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51화
Chapter 13. 이번에야말로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다시 읽어 보아도 보이는 글씨는 변하지 않았다.
- 메인 퀘스트 클리어 조건 : ‘알리시아’의 생존
- 남은 시간 47:59:52
나는 도통 그 메시지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메인 퀘스트의 클리어 조건이…… 뭐? 알리시아의 생존? 그게 어떻게 클리어 조건일 수가 있지?
그게 클리어 조건이라는 건 즉, 알리시아는…… 알리시아가.
“아, 드디어.”
그때 괴물이 나지막하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뱃속 깊은 곳에서 울려서 나오는 듯한, 만족스러워하는 목소리.
“네가 여기에 왔군.”
그리고 괴물은 제 팔을 들어 올리더니 스스로의 꼬리를 잘라 끊어 냈다.
어두운 색깔의 핏방울이 튀어 올랐다.
이제 괴물의 몸을 붙잡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다음에 괴물이 발을 쾅, 굴렀다.
두꺼운 다리가 세게 바닥을 구르며 도약하고, 무의식중에 그를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손에 닿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며, 나도 님페의 바람을 사용해 도약하려 했지만…….
- 경고! 님페의 바람을 사용하기에 당신의 마력이 부족합니다.
망할!
괴물이 뛰어오른 여파로 바닥이 한 번 더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 내 손에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무너지는 바닥과 함께 괴물이 알리시아를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뛰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달빛을 등진 알리시아가 웃는 모습도.
“그래, 이렇게 나오셔야지!”
검을 뽑는 모습은 채 보이지도 않았다.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어둠을 가르는 한 줄기의 둔탁한 빛이었다.
콰콰쾅!
그건 순식간에 벌어졌다. 괴물은 뛰어오른 그대로 다시 바닥으로 날아와 처박혔다.
그리고 처박힌 괴물의 몸뚱어리 위로 알리시아가 날아들었다. 알리시아의 두 발이 괴물의 두 어깨 위로 세게 박혔고, 인간의 팔이 든 검이 그대로 괴물의 한쪽 팔에 꽂혔다.
콰직!
“크아아아악!”
괴물의 비명이 들렸다.
성검이 채 뚫지 못했던 팔이, 이번에는 완전히 피부를 관통했다.
알리시아가 경쾌하게 팔을 휘둘렀다.
“흐압!”
기합 소리와 함께 콰드득, 하는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팔이 잘려 나갔다.
알리시아는 몸체에서 분리된 몬스터 팔을 들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 오우거 킹의 팔 아니야? 이런 건 어디서 구한 거야? 아, 진작 알았으면 조금 더 깔끔히 떼어 낼 걸 그랬네.”
……왜, 재활용이라도 하게?
“그게 네 팔이 될 일은 없어! 그건 내 거야!”
그리고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괴물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몸을 버둥거렸지만, 알리시아는 다리에 힘을 주며 확실하게 괴물의 상부를 압박하고 있었다.
“당장 저리……!”
물론 그래도 괴물은 대항하려 했지만 그 전에 알리시아가 발을 툭 치자 신고 있는 신발 끝에서 날카로운 단검이 튀어나왔다.
그걸 본 괴물이 움찔했다.
알리시아가 비뚜름한 미소를 지었다.
“여기 독도 발려 있어. 내 몸으로 직접 실험한, ‘개량 인간’한테도 듣는 독이지. 아, 감사 인사는 일리아스한테 하고.”
나는 상황도 잊고 반사적으로 인상을 찌그러트렸다.
뭐가 어쩌고 어째? 저 자식들 아직도 그런 짓을 하고 있다는 거야?
“그리고 대체 누가 네 팔을 탐낸다는 거야? 내가 이미 저 팔 떼어 냈거든? 그러니까 저건 죽은 거야. 아, 혹시 너도 시체에 관심 있어? 으, 그거 솔직히 좀 그래. 지나가던 네크로맨서가 들으면 상처받겠지만 좀, 뭐랄까. 끔찍?”
우드득.
우스갯소리나 날리면서도 알리시아는 착실하게 다음 과정을 밟고 있었다.
괴물을 날려 버린 바스타드 소드는 이미 등 뒤에 맨 채로, 평소 소지창에 놔두는 여벌의 여러 검을 꺼내어 괴물의 사지에 꼬챙이처럼 꽂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건 하나같이 괴물의 몸체를 관통했다.
“아아악!”
“아, 엄살 피우지 마. 어차피 너도 나처럼 자체 치유가 빠른 몸일 거 아니야.”
