회.

알버트가 아주 위험한 던전을 공략하고 살아 돌아올 때마다 그들은 알버트를 칭찬했다. 네게는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죽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해 주었다.

다른 아이들의 실험이 실패할 때마다 알버트의 가치는 점점 더 높아졌다.

그래서 알버트는 알리시아가 자신들을 가둔 자들을 모두 죽였을 때도 기쁘지 않았다.

이제 알버트는 그들 없이 살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모두 사라져야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어.”

언젠가부터 알리시아는 알버트에게 그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알버트는 그런 알리시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던전 공략차 어쩔 수 없이 사람들 사이로 나아갈 때마다 사람들의 혐오를 느꼈을 뿐이었다.

사람들이 그들 자신을 위해 만든 옷도, 건물도…… 그 무엇도 맞지 않았다.

인간들에게 알버트는 그저 공포의 대상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자신처럼 몸 한쪽이 몬스터임에도 알리시아는 모든 게 달랐다.

사람들에게서 멀리 달아나 홀로 살아가고 있는 알버트와는 달리, 알리시아 곁에는 항상 누군가가 있었다.

대륙에 위명을 널리 떨치고 있는 동료들.

왕자와 성녀…… 그리고 용사까지.

살아가느라 어쩔 수 없이 사람들 사이에 섞일 때마다 알버트는 알리시아의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알리시아를!

도대체 어떻게?

너와 내가 무엇이 그렇게 달랐기에?

알버트는 이해할 수 없었다. 평생에 단 한 번도.

나는 이렇게 살고 있는데, 너는 어째서?

왜 내게 남은 것마저 빼앗아 버린 거야?

원망이 알버트의 텅 비어 버린 삶을 채웠다. 그 감정만이 이제 알버트가 볼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어느 순간, 어둠이 걷히고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알버트는 빽빽이 들어서 있던 나무가 사라지고, 텅 빈 공터를 발견했다.

이상하게 조용하고, 햇빛이 비쳐 오는 장소.

잠시간 위화감이 느껴졌지만 알버트는 무언가를 발견한 순간 모든 것을 잊었다.

알리시아였다.

그 공터 한가운데 알리시아가 서 있었다.

익숙한 모습이었다.

긴 은발, 몬스터의 팔, 붉은 눈동자와 등에 둘러맨 거대한 바스타드 소드.

알버트는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알리시아가 그를 뒤돌아보았다.

“알버트.”

그 목소리는 매우 침울하게 들렸다. 나무가 죄다 뽑혀 나간 공터에서 알리시아는 무척이나 외롭게 보였다.

마치 알버트처럼.

“혼자가 되었군. 드디어 버려졌나?”

옆에 붙어 있던 꼬맹이를 떠올리며 묻자 알리시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 그저 안전한 곳으로 보냈을 뿐이야.”

“하, 웃기지 마. 그게 바로 버렸다는 거야!”

알버트는 흥분하며 알리시아를 향해 다가갔다.

알리시아가 한 걸음 물러났다.

그것에 알버트는 더욱더 흥분을 느꼈다. 다시금 몸 전체를 고양감이 휩쓸었다.

“누가 너 같은 괴물 곁에 있고 싶어 하겠어? 결국엔 모두가 떠날 거야.”

“그럴지도 모르지.”

알리시아는 흥분하지 않았다. 그 얼굴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에 비해 알버트는 용암처럼 끓고 있었다.

“그래, 너는 어차피 혼자가 될 거야! 너도 괴물이니까!”

아까 전 꼬맹이가 외쳤던 말을 그제야 반박하며, 알버트는 전율에 떨었다.

결국에는 자신이 맞았다.

그렇게 알리시아는 괴물이 아니라고 소리졌으면서, 결국 그 녀석은 도망쳤다. 그래서 알리시아가 여기에 혼자 있는 것이다!

알리시아는 그저 가만히 알버트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알버트는 결국 그 침묵을 이기지 못하고 눈살을 찡그렸다.

“뭐야?”

“알버트, 누가 너를 그렇게 만들었지?”

“뭐라고?”

“누가 너를 몬스터로 만들었냐고.”

알리시아의 눈길은 냉정하게 알버트의 몸을 훑었다.

그 시선에 노출된 알버트는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마치 심판하는 것 같은 그 눈길은 알버트가 언제나 가장 싫어하는 것이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본래 우리는 몬스터와 그다지 다를 것도 없었어. 너도…….”

“아니, 알버트.”

알리시아가 고개를 저었다.

“이틀 전만 해도 너는 인간이었어. 아무런 상관도 없는 어린아이들을 납치해 실험하는 걸 도운 인간. 그저 나를 끌어들일 함정을 만들겠다는 일념만으로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인간.”