소리 지르는 괴물을 향해 마치 타이르듯 말하며 알리시아는 빠르게 작업을 진행했다.
“포션 값도 굳고 좋지. 안 그래?”
그리고, 바로 옆에서 그 상황을 지켜보는 나는 황당해졌다.
이 모든 전투가 너무 빨리 끝났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저리도 괴물의 팔을 쉽게 잘라 낸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알기로 알리시아의 레벨은 나와 비슷했다.
다만 나는 마법을 쓰는 몬스터나 악마에 특화되어 있고, 알리시아는 대인전에 좀 더 특화되어 있다는 점만이 다를 뿐이었다. 그리고 저 괴물도 분명 레벨 70대 정도는 되는 데다, 육체는 말도 안 되게 강화한 수준이었고.
그런데 저렇게 쉽게 제압한다고?
미친 거 아냐?
지금은 897년이니 내가 없는 시기는 겨우 3년 남짓이었는데, 그동안 알리시아는 레벨 맥스라도 찍은 건가?
망할, 누구는 디버프나 먹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나는 알리시아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내 모습을 인식한 알리시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손에는 막 괴물의 목에 찔러 넣으려던 검이 들려 있었다.
“뭐, 뭐, 뭐…… 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어, 알리…….”
“애잖아!”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나는 그 경악한 목소리를 듣고 깨달았다.
아, 맞다. 지금 나는 남들 눈에 꼬맹이로 보이지.
게다가 가면 아이템도 아까 전 저 괴물이 날려 버렸으니, 지금 알리시아가 보고 있는 것은 열 살 남짓한 아이의 얼굴일 것이다.
다급해진 나는 입을 열었다.
“알리시아, 나는……!”
- 경고! 당신은 해당 인물로서 행동해야 합니다.
파지직
눈앞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이전에는 없었던 격렬한 수준의 경고였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시스템은 내가 알리시아에게 정체를 밝히는 걸 원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레나라고 알리시아에게 말할 수가 없었다.
알리시아가 뻔히 내 눈앞에 있는데 이 꼬맹이 몸에 갇혀서, 내 정체를 말할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이게 무슨 미쳐 버린 상황이냐고!
“X발!”
나는 욕설을 내뱉었다.
망할!
뜬금없이 면전에서 욕을 먹은 알리시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어, 애가 욕하면 안 되지.”
“뭔 개소리야?”
- 경고! 당신은 해당 인물로서 행동해야 합니다.
한 번 더 경고 메시지가 떴지만 이번엔 스파크까지는 튀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욕도 하지 말란 거냐?
“여기 아리가 없어서 다행이지, 걔가 있었으면 너는 ‘훈육의 방’에 끌려가서 3시간은 잔소리를 들었…… 크헉!”
쾅!
그 와중에 우스갯소리를 하려던 알리시아가 괴물의 남은 한쪽 팔에 얻어맞고서 가볍게 날아가 그대로 벽에 처박혔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경악했다.
아, 그래.
내 본 스펙으로도 처치할 수 없는 괴물이었는데 이렇게 쉬울 리가 없지.
알리시아에게 짓눌려 있던 몬스터가 비척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런 괴물의 몸에는 여전히 수십 개의 칼이 박힌 상태였다. 그런데도 괴물은 어느새 몸을 일으켜 알리시아를 쳐 낼 정도까지 회복했던 것이다.
‘망할!’
나는 곧장 몸을 날리려 했다. 하지만 그 전에 괴물이 나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고, 마력조차 한 톨 남지 않은 몸으로는 그걸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왼쪽 어깨로 그 주먹을 맞는 것뿐이었다.
“커헉!”
나는 바닥을 뒹굴었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꺼멓게 물들었다.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확실히 힘들었다. 내가 들 수 있었던 것은 고개뿐이었다.
괴물의 빈정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개량 인간에게도 듣는 독? 하나도 소용이 없는데?”
그 말을 듣고 보니 희미하게 괴물의 가슴 부분이 검게 물든 것이 보였다.
알리시아가 맞아서 날아가면서도 신발에 숨겨 둔 날로 가슴을 찌른 모양이었다. 하지만 괴물의 말대로, 그 독은 괴물에게 도통 듣지 않았다.
비척거리며 일어난 괴물은 바닥에 떨어진 제 팔로 걸어가 그것을 주워들었다.
설마.
그렇게 생각했지만, 괴물은 정말로 떨어졌던 제 팔을 아무렇게나 어깨에 이어 붙였다.
그러자 떨어진 팔이 다시 붙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저게 말이 돼?