“나는……!”

“네가 저지른 짓에서 도망치지 마, 알버트.”

시야 한구석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시스템 경고창과 이제는 읽을 수도 없이 이지러진 문자들. 그 사이에서 가장 빛나고 있는 것은 알리시아가 그에게 들이대고 있는 바스타드 소드의 칼끝이었다.

“너는 괴물이 아니야. 인간이었어. 악마 같은 짓을 저지른, 괴물 같은 인간. 죄책감을 피하고 싶어 멍청한 변명을 일삼고 있는 인간.”

“나는…….”

“그런 너를 괴물로 만든 건 누구지?”

그 말이 마치 검처럼 알버트를 재단했다.

이미 알버트의 신체를 구성하고 있는 신체는 강철이나 다름없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은 사정없이 절단하는 것처럼 아팠다.

이제까지 알버트가 저질러 온 짓에도 불구하고 알버트를 인간이라고 불렀던 유일한 존재인 알리시아마저…… 이제, 그를 괴물이라 부른다.

하지만 그게 뭐?

아픔의 존재를 무시하며, 알버트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었다.

“아무도 아니었어.”

“……그래.”

알리시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말해 줄 생각이 없다는 거군. 그럼 나 스스로 알아내지.”

“하하. 설마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알버트는 팔을 들었다.

인간이었을 때만 해도 둘의 능력치는 그리 차이 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알리시아 따위는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다.

“죽어!”

쿠콰쾅!

알버트의 주먹이 바닥을 박살 냈다.

가볍게 공격을 피한 알리시아가 검을 휘둘렀다. 알버트는 피하지 않았다.

카캉!

그리고 몇 번의 더 공방이 있었지만 결국, 아무 소용도 없었다.

알버트의 몸을 베지 못한 바스타드 소드는 금속성의 소리를 내며 크게 튕겨 나갔다.

“큭!”

그리고 결국 거대한 검의 반동을 버티지 못한 알리시아가 비틀거렸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알버트는 제 꼬리를 휘둘렀다.

알리시아는 그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제대로 갈비뼈를 직격한 강철 꼬리에 알리시아가 버티지 못하고 날아가려는 것을, 알버트는 도중에 다리를 잡고 끌어당겨 그대로 바닥에 패대기를 쳤다.

콰쾅!

바닥이 작살났다.

“커헉!”

그렇지 않아도 알버트의 주먹 때문에 무너져 있던 흙 속에 알리시아는 그대로 내팽개쳐졌다. 충격에 알리시아가 거친 숨을 내뱉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알버트가 다시 한번 알리시아의 몸을 높게 들어 올려 바닥에 내리치려던 순간.

피슝!

머리를 강타하는 충격이 있었다.

물론 상처를 입지는 않았지만 알버트의 주의를 잠시 흐트러트리기에는 충분한 타격이었다.

“흐합!”

그리고 그사이, 알버트의 손에 다리를 붙잡혀 있던 알리시아는 그걸 이용해 상체를 일으켜 알버트의 팔에 단단히 달라붙었다.

그것과 동시에, 알버트의 팔 하나가 완전히 반대로 꺾였다.

“크아악!”

작열하는 것 같은 고통이 눈 뒤를 하얗게 불태웠다.

알버트는 크게 팔을 휘둘러 알리시아를 밀쳐 내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 자신의 팔을 확인했다.

강철처럼 단단하고, 무엇도 부러트릴 수 없을 것 같던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알버트는 금속 같은 피부가 검게 물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역시나.”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저 멀리 나무 위에 서 있는 형체가 보였다.

그 꼬맹이었다.

활을 들고 선 꼬맹이의 입꼬리가 씩 올라가는 게 보였다.

“그거 알아? 던전 내에는 보통 나름의 생태계가 자리 잡기 마련이지.”

“무슨 헛소리를……!”

“물론 그 생태계에 군림하는 건 보스 몬스터지. 하지만 가장 약한 생물들도 그냥 잡아먹히지는 않아. 포식자를 공격할 한 수 정도는 가지고 있기 마련이거든.”

“뭐야?”

“어쩐지 던전에서 나온 것들이 지네니, 두꺼비니 독이 있는 것들만 있더라니.”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한번 무언가가 날아왔다. 빛으로 된 것 같은 마력의 화살.

알버트의 외피를 뚫지는 못했지만, 그 화살은 알버트 주변에서 크게 터졌다.

파팟!

그리고, 허공에서 터진 화살에서 검은 액체가 튀어나왔다. 지독한 냄새가 코를 덮쳤다.

하지만 냄새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 액체가 튄 자리가, 알버트의 외피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알버트는 독이 튄 자리가 둔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렇군. 일시적인 마비가…….’

솔직히 놀라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알버트는 다시 꼬맹이를 바라보며 보란 듯이 쉽게 독을 털어 냈다.

“그래서 뭐? 이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간일 때의 몸보다 훨씬 튼튼했고, 고통이 있기는 했지만 금방 가셨다. 그저 약간 움직임이 마비될 뿐이었다.

“일시적으로 마비시킨다고 해도 다시 쫓아가면 금방이야. 어차피 너희들 힘으로는 나를 죽일 수 없어!”

“아, 물론 그렇겠지.”

느긋한 대답이 돌아왔다.

물론 알버트가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도 한 방에 절명시키려는 건 아니야. 어차피 이런 독으로 그 외피를 다 녹이는 것은 불가능할 테고.”

“잘 아니 다행이군.”

“그런데 너, 그 속이 비었더군.”

알버트는 꼬맹이의 지적을 듣고 눈썹을 치켜올렸다.

“뭐라고?”

“한 대 칠 때마다 무슨 북을 두드리는 것 같더라고.”

그건…… 사실이었다.

외피가 강철처럼 강해진 대신, 알버트는 제 속이 비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아까 흙 속에 파묻혔을 때도 관절 사이로 모래가 스며들었다.

하지만 그런 건 여전히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알버트를 죽이기에는 모든 것이 부족했다.

“그래서 뭐?”

그리고 알버트는 꼬맹이의 입꼬리가 씩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이렇게 하려고.”

콰르르르르!

그 순간이었다.

바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냥 바닥이 움푹 파이는 수준이 아니었다. 알버트가 서 있는 것을 중심으로, 숲 전체가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았다.

뭐지? 저 안에 폭발하는 무언가라도 심어 놓은 건가?

위기감에 알버트가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던 순간이었다.

피슝!

또 한번 화살이 날아와 독이 터졌다. 큰 대미지는 없지만 약간의 경직은 피할 수 없는 공격.

알버트는 이를 갈았다.

“쓸데없는 짓!”

아까처럼 땅속으로 그를 파묻으려는 속셈이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설령 땅이 무너지더라도 알버트의 외피를 망가트릴 순 없었다. 그저 시간 벌기에 불과했다.

알버트는 그저 이 일시적인 마비가 풀릴 때까지만 기다렸다가 쫓으면……!

“소음 부스 사용 중지.”

그때, 이상한 말이 들렸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알버트는 그제야 주변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아이템이 해제되는 것과 동시에…….

콰르르릉!

거센 폭포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당황한 알버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긴……!”

“그래, 그 유명한 겨울왕의 숲의 폭포.”

그랬다. 겨울왕의 숲이 그런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이 거대한 폭포 때문이었다.

사시사철 얼지 않는 거대한 폭포.

그리고 깊은 호수.

몬스터의 위협에도 이 깨끗한 수원(水原)을 포기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이 근처로 모여들어 숲을 개간하고 마을을 꾸렸다.

물론 알버트도 인가가 가까워졌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폭포 소리가 들리지 않아 눈치채지 못했다.

여전히 활을 겨누고 있는 꼬맹이가 말했다.

“이 호수의 끝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지.”

“자, 잠깐…….”

파앗!

다시 한번 화살이 알버트의 몸에 명중했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지네의 구슬 조각과 더불어, 검은 독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알버트가 선 바닥은 그대로 부서지고 있었다.

그제야 괴물은 자신이 서 있던 곳이 폭포 근처, 그것도 절벽을 거의 코앞에 두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당연히 그 너머에는 인간의 힘으로 탐사할 수 없었던 깊은 호수가 있고.

하지만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러니 끝을 보고 와라, 괴물.”

알버트에게 내동댕이쳐져 멀리 떨어져 있던 알리시아의 표정이 보였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슬픔, 동정…… 무엇 하나 알버트가 원해 본 적 없었던 감정들.

알버트는 그것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니, 뻗으려고 했다.

그러나 알버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하늘을 찌를 듯 길어진 검이었다.

성검의 날이 알버트가 선 곳을 베었다.

콰콰쾅!

인간의…… 아니, 생명체 그 자체를 압도하는 것 같은 굉음이 터졌다.

땅이 부서졌다.

그리고 그 땅과 함께, 알버트는 허공에서 높이 떨어졌다.

아무것도 잡을 수 없었고, 도와주지 않았다.

그렇게 알버트는 끝없이 떨어져 가라앉았다.

순식간에 물이 관절 사이로 스며들었다.

아무것도 알버트를 파괴하지 않았지만, 스며들어 모든 것을 채워 버린 물은 마침내 그를 끝없이, 밑으로 무겁게 가라앉혔다.

그게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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