괴물이 도로 붙은 제 팔을 만족스러워하며 툭툭 두들겼다.
“그리고…… 내가 앞에 있는데 한가하게 애랑 수다나 떨다니. 나는 아직도 너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가?”
챙그랑.
이제 괴물은 돌아온 두 팔로 제 몸에 꽂혔던 검을 공격적으로 빼내고 있었다. 곧이어 괴물의 몸에 꽂혀 있었던 마지막 검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나는 그 짧은 사이에 괴물의 몸에 났던 수십 개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을 목격했다.
저게 무슨 사기캐야?
완벽하게 회복된 괴물이 으르렁거리며 벽을 향해 내뱉었다.
“나는 네 그런 점이 너무 싫어.”
당장이라도 알리시아를 향해 달려들 것 같은 그 살기에 내가 바닥에 꽂힌 성검을 향해 몸을 날리려던 순간이었다.
“아, 뭐래!”
콰쾅!
알리시아가 자신이 처박혔던 벽을 차고 그 반동을 이용해 괴물에게로 돌격했다. 알리시아의 거대한 녹색 피부를 가진 팔이 괴물의 몸통을 쳐 냈다.
퍽!
이번에는 괴물 쪽이 그 일격을 피하지 못하고 벽에 깊숙하게 처박혔다.
어느샌가 내 앞을 가로막고 선 알리시아가 제 몬스터 팔을 휘휘 돌리며 짜증을 냈다.
“좋네 싫네, 이게 무슨 고백 거절당한 사람 같은 소리야. 물론 거절하겠어. 넌 내 취향 아니야!”
그렇게 말하며 알리시아는 바닥에 침을 뱉더니 제 어깨를 풀었다.
뿌드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잤더니 엄청 뻐근하네. 담 걸린 것 같아. 이 근처에는 제대로 된 여관이 없는 게 문제라니까.”
나에게 들려주려는 것이 분명한 혼잣말 아닌 혼잣말이었다. 그러면서 알리시아는 곧장 내게로 달려와 내 몸을 일으켰다.
“자, 이것 좀 마셔. 그래, 옳지.”
알리시아가 소지창에서 꺼낸 포션을 내 입에 물렸다.
덕분에 나는 대꾸도 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웃기고 있네.’
저건 헛소리였다.
알리시아는 나와 마찬가지로 맨땅바닥에서도 잘 자는 스타일이다. 그러니까 저건 그냥 생각지도 못한 일격을 맞고 나서 쪽팔린 걸 무마하려고 부리는 허세에 불과했다.
내가 그런 허세를 눈치챘을 거라는 걸 상상도 하지 못할 알리시아가 나를 조심스레 눕히고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포션 덕에 탈골된 어깨의 통증은 가셨지만, 마력이 고갈된 건 여전했다. 아직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괜찮아, 괜찮아. 저런 괴물 같은 건 나한테 한입 거리도 안 돼. 내 친구들도 곧 올 거야. 걱정 마.”
저런 괴물을 한입에 해치울 수 있으면 그게 더 놀랄 일일 텐데, 알리시아.
나는 속으로만 그렇게 대꾸했다.
애써 다정한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누가 보더라도 험상궂은 인상에, 솔직히 기세도 험악하고, 들고 있는 건 어지간한 성인만 한 크기의 바스타드 소드였다.
그리고 그 앞에 있는 건 아무리 알리시아라고 해도 상대하기 쉽지 않을 괴물이고.
솔직히 내가 정말로 겁에 질린 열 살짜리 아이였다면 이미 기절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알리시아는 노력했다. 다정한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트리는 건 아마 웃으려는 거겠지. 혹시 아리아드네를 따라 하는 거야?
“잠깐 눈 감고 낮잠이라도 자고 있으면 금방 끝날 거니까.”
멍청아, 지금은 밤이야.
솔직히 그 모든 노력은 내가 보기에는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었다.
알리시아의 모든 말이, 행동이, 생각이 손에 잡힐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 어제 잠을 못 자긴 했겠지.
알리시아가 여기에 왔다. 그건 즉, 이 깊은 숲속에 아이들이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뛰어왔다는 의미였다.
‘친구들이 곧 온다니, 웃기시네.’
만일 누구한테라도 말했다면 애초에 여기에 같이 왔을 것이다.
아리아드네든 루카스든 간에 같이 왔다면 저 괴물의 궁극적인 목표가 알리시아임을 알아차렸을 텐데 혼자 돌격하게 내버려 뒀을 리가 없다.
그러니 저건 그냥 허세고, 여기엔 알리시아 혼자 왔을 가능성이 더 컸다.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그렇게 말하며 알리시아가 검을 들고 괴물을 향해 겨누었다.
나는 그런 알리시아의 등을 보며 홀로 생각했다.
‘멍청이.’
왜 혼자서 온 거야.
내가 ‘용사를 기리는 망토’를 사용하고도 저 괴물을 상대하지 못했듯이, 이 괴물은 너 혼자서는 감당 못 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동시에 나는 알리시아가 왜 여기까지 혼자 달려왔는지를 알고 있었다.
혼자 여기에 왔다는 것 자체가 다른 세 명이 알리시아와 함께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고, 다른 애들과 연락하려면 시간이 걸렸을 확률이 컸다. 여긴 편리한 핸드폰이 있는 한국이 아니니까.
혼자 오면 위험하다는 것쯤이야 알고 있었겠지. 기다렸다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오는 게 안전할 거라는 생각도 했을 거고.
사실 알리시아는 딱히 아리아드네처럼 다른 모든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정의감이 있는 타입도 아니다.
하지만, 어릴 때의 자신과 같은 처지에 처한 아이들은…… 저 애의 트라우마, 그 자체였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합류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만큼 아이들이 더 고통받을 거라는 생각이 발걸음을 도저히 멈추지 못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어릴 때의 자신이 겪은 모든 하루가, 숨 쉬며 살아 있는 시간이 끔찍했던 만큼이나.
알리시아의 사고 과정이 손에 잡힐 듯이 읽혀서 나는 주먹을 꾹 쥐었다.
손톱이 피부에 파고들었다.
……망할, 알리시아.
내 앞을 가로막고 선 알리시아의 등이 약간 뿌옇게 흐려져 보였다.
나는 거칠게 눈을 닦았다.
알리시아와 나는 친구였고, 사실상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낯간지러운 소리지만 몇 년간 함께 목숨 걸고 싸우다 보면 그렇게 되더라고.
그래, 네가 그리웠어.
너희들을 다시 보기 위해서라면, 멸망해 버린 세계를 구해 낸다는 말도 안 되는 일에 도전할 정도로 그리웠다고.
- 메인 퀘스트 클리어 조건 : ‘알리시아’의 생존
- 남은 시간 47:23:42
그런데 아무래도 너는 이미 죽어 버린 모양이야.
내가 손 쓸 틈도 없이, 내가 이 타르토스 대륙에서 사라진 사이에.
내가 곁에 없는 사이 내 가족이 죽었다.
그게 세상이 멸망한 것과 뭐가 그리 다른가?
아직 흐릿한 시야 속에서, 여전히 도마뱀 꼬리와 함께 바닥에 박힌 성검의 빛이 희미하게 비쳤다.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나는 이를 악물었다.
아니, 울 필요 없어.
이번에야말로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 에이펙스의 광검이 당신의 의지에 반응하여 성검으로 진화합니다.
저 멀리, 도마뱀 꼬리와 함께 바닥에 꽂힌 성검이 강렬한 흰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검을 향해 바닥을 기었다.
일어날 힘이 없다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힘이 없어 떨리는 손으로, 후들거리는 다리로 바닥을 기었다.
그렇게 나는 바닥에 꽂힌 검까지 기어갔다.
- 당신의 강렬한 의지에 세계가 반응합니다.
검날은 이제 점점 그 빛을 더해 가고 있었다. 나는 겨우 겨우 무릎을 짚고 일어나 검을 쥐었다.
검은 기다렸다는 듯 가볍게 뽑혔다.
그리고 완전히 드러난 성검이 감옥 전체를 환하게 밝혔다.
벽에서 겨우 헤쳐 나온 괴물도, 알리시아도 깜짝 놀라 빛을 내뿜기 시작한 검을 바라보았다.
“뭐…… 무슨……?”
“……성검?”
나는 검을 들고 알리시아의 옆자리에 섰다. 알리시아의 아연한 눈길이 느껴졌지만 상관하지 않고, 나는 괴물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검이 희미한 웅웅거림과 함께, 몸에서 무언가 일렁임이 느껴졌다.
한 번 바닥까지 고갈되었던 육체가 회복되고 있었다.
- 당신의 신체에 용사의 영혼이 깃듭니다!
- 용사 클래스 보정이 능력치에 적용됩니다. 상태창을 확인하십시오.
살려 낼 거야.
이번에야말로 구해 낼 것이다.
나는 손등으로 눈가를 닦아 내며 입꼬리를 끌어올린 채 알리시아에게 말했다.
“검 똑바로 들어.”
이번에는 같이할 테니까